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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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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왕의 아들 혼인잔치의 비유 (마태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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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8-18 ㅣ No.149126

 

2021년 8월 19일 목요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왕의 아들 혼인잔치의 비유 (마태22,1-14)

   

 

1독서<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판관11,29-39)

29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그리하여 그는 길앗과 므나쎄를 가로질렀다그리고 길앗 미츠파로 건너갔다가길앗 미츠파를 떠나 암몬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30 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31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32 그러고 나서 입타는 암몬 자손들에게 건너가 그들과 싸웠다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33 그는 아로에르에서 민닛 어귀까지 그들의 성읍 스무 개를그리고 아벨 크라밈까지 쳐부수었다암몬 자손들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타격이었다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굴복하였다.

34 입타가 미츠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그의 딸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입타에게 그 아이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35 자기 딸을 본 순간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내 딸아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36 그러자 딸이 입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아버지께서는 주님께 직접 약속하셨습니다주님께서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들에게 복수해 주셨으니이미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37 그러고 나서 딸은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이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두 달 동안 말미를 주십시오동무들과 함께 길을 떠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이 몸을 두고 곡을 하렵니다.”

38 입타는 가거라.” 하면서 딸을 두 달 동안 떠나보냈다딸은 동무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자신을 두고 곡을 하였다.

39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

 

화답송 시편 40(39),5.7-8ㄱㄴ.8-9.10(◎ 8과 9ㄱ 참조)

◎ 주님보소서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행복하여라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제가 왔나이다.”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주 하느님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저는 큰 모임에서정의를 선포하나이다보소서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주님당신은 아시나이다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마태22,1-14)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연중 제20주간 목요일(판관 11,29-39ㄱ)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판관 입타는 암몬 자손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서원을 한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때, 저를 맞으러 제 집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30절)

 

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셔서 암몬 자손들을 제압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이 손북을 들고 춤추며 그를 맞으러 나온다. 

옷을 찢으며 비탄에 빠지는 입타~~그는 하느님 앞의 약속(서원)이라 지키고자 하고, 딸도 아버지의 서원을 존중한다.

 

사람을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던 고대 관습은 후대 예언자들의 비판을 받고 율법에서 금지된다.

그러나 우리는 입타의 서원의 정신만은 알아 들어야 한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모리야산에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쳤던 대목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때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순명하는 태도와 정신을 본 것이지, 생명의 단절은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악 대신에 나무 위에 숫양을 마련해 주셨다. 

 

봉헌할 때의 서약은 대죄가 없는 은총 지위에서,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원의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반드시 서약의 내용은 지켜져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판관 입타에서 처럼, 생명의 단절을 가져 오는 무모한 서약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니, 하지 말아야 한다.

 

봉헌과 서약의 정신, 곧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정신은 일상의 삶속에서 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심과 서약은 구분해야 한다.

하느님 대전의 서약의 파기는 죄가 되지만, 자신이 자신 앞에 하는 결심의 파기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참조)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에 비유

(마태 22,1-14)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아들의 혼인 잔치란일꾼사람들이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 나무와 한몸이 되는곧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나무를 구원의 진리로 받아 짝을 이룬 그 한 몸이 되는 혼인잔치인 것이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황소와 살진 짐승의 죽음곧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으로 완성된 구원의 잔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세상과 타 종교인들의 얘기가 아니다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세상과 짝한 모습인 것이다.

 

임금은 진노하였다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하느님 나라는 *악한 사람 *선한 사람 모두가 가는 곳이다.

 

그러나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12 ‘친구여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모두 사람()의 옷을 입고 간다그러나 하늘의 잔치에 들어가려면 하늘의 주인께서 준비한 하늘 예복곧 하늘의 의로움인 십자가의 대속그 의로움그 진리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들어갈 수 있다.

 

(묵시19,7-8)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아마포 옷예수님의 죽음의 옷그분의 수의’ 이다곧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죽음을 구원의 진리로 입는 것(먹고입는 것그것이 성도의 의로운 행위행실이다.

 

1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를 가는 것후해 해서도억울해서도분해서도 아니다씹을 것이 없어서곧 십자나무의 열매그 구원의 양식말씀()이 없어서 이빨끼리 부딫히는 그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성당(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구원의 씨 곧 십자가의 복음이 구원의 진리로 마음 안에 있어야 받는 것이다.

 

참조~(1베드1,23)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아멘.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2,1-14)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11~12)

 

마태오 복음 22장 11절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접속사 '데'(de; and; but)로 시작한다.

이것은 여기서 부터 또 다른 국면의 사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말하자면, 지금부터 임금이 등장하여 임금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임금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잔치가 본격화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영적으로 천국 잔치의 본격적 시작 시점인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통치는 지금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있을 본격적인 천국의 잔치에서 예복을 입은 자에게는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될 것이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게는 큰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복'으로 번역된 '엔뒤마 가무'(endyma gamu; wedding clothes)는 '결혼식 때 입는 옷'을 뜻한다.

본래 '엔뒤마'(endyma)는 '겉옷'이나 '외투'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유다인들의 혼인 잔치에는 혼주가 나누어 주는 예복을 입어야만 했다.

이들에게도 분명히 임금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창세45,22; 판관14,12).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예복을 입지 않은, 너무나 무례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임금의 잔치 석상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심판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심판의 날에 입어야 할 예복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갈라3,27), 자기 육(肉)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대신 성령의 능력을 얻어 입어서(갈라5,22~24) 의로운 행위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묵시19,8).

 

한편,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친구'로 번역된 '헤타이레'(hetaire; friend) '헤타이로스'(hetairos)의 호격이다.

'헤타이로스'(hetairos)는 다정한 느낌의 '동료', '동무'를 뜻하기도 하지만(마태11,16), 문책과 심판의 대상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포도밭 임자가 품꾼 중에 원망하는 자들을 부를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마태20,13),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 오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부를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태26,50).

따라서 여기 본문의 '친구'도 카리옷 사람 유다처럼 거짓으로 하느님의 나라의 공동체 안에 몸붙이고 있으면서도, 의(義)로움을 좇지 않고 악(惡)을 고집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면 무방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로 번역된 '에피모테'(ephimothe; was speechless)의 원형 '피모오'(phimoo)는 '재갈로 입을 막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임금의 질문 앞에 마치 입에 망을 씌운 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임금이 예복을 준비하여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지엄하신 위엄과 그분의 책망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겪게 될 비참한 운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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