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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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율법이 있는데 “예수님이라면?”은 왜 또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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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 [gloria7] 쪽지 캡슐

2021-09-05 ㅣ No.149548

 

 

 

 

 

 

 

 

 

2021년 나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율법이 있는데 예수님이라면?”은 왜 또 필요한가?>

 

 

 

 

복음: 루카 6,6-11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오늘 복음도 율법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법만을 지키려는 이들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대결합니다.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이를 안식일에 회당 안에서 고쳐주십니다. 안식일 법으로는 일해서는 안 되는데, 환자를 치유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는 그것이 죄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 머리 안에는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된다.”라는 율법만이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간단한 물음에도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은 무조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빠진 오류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오히려 자아만 더 커지게 할 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내 뜻과 반대되는 주님의 뜻입니다.

    

 

    의사 김범석 씨는 이런 환자도 접해보았습니다. 폐암 말기의 환자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이혼했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동거인이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부인이 아니었고 환자의 병세가 깊어지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한마디로 보호자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한동안 혼자 병원에 다니며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진행되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화장실도 혼자 가기 어려워 간병인을 두어야 했고 급기야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호스피스 상담을 하며 남동생이 한 명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4~5년 전쯤 동생이 사업을 한다며 2억을 꿔갔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돈을 갚지 못했고 그 뒤로 서먹해져 연락도 끊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그렇게 분하고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호스피스 팀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동생에게 연락이 닿았고 형의 소식을 모르던 동생은 어느 날 형을 찾아왔습니다. 그 환자를 찾아온 사람은 동생이 처음이었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문 앞에 서서 형님을 불렀습니다.

    “형님.”

    

 

    의사는 형제간의 상봉을 위해 뒤로 약간 물러섰습니다. 동생은 형에게 다가갔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피골이 상접한 형의 몰골을 보며 동생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혔습니다. 형제는 서로 그렇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2억 원이라는 돈과 원망과 세월이 할퀴고 간 두 사람 사이의 틈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습니다.

    

 

    한참 뒤, 형이 동생에게 할 말이 있는지 가까이 오라고 힘겨운 손짓을 했습니다. 숨이 차서 목소리를 크게 낼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동생이 형의 얼굴 쪽으로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형은 동생에게 있는 힘을 다해 말했습니다.

    “내 돈2갚아라.”

    

 

    병실에서 두 형제의 화해를 기대하고 있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훈훈해지던 병실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다시 천천히 말했습니다.

    “내 돈2갚으라고.”

    

 

    동생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은 이미 말라버렸고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동생은 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환자도 동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간병인을 보내주었고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했습니다.

     며칠 후 환자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 갚으라는 말이 환자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출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흐름출판]

    

 

    이 이야기를 들으니 임언기 신부님의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냉담하던 어떤 간암 말기 암 환자에게 마지막 고해성사를 권했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나는 신부님 등 뒤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 죄 없어!”

 

 

    누구에게 죄가 없는 것일까요?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율법을 지켰을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 지킨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율법일까요, ‘일까요? 율법은 나의 자아를 죽여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을 자기를 키우고 교만하게 만드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물론 위 예화의 환자도 그렇습니다.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자신은 피해자일 뿐 죄가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있으니 빌린 돈을 갚으라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의 뜻도 그럴까요?

    


    ‘지금 주님의 뜻이란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떤 마음이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셨을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은 주님의 기도에 다 들어있습니다. 만약 오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기도를 단 한 번만 할 수 있었다면 율법주의자가 아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아 숭배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주님의 뜻을 매 순간 찾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예수님 뜻을 따른다는 말은 나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가 된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교회의 예배 도중 찬양대가 마지막 찬송을 부르려는 순간 한 남루한 복장의 사내가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사내는 곧바로 통로를 걸어 강단 앞에 선 후 떨리는 목소리를 말했습니다.

    “저는 몇 달 전에는 활자를 뽑아 조판하는 인쇄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인쇄기가 도입되자 직장을 잃고 며칠 동안 거리를 헤맸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배웠겠지요. 그러나 저를 위로해준 사람은 목사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방금 찬송 주와 함께 가려 하네를 부르셨지요. 과연 그 의무가 무엇인가요?”

 

 

    사내는 말을 마치자 곧 실신했고 며칠 후 목사의 집에서 이런 말을 하며 운명했습니다.

    “예수님이셨어도 당신처럼 하셨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곳의 맥스웰 목사의 설교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미사여구도 예화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묻지 않고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합시다. 우리도 한번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쓰이게 된 책이 찰스 셸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In His Step)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윤리 주의자가 됩니다. 하느님은 윤리 주의자를 구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윤리는 사람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본성은 유일하게 으로만 변화됩니다. 뜻을 바꾸면 본성이 바뀝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유일한 참 자녀인 그리스도의 뜻으로 나의 뜻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아 숭배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단순한 질문을 할 때만 인성의 문을 닫고 신성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https://youtu.be/wRgHsVLSVEA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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