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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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者 김대권 베드로님..전주 숲정이 5월29일 순교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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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욱 [uiuihhh8] 쪽지 캡슐

2021-05-28 ㅣ No.14719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전주 숲정이에서 5위 福者 순교하신 날

(순교일; 5월29일)

 

福者 김대권 베드로

                      

 

김대권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39.05.29

신태보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39.05.29

이일언

전주 숲정이

1839.05.29

이테

베드로

전주 숲정이

1839.05.29

정태봉

바오로

전주 숲정이

1839.05.29

 

 

   福者 김대권 베드로(5.29) (순교일: 5월 29일)

성인명

김대권 베드로 (金大權 Peter)

축일

5월 29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충청도 청양, 보령, 전라 고산

활동연도

?-1839년

같은이름

김 베드로, 김베드로,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김대권(金大權) 베드로(Petrus)는 충청도 청양의 수단이(현, 충남 청양군 사양면 신왕리)에서 태어나,

보령의 청라동(현, 충남 보령군 청라면 청라리)으로 이주해 살았다.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화춘 야고보는 바로 그의 아우이다.

김 베드로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교리를 배워 왔으나,

열심히 계명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부모가 사망한 뒤였다.

김 베드로는 한때 충청도 공주의 옹기점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이 무렵에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아내는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을 뻔하였다.

그 사고 뒤에 그들은 지난날의 잘못을 서로 이야기하였고,

이후로는 아내와 화합하여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가게 되었다.

김 베드로는 언제나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계명을 지키는 데에 열중하였다.

주일마다 이웃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예수 성탄 대축일이면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면서 밤을 새웠다.

언젠가는 호랑이가 그의 앞에 나타난 적도 있었는데,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평소처럼 기도를 다 하고 내려왔다.

사순 시기 때면 기도와 묵상을 거르지 않았고,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아우 김 야고보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도 아우의 뒤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순교의 뜻을 밝혔다.

김 베드로는, 전라도 고산으로 이주하여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1827년 정해박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때 그는 교우들에게 피신을 권유하면서도 자신은 천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오래지 아니하여 포졸들이 그 마을로 들이닥치자,

김 베드로는 웃는 얼굴로 그들 앞에 나아가 순순히 고산 관아로 끌려갔다.
고산에서 한차례 신앙을 증언한 김 베드로는, 곧 전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서적을 갖다 바치거나 교우들의 이름을 댈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전주 관장이 그의 아들을 데려와 목에 칼을 겨누었을 때도

그는 “이러한 일로 목이 잘리면 아들에게도 크나큰 영광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배교를 거부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은 유배형을 받았다.

감사 앞으로 끌려가서도 김 베드로의 신앙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수난의 은혜를 한 터럭만이라도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순교의 뜻을 드러냈다.

그의 결심이 얼마나 굳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저의 살과 뼈에 사무쳐 있으므로,

사지를 자르거나 뼈를 부순다고 하여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감사는 할 수 없이 김 베드로를 옥에 가두도록 명하였다.

김대권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12년 동안을 전주 옥에서 생활해야만 하였다.

그동안 그는 세 번이나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 한결같이 목숨 건지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임금의 명으로 전주 장터(숲정이)로 끌려 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39년 5월 29일(음력 4월 17일)이었다.

*124위 복자 자료집에서

       

 

 

 

 

 

충청도 청양 태생으로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았고

한때 충청도 공주의 옹기점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 중에

     호랑이에게 아내를 잃을번 한 후로 부부사이가 화목해졌고

          

주일이면 이웃에 복음을 전하고 사순기간을 철저히 지키며

예수 성탄 대축일이면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는 등

모범적 신앙생활을 하다가 피난처 전라도 고산에서 체포되어

      

12년간의 옥살이 끝에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순교하신

복자 김대권 베드로 님이시여,

        

밋밋한 신앙에 머물고 있는 저희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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