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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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일기]*이 땅과 당신 나라의 경계선에서..이창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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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jangmee] 쪽지 캡슐

2006-03-28 ㅣ No.16727

 

 

   주님,

풍성한 결실의 향연장에서 흥겹게 춤을 추다가도

삶의 결실을 생각하면 숙연해 집니다.

 

삶의 결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연과 엇비슷하게 조화시켜 주심에

관조의 정신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를 매일 빼놓지 않았습니다.

마치 시험준비를 끝내고 시험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을 때 자손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잠자다 죽는 것이지,

 누가 대소변 받아낼라고 하겠어?

 그리고 그곳에 가는 거지."

 

주님,

그곳은 영복의 약속이 진실되어 소망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세상의 숱한 허물을 감싸주실 드높은 자비에 최후로 투신하는 곳입니다.

 

그 할머니가

자리에 누우신 지 얼마 있지 않아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너무 졸지에 누우셨기에 유언 한 마디 못하시고

"신부를 불러라" 라는 말이 유언이 되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왕복 속에서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이땅과 당신 나라의 경계선에서

아픈 이별의 손짓을 하듯 가끔 손짓을 하셨습니다.

 

몸은 야위다 못해 마른 삭정이 같았고

이따금 가까스로 치켜뜬 눈빛엔

당신께 향한 연약한 영혼의 반향이 있었습니다.

 

주님,

저는 그 할머니가 빨리 자유로워지시기를 빌 뿐이었습니다.

늘 채우기만 하던 빈 가슴에 당신이 계심으로

진정 자유로울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제 끝이요, 이제 시작입니다.

이 삶 저 너머의 삶을 염두에 두고 숨을 고르고 있어

가족 모두는 그 숨결에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잠시 숨을 멈추었을 때 

가족들도 같이 숨을 멈추었었습니다.

다시 휴~ 하며 숨을 내 쉬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숨을 내 쉬며 이땅에 함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몇 번 반복됐습니다.

 

봄을 위해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것처럼

아픔을 맞이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당신의 섭리에

순응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도 기진하여 도리질로 포기하는 안면에는

이제 세상에 대한 체념과 당신 나라를 향한 집념의 빛이 서려 있었습니다.

 

주님,

방랑과 순례의 길에서 맺어진 그 끈끈한 인연을 끊는 순간입니다.

밖에서는 초상을 치를 준비가 한창인 양 부산한데..

세상의 마지막 일들과는 관계없는 양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조금후 더는 울지 않아도 될 눈물,

한으로 빚어졌던 눈물을 마지막으로 흘리면서..

일흔 다섯 해의 숨을 거두었습니다.

 

주님,

이제 할머니는 우리를 지켜보실 것입니다.

광기어린 세상,

애증으로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두 손 날개되어

돌아오라고 아무도 소리치지 않는 세상을 떠나 날으실 것입니다.

그 목마름 때문에 엄청난 노정을 따라

끝까지 지지않는 태양이 동터오는 새벽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주님,

그토록 동경하며 활짝 피워 올린

이 새 생명을 맞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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