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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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내가 부러워 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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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의 [leejeano] 쪽지 캡슐

2005-07-25 ㅣ No.11742

2005년7월25일 월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ㅡ고린토2서4,7-15;마태오20,20-28ㅡ

 

                내가 부러워 하는 사람은

                                              이순의

 

 

나는 우리 성당의 창립동기이다. 젊은 새댁시절에 활동하시는 형님들의 불도저 같은 기상에 절로 고개를 숙여 공경하며 성당을 지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형님들이 벌써 안타까운 이별을 고해버린 분도 계시고, 때가 되어 손주녀석들을 키우느라고 벅찬 일상에 힘들어 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기운 잃으신 모습으로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아보이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도 자매이신 형님들은 늙어서도 활동이 왕성하고, 어울려 다니는 폼새도 즐거워보이는데. 형제님이신 어르신들은 연세가 높아지시면 그 활동의 범위가 좁아지고, 조용해 지시며, 성당에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눈에 뛰지 않을 많큼 차분해 지신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부터인가는 손주들의 보호를 받다가, 좀 더 시간이 흐르면 크는 손주녀석들은 제 갈길이 바빠졌는지 중후한 중년의 아들들을 옆에 끼고 앉아계신다.

 

지금 내 나이가 성당 창립 당시의 형님들의 연배에 근접하여있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의 활동에 눈꼽만큼도 따라서 능하지 못하고 있다. 기운 쎈 천하장사만 같았던 그런 형님들이 아니던가?! 반면에 성당활동은 절대로 못한다고 뒤로 빼시고 또 빼셔서 평생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셔서 뜨거운지 단지도 모르고 말으실 것 같았던 형님께서 한 자리 하시는 걸 보면 그 마음이 그렇게도 뿌듯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신앙에 고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어제 주일미사에 갔더니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할머니께서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입고, 며느님과 함께 성당에 오셨다. 87년12월15일에 인준이 나서, 88년 9월9일에 본당이 열린 이래로 그 며느님을 처음 뵈었다. 할머니는 몹시 정갈하신 분이시며, 한 번도 대 내외적으로 활동하시는 열정을 드러내신 적은 없었으나 항상 변함이 없는 그 모습 그대로의 신앙을 살으신 분이시다. 손주들을 돌보실 적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주일학교에 출근 도장을 찍으셨고, 반모임 차례가 오면 극진한 정성을 보여주셨다.

 

할머니께서는 가정 살림을 도맡아 하시고 계셨으며, 손주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물론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늘 언어를 아끼시는 분이셨다. 그렇게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의 모습에도 가족들에게 불편할지 싶으면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시곤 했다. 나는 그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가슴 깊이에서 인상 깊어했고, 늘 부러워했었다.

"이 집에는 이 늙은이만 사는 게 아니고 며늘아이도 있고 하니.... 다른 날 다른 시에........"

언제나 말씀은 짧고 고요했다.

 

미령한 나이의 내 생각에는 살림도 다 해주시고, 손주들도 다 키워주시고, 자식을 저렇게 잘나게 가르쳐 주시고, 재산도 상당하신데... 아직도 구정물통에 손 담그시면서 며느리 눈치를 보시는가? 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노인에게도 얼마든지 노인의 권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할머니의 세심함이 그 집의 향기를 다르게 하시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성당에서 마주치게 되면 언제나 마음 깊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곤 하였다.

 

할머니는 늘 항상 혼자서 열심히 열심히 거르지 않고 성당에 오셨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 손주 딸과 함께 미사 참례를 하고 계셨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데 그 아가씨가 손녀라고.... 코 흘리게 꼬맹이가! 책가방이 무거워서 할머니 손에 들려주던 어린 소녀가! 과년한 처녀가 되어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날 그 모습에서 늙어 노쇠 하신 할머니께서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세보다 벅찬 노력에 힘들어하셨지만 그 보상은 실로 엄청나게 커 보였던 것이다.

 

나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젊은 여인에게 출산하도록 하신 자연적인 섭리를 그런 할머니들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은 커 가면서 왕성한 활동량을 주체하지 못한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이유는 그런 활동을 제어하고 키워줄 힘이 충분히 비축 되어 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성장이라는 열기를 당해낼 기운이 부족해 진다. 그래서 마냥 관대해져 버릴 수 밖에 없는..... 물론 어른의 사랑이 어린 손주들에게 맹목적이 되시기도 하지만, 그 또한 제동장치의 여력이 너무나 헐거워져서.....

 

며느님께서도 직업을 가지고 계셔서 할머니의 일상은 늘 분주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유한의 인간은 세월 앞에 장사일 수가 없어서.... 할머니의 거동이 예전 같지 않으심이 분명하다. 종종 홀로 성당에 오셔서 앉으셨다가 봉헌을 할 때나 성체를 영하시고 나면 제 자리를 망각하시는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할머니를 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 하얀 모시 적삼을 쫘~~악 뽑아 입으시고, 불편한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기고 계셨다.

 

뒤에서 보아도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걱정이 되어서 더욱 자세히 살펴 보는데 바로 뒤에 색깔이 다른 모시 적삼을 쫘~~악 뽑아 입으신 분께서 따르고 있었다. 앞질러 갔으면 싶은데 역시 천천히! 보아하니 할며니의 며느님? 아니면 따님? 일 것 같은 예감에 여쭈었다. 며느님이시라고 한다. 할머니의 며느님이 누구일까? 몹시 궁금했었다. 그런데 모시옷 탓도 있겠지만, 두 분은 너무나 닮이 있었다. 십 수 년 전의 할머니의 분위기와 중년의 중후한 며느님의 이미지가 너무나 닮아있었다.

 

할머니께 늘 존경을 드려서 인사를 했으므로 며느님께도 처음 뵙는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미사 중에 나는 군중들의 틈에 앉아있을 모시옷 두 벌을 열심히 찾았다. 그 고움이 더운 여름 날의 청명함으로 얼마나 비춰질지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모시옷 두 벌은 보이지를 않고.... 불편하신 노인을 모시고 2층으로 가시지는 않았을텐데.... 봉헌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가 되면 어지간 한 좌석의 앉고 일어섬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혼자 앉았다가 봉헌을 하시고 들어오셨다. 내심 짐작으로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며느님께서는 돌아가셨나 보다고 짐작했다. 늘 혼자 목격되었던 할머니는 그날도 혼자였다고 생각했다. 다소 실망스럽고 애석한 마음을 달래며 미사 내내 할머니의 거동을 슬쩍슬쩍 지켜보았다. 예전보다 훨씬 느려지고 기운도 달려 보였지만, 다소곳한 신앙의 자태는 그대로였다. 언제나 늘! 비가 오시나 눈이 오시나! 기쁘나 슬프나! 즐거우나 괴로우나!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말로 변함없는 모습에 신비감이 배어 날 정도였다.

 

미사가 끝나고 인파의 틈을 비집고 아래층까지 내려왔을 적에는 이미 할머님과 며느님께서 함께 내려와 계셨다. 얼마나 반갑든지?

"어머? 미사때는 할머니만 보이셔서 가신 줄 알았네요."

며느님의 대답은 예전 할머니의 대답과 똑같은 색깔로 흘러 나왔다.

"어머니는 그 자리만 좋아하셔서요."

어머니만 놓아두고 돌아 갔다가 미사가 끝나고 온 그런 며느리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늘 앉으셨던 자리에 편안하게 모셔드리고, 한적한 자리로 옮겨 앉아서 어머니의 안전을 살피며 미사를 함께하신 분이었다.

 

할머니께서 당연히 받으셔야 할 보살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 세상이 어데 그러하던가?! 할머니들도 모든 할머니께서 그러하지 않으시지만, 며느리라고 모든 며느리들이 그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조용히 조용히 살아내신 만큼 며느님도 조용히 조용히 어머니를 보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든지?! 어쩌면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으므로 더욱 부러웠을 것이다. 나와 내 시모님은 종교도 다르지만 생각도 환경도, 사랑도 이해도, 의식도 개념도, 행함도 방식도 모든 것이 달라서..... 19년을 살고 났더니.....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같은 자식을 둔 어미의 입장에서..... 연민조차 없지는 않지만...... 저런 모습으로 돌아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할머니께도 축복이지만 그 며느리의 축복 또한 예사로운 부러움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토록 아등바등 험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돌아 본 내 인생이 그분들 앞에서 얼마나 얼마나 초라해 보이든지! 얼마나 얼마나 허무해 보이든지! 얼마나 얼마나 값 없어 보이든지! 얼마나 얼마나 하찮아 보이든지!

 

몇 일 전에 아들녀석이 전철역을 걸어오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구걸을 하셨던가 보다. 돌아온 아들녀석이 시무룩하여 입시생 스트레스인 줄 알고, 눈치만 슬슬 살피는데....

"엄마! 왜 내 눈치는 보고 그래?" 라고 쏘아 붙인다.

"이놈아 엄마가 아들 눈치보는 엄마가 어디있냐? 아니다 이놈아." 라고 대꾸를 하며 자리를 피하려는데 녀석이 손을 좀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잡아 주었는데....

 

"엄마! 할머니처럼 우리 엄마가 폐지를 주으면 어쩔까? 엄청 걱정이 되는데, 전철역에서 어떤 할머니가 돈을 달라고 하시는 바람에 엄마 생각이 나서 슬펐어요. 아빠는 못 배우고 정성도 못 받아서 인생이 저렇게 험난한데.... 그래서 할머니께 이 보다 더 이상은 잘해 드리고 싶어도 잘해 드릴 수가 없는데.... 나는 아빠보다 많이 배우고, 엄마의 정성도 이렇게 많이 받았으면서 우리 엄마가 늙어서 저러고 다니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마음이 슬펐어요."

 

이미 환경은 내 자식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교우이신 그 할머니처럼 아무리 조용조용하고, 조심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내 의지와 관계 없이 내 자식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축복을 인간의 힘으로 어쩌겠는가?! 하늘이 주시는 복대로 극복하여 얻고, 살아가면서 얻은 만큼만 누려야 할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래도 엄마이기 때문에 해 줄 말이 있었다. 아니 이미 말할 자격도 없는 엄마가 되어있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 주어야 했다.

 

"엄마는 내 아들이 엄마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행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너에게는 형제가 없으므로 큰아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짐으로 짊어져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 엄마가 짐이 되는 것은 싫다. 엄마는 아빠가 불쌍해서도 참고 살았지만, 너의 세대들은 불쌍한 마음 하나로 배우자를 참고 사는 사람은 없을거야. 더구나 엄마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남편을 참아 줄 여자는 더욱 없을 것이야. 그래서 엄마는 내 아들이 먼저 참고 견디어서라도 아들의 가정이 백년해로 하고, 성가정으로 생명의 신비에 어긋남이 없도록 지켜지길 바란다."

 

살아 가면서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지금 엄마에게 해 준 말들은 생각도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청소년기에 자기 생각만 하고 사는 요즘의 흐름으로 보아 아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한 번 쯤은 시련이 많은 아빠 엄마로 인해 부양을 생각해 보았다는 것! 큰 죄를 지은 부모 되었지만.... 간혹 들어보면 많이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식들이 서로 누구에게 많이 해 주는가를 살피느라고 불미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많이 갖지 못했다는 개념이 이럴때는 좋은 약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온 경험은 그래도 많이 가져야 좋은 것을.....

 

폐지를 줍는 어머니를 보며 이중적인 심성의 고통을 격어야 하는 것도 갖지 못한데서 오는 고충이며, 장성한 아들이 구걸하는 할머니를 보며 부모를 걱정해야 하는 것도 갖지 못한데서 오는 고충이다. 그 할머니께서 얼마만큼의 부를 지니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남의 셋방을 전전하는 삶은 아니었고, 당신의 육신을 손주들에게 일거리로 제공할 수 있었던 주거 공간은 늙은 노인의 자유였을 것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이제 보살핌과 배려를 받으며, 적어도 그분의 죽음이 죽어서 안도하는.... 그런 죽음은 아닐 것이라는..... 오래오래 가족들의 기억에 그래도 고운 추억으로 남을.....

 

내가 늙어서 집이 있을지? 손주를 돌보는 축복이 주어질지? 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꼭 그 할머니를 닮아서 살고 싶다. 거동이 불편하여 자박자박 걸을지라도 내 힘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성당에 가서 일생을 앉아온 내 자리를 찾아 미사 참례를 하고 싶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만 있다면 가져보지 못한 복들 중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최고의 축복이 될 것이고...! 나는 어제 주일미사에서 본 그 할머니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안쓰럽고 불쌍한 인생만 살다 가실 내 시모님에 대한 이중적 심성의 고통에 아프고.... 미래의 내 모습이 그 할머니의 모습은 멀고, 시모님의 모습은 가깝게 느껴지는!

 

ㅡ"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마태오20,2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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