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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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 예복 . . . . . . . . . . . [들꽃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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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jangmee] 쪽지 캡슐

2007-08-24 ㅣ No.29638

 
 
 
 위로의 예복을 곱게 입으신 일본군 피해 할머님들...   사랑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하늘나라는 어떤 임금, 임금자신이 하늘나라다.

     그런데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이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잔치에 데려왔다.
     하늘나라는 잔칫집이다.
     법정이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하늘나라 하면) 법정을 생각한다.
     초청받은 사람들은 그 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이유는 이들은 종교나 신앙, 하느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부터 초대하는가?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나중에 불러도 올 것이니,
     관심없는 사람들을 먼저 불러주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분은 전혀 가망성없는 데서부터 시작하신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듯이.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보다 세속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
     신앙보다 돈이...,
     기도보다 사업이...,
     하늘보다 지상이...,
     영원보다 시간이...,
     하느님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을 모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언제든지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즉,
     해를 보고도 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인간이란 존재에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말했듯이 좋은 예가 노숙자다.
     IMF 때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노숙자로 내몰렸다
     1년뒤 취재했다.
     대부분 알콜중독자고 살아가고 있었다.
     넥타이를 맸던 말쑥했던 신사는 온데 간데 없고
     아무 의지없는 노숙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회복귀하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용기가 나지 않고
     그 힘든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노숙생활이 정말 편하다는 것이다.
     잠시만 손을 벌리는 동전이 떨어지고 소주 한 병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거지들도 결코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자리를 얻는 순간부터 정부의 보조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숙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상황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느님의 현존의 느끼면서도 거부한다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나 저나 하느님은
     그렇게 당신께로부터 가장 머리 떨어진 사람부터 불러주신다는 사실이
     감사하지 않은가?

     복음에서는 이런 말로 표현되고 있다.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없이 만나는대로 데려왔다."
     여기서도 악한 사람이 먼저 선택되고 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방향에서,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쪽에서 생각하면
     이렇게 된다.

     악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악하다고 여기는 사람,
     다시 말해서
     스스로 생각해도 하느님 나라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리와 죄인들이다.

     반면 선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바리사이, 율사들이다.
     자기 스스로 자격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 존재 자체가 예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자기 몸을 가리지 않고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예복은 그래서 진실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진실되이 생각해볼 때
     합당한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자기의 부족함을 가릴 예복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혼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신실과 신의가 있어야 한다.
     죽을때까지 한 사람처럼 살기 위해선
     서로가 진실해야 하고 끝까지 신의를 지켜야 한다.

     이혼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것이 없어서 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기 위한 예복이
     바로 이 진실과 신의일 것이다.
     하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고
     상호간에 신의를 저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이
     이 혼인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참석하지 않은 것도 진실과 신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약의 백성은 하느님과의 약속(십계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진실된 삶을 살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는 들꽃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으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미사참례시에
             마음의 예복와 실제의 예복은 어떤지...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 입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가장 좋은 옷이란,
             비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멋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깨끗하게 손질한  정성으로 입어야...
 
             더위 탓도 많겠지만,
             노출이 너무 심해서 (요즘 패숀이 속옷 패숀이라지요...?)
             미사..  즉,
             제사를 드리는 옷차림이라고는 할 수 없을 지경이라서...
             이 미국에서는 좀 더 심한 편입니다.
 
             유럽 여행을 하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어깨를 드러내거나 반 바지 차림으로는 성당에 들여보내 주지도 않습니다.
             구경(?)도 안 시켜줍니다.
             성당안을 구경만도 할 수 없는데...
             하물며 미사를 드리러 오는 옷차림이 어때야  할 것인지요?
 
             가장 깨끗하고 고운 옷으로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뵙고 모셔야 하는게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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