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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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의 불을 끄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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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silver0824] 쪽지 캡슐

2017-07-02 ㅣ No.112990

 

 




2017년 가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복음: 마태오 10,17-22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이시자 사제로써 첫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며 특별히 한국의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서품(1845817)을 받은 지 채 1년도 못되어 체포되어(18466) 그동안의 사제가 되기 위해 겪어온 10년간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이 순교의 칼을 기꺼이 받으신 김대건 신부님의 성덕은 생각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잡혔을 당시의 상황을 주교님께 보고하던 편지의 내용은 실로 26세의 나이로는 믿어지지 않을 완벽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시 오늘 성무일도 제2독서에 나오는 그 편지내용을 옮겨보며 묵상해봅니다.

 

그들은 저를 잡아 가지고 상륙한 뒤에, 옷을 벗기고 다시 마구 때리며 온갖 능욕을 가하다가 관가로 압송했는데,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관장이 제게 묻기를 네가 천주교인이냐?” -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대답하였더니, “어찌하여 네가 임금의 명을 거역하여 그 교를 행하느냐? 배교하여라.” 하기에,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받듭니다. 천주교는 내게 천주 공경하기를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내게 배교하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였다고 주리를 틀고서, 관장이 또 말하기를 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 하기에,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결코 나는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의 진리를 알려거든 들어 보십시오. 내가 공경하는 천주는 천지와 사람과 만물을 조성하신 이요, 착한 이를 상주시고 악한 자를 벌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그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이 말을 듣고는 관장과 모든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그 후에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져오기에, 제가 즉시 그 칼을 잡아 제 손으로 제 목에 대니, 둘러섰던 모든 사람이 또한 다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배교한 두 사람과 함께 옥에 가두는데, 저의 손, , , 허리를 어떻게나 몹시 결박하였던지, 걸을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구경꾼들이 둘러쌌기에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는 밤이 이슥토록 저들에게 교회의 도리를 설명하였더니, 그들은 흥미 있게 듣고 나서, 나라에서 금하지만 않으면 자기들도 봉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고통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주님을 증언하시는 그 면모는 사제로서의 소명을 죽기까지 수행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를 위대한 학자로 인정합니다.”라고 당신이 표현하신대로 당대에 찾아보기 드문 나라의 보배가 될 인물을 온갖 유혹으로 현옥하였음에도 오직 순교만을 바라보며 전혀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굳건히 지키신 모습에서 또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완덕에 도달하셨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늘 복음에서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성령)이시다.”

순교의 힘은 성령에서 나오고,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분들은 당신들 안에 있는 성령을 잘 지키셨던 분들입니다.

 

성령님은 분명 기도를 통해 오십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며, 이어 그 기도를 끊임없이 지치지 말고 해야 하신다고 하시며,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결국 성령님을 청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대 신앙인들도 주님의 기도를 바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도 자주 하고 성체조배도 자주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묵주는 손에 놓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의 순교자들이 가진 성령의 굳건함을 지니지 못함은 어떤 연유에서일까요?

그 이유는 기도는 하되, 성령은 지킬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만 들어오시면 그분이 다 해 주실 줄 압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서 성령만 들어오시면 그분이 주시는 은총과 열매를 통해 못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들 안에서 마치 풍전등화처럼 약하고 가녀리십니다. 우리의 입김에 훅 꺼져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성령께서 마치 활화산처럼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면 우리는 결코 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이 성경구절에서 성령의 불은 우리의 마음대로 꺼져버릴 수 있는 작은 촛불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루카 20,9-16)를 통해 당신께서도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려 마땅한 도지를 바치지 않는 소작인들에게 쉽게 죽임을 당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치 사람을 쉽게 좋아하고 또 쉽게 싫어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그렇게 쉽게 버려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훌륭하신 것은 물론 기도도 많이 하셨겠지만, 일단 당신 안에 붙여진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보살피실 줄 알았던 것에 있습니다.

 

요즘 상영하는 하루란 영화는 그 내용이 마치 성경을 옮겨놓은 것처럼 교훈적입니다. 봉사활동으로 유명해진 한 의사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딸이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길을 건너다 택시에 사고가 나서 사망하는 순간까지 그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자신의 딸이 죽은 것이 꿈이 아님을 알고 나서부터는 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을 단축시키려 해도 자신이 도착할 때 딸은 여지없이 죽고 맙니다. 그리고는 깨닫게 됩니다. 하루가 반복되는 현상은 자신의 딸의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바로 택시운전사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택시 운전사는 일부러 이 의사의 딸을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택시운전사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딸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택시운전사가 의사의 딸을 죽이려하는 이유는 의사가 택시운전사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딸이 심장병이 걸렸고 살 가망이 없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병원에 실려 왔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의 없이 그 아들의 심장으로 딸을 살리게 된 것을 결국 그 아들의 아버지도 깨어나 알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딸에게 달려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으로는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택시운전하와 맺힌 한을 풀어야합니다. 처음엔 택시운전하가 마음을 바꾸지 못하지만, 마지막엔 의사가 잘못을 뉘우치고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딸이 살아있으면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살아계시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다고 딸만 살리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그 딸의 원수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내 힘만으로는 살릴 수 없습니다. 만약 내 안에 성령을 죽이려고 하는 것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자아이기도 하고 뱀이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짓는 죄이기도 하며, 육체의 욕망이라고도 부릅니다. 옛 분들은 성령의 불을 끄지 않기 위해 어떤 것과 싸워야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적들은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기도만 하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성령을 죽이는 자아가 자아내는 세 욕망, 즉 삼구(三仇)와 싸우는 것이 가장 큰 교리였지만 지금은 물어보면 그것을 처음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 직전에 신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신 것이 기도하라는 것보다 훨씬 더 그 삼구와의 싸움에서 지지 말라는 것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 여러분이 이런 어려운 때를 당하여 바라건대, 마음을 헛된 곳에 두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세 가지 원수(三仇: 세속, 육신, 마귀)와 맞서고 박해를 이겨내어 주 하느님께 영광이 되게 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원대한 일을 도모하십시오.”

 

기도와 삼구와의 싸움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현대는 세속, 즉 돈과, 육신 즉 쾌락과, 마귀, 즉 교만의 세력이 급격히 커진 시대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 그리고 육체를 따라 살면 죽음에 이르고 남을 심판하면 심판받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안이 재정적으로 안정되기를 청하며, 육체적으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인정받고 높아지고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오시는데, 그 청하는 것들은 모두 성령의 불을 끄게 만드는 욕망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 봐야 순교자들의 그 신앙의 뜨거움을 되찾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엄지발가락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요산 수치가 높다는 것입니다. ‘통풍인 것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이 병은 사실 당뇨와 같이 잘 먹어서 걸리는 병입니다. 술과 고기. 이 병이 생기고보니 저 또한 기도하면서 그 기도를 통해 얻는 성령을 지나친 육체적 만족으로 또한 꺼버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인들만 기릴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본받아야합니다. 우리 또한 성령의 불을 끄는 욕망들을 청하면서도 그것을 기도라고 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육적 욕망이 살아있으면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로마 8,5-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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