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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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자세가 그게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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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8-19 ㅣ No.12015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마태오 23장 1-12절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신부님, 자세가 그게 뭐예요?>


언젠가 아이들과 낚시를 갈 때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에 앉은 저는 오랜만에 운전도 안 하겠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거의 거만하고 방자한 자세로.


그렇게 자세를 취하니, 자연스럽게 제 좋지 않은 버릇이 나오더군요. 평소에 여러 사람들로 부터 늘 고치라고 지적을 받았던 다리 떠는 버릇이 저도 모르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제 꼴을 곁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던 아이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한마디 던지더군요.


“신부님, 제발 다리 좀 떨지 말아요. 그리고 자세가 그게 뭐예요?”


아이의 훈계에 속이 좀 상하기도 했지만, 즉시 다리 떠는 것을 멈추고 자세도 바로 잡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애들아, 제발 다리들 좀 떨지 마라. 다리 떨면 복이란 복이 다 나가고, 3년 재수 없단다.”


“애들아, 앉을 때는 늘 어깨를 곧게 세우고 똑 바로 앉도록 하거라. 자세가 좋아야 인생이 활짝 핀단다.”


아이들,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또 강론대 앞에 설 때마다, 가르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때로 고독합니다. 때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나 창피한지 모릅니다. 제가 선포하는 말씀과 제 구체적인 일상 사이의 너무나 큰 괴리감에서 오는 부끄러움으로 늘 고민합니다. 언행의 불일치 그것으로 인한 괴로움은 상당합니다.


고백소 안에서, 상담하는 과정에서, 강론대 앞에서 갖은 좋은 말, 있는 말 없는 말, 그럴듯한 말, 번지르르한 말은 다 하지만, 제 삶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체로 안고 살아가는 딜레마인 듯합니다.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강한 질타를 받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그들도 처음에는 겸손한 지도자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이고 진지한 자기성찰이나 자기 쇄신은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유입이 없다보니 자기주장만 강하게 되었고, ‘똥고집’만 늘게 되었습니다. 비판세력의 진심어린 조언도 기분 나쁘게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언행이 어긋나는 이중적, 권위적 지도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 백성들이 등불이 될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겸손한 지도자입니다. 청렴결백한 지도자입니다. 지나가는 세속의 것에 초연한 지도자입니다. 자기반성과 쇄신에 늘 에너지를 쏟는 지도자입니다. 보다 올바른 선택이 어떤 길인지 늘 고민하는 지도자입니다. 신중한 지도자, 입이 무거운 지도자, 늘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에 있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마음에 담고 진지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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