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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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례받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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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6-05-02 ㅣ No.17567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요한 14장 6-14절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왜 세례받기를 원하십니까?>


세례를 목전에 두고 마무리 피정을 하고 있던 예비자들에게 제가 질문을 한 가지 던졌습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스런 질문이지만, 세례를 받으시려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이 입교의 이유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분은 천주교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 거룩하고 엄숙한 전례에 마음이 끌렸다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가톨릭’ 하면 뭔가 신비스러워 보이고, 다른 종교보다 좀 더 고상해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살던 아이들 중 여러 아이들은 입교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성체 시간이 오면 신자들이 줄줄이 앞으로 나가서 받아먹는 ‘하얀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어떤 맛일까? 그걸 먹으면 어떻게 되나? 이런 궁금증에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다는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최종적으로 지향할 바는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그리스도화,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자기실현’ 그것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신앙여정을 통한 온전한 자기 이탈’, 그 목표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숱한 죄악과 슬픔, 좌절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승 예수님을 따라 완벽한 자아 포기, 완전한 무(無)에 도달함을 통한 하느님과의 합일, 결국 철저한 수동성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최종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 신원에 대한 정확한 파악입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자문해 봅니다. 계속되는 전도여행으로 인한 피곤함이었을까요? 다들 가족과 친구, 집을 떠나왔는데, 그들에 대한 향수일까요? 경제적인 어려움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 제자들이 지녔었던 가장 큰 고충은 도무지 알쏭달쏭한 예수님 존재 자체였습니다. 3년간을 줄곧 쫓아다녔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따라다닐수록 그분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점점 증폭되어갔습니다.


스승에 대한 몰이해,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그것만큼 큰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특별히 선택한 12제자였습니다. 오랜 기간 집중과외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성적도 쑥쑥 올랐습니다. 제대로 따라오는 듯해서 마음이 흐뭇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가장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복음에 잘 제시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늘 의심이 많은 토마스를 향해 집중교육을 시키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토마스에게만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정신 차려서 잘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씀하셨는데, 실컷 특별교육을 시키고 났는데, 필립보가 한다는 말 좀 들어보십시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기가 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금방 열심히 설명을 끝냈는데,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필립보의 모습을 통해 그가 아직 예수님의 신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필립보의 예수님에 대한 몰이해는 오늘 우리에게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필립보의 신앙여정도 그리 순탄치 않았구나,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파악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아직 많이 늦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아직도 자신의 신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슬펐습니다. 이제 곧 제자들을 두고 떠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니, 하는 생각에 걱정도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필립보에게 원망이나 미움이 담긴 질책을 하지 않으시고, 위로와 연민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큰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당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연민과 안쓰러움이 가득담긴 마음으로 최종적인 특별과외를 실시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찌 보면 신앙생활이란 스승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한 고되고 긴 여행길입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그 지루한 여행길에 예수님께서 친히 길동무되어주십니다. 지금은 비록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언젠가 우리들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해질 때, 우리는 보다 명료한 예수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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