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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마태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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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5-30 ㅣ No.147224

 

2021년 5월 30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마태28,16-20)

 

 

1독서<주님께서 하느님이시다.>(신명4,32-34.39-40)

32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화답송 시편 33(32),4-5.6과 9.18-19.20과 22(◎ 12ㄴ 참조)

◎ 행복하여라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시고당신 입김으로 천상 만군 만드셨네그분이 말씀하시자 이루어지고그분이 명령하시자 생겨났네

○ 보라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주님은 우리 도움우리 방패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주님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2독서<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8,14-17)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보라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가톨릭교리]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신명4,32~34.39~40)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39~40) 

 

여기서 '오늘'에 해당하는  '하욤'(hayom)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 현재의 시점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이 과거에 묻혀진 고고학적인 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번역된 '하셰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 el lebabeka)에서 '하셰보타'는 '돌아가다'란 뜻의 '슈브'(shub)의 사역형으로 '다시 돌이키다', '다시 회복하다'란 뜻이고, 전치사 '엘'(el)은 돌이켜야 되는 방향을 말해주며, '레바베카' '너의 마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너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다'는 뜻으로 새 성경에서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로 잘 번역되었다. 이것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결코 과거 한 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고 하느님을 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항상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새롭게 마음에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땅 이집트에서 이방의 문화와 종교에 둘러싸인 채로 430년을 살아온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 역시 거짓된 이방의 신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현재라는 시점에서 마음에 항상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분이란 사실을 새롭게 다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 다원 주의의 물결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신명4,35)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본문에서 관계 대명사 '아셰르'(asher)는 '그래야(그래서) ~ 하도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아셰르'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말해주기 위해 쓰인 관계 대명사이다. 

한편, '잘되고'로 번역된 '이타브'(itab)의 원형은 '아타브'(yatab)로서 '좋은'이란 뜻의 '토브'(tob)와 어근이 같은 말이며, 거기에 전치사 '레'(le)와 함께 쓰여서 '~에게 잘 되어가다', '~에게 기쁨이 되다'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주어는 바로 앞에서 다룬 내용 전체, 즉 '모세가 명하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행동'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너희와 너희 자손들에게 기쁨이 되고 좋은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느님 백성의 삶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신의 현세적 복(福)에 관련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하느님 중심의 차원 높은 신앙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대축일

 

2021년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마태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 예수님께서 배반의 죄를 짓고 끝내 돌아오지 않고 죽은 유다가 빠진 열한 제자인 것, 후에 마티아가 뽑혔지만(사도1,26) 성경은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다. 그것은 내가, 우리가 그 열두번째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아~ 예수께서 돌아가시기전 분부하셨던 곳으로 살인자들의 도피성이 잇었던 곳 중 하나이며(여호수아21,32) 또한 그곳은 이민족의 갈릴레아로 첫 제자들을 뽑으신 곳이다.(마태4,15-18)

 

먼저 도피성을 보면,~

(여호20,6-7) 6 그 살인자는 재판을 받기 위하여 공동체 앞에 설 때까지, 그리고 그때의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그 성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자기의 성읍, 곧 자기가 도망쳐 나온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7 그리하여 그들은 납탈리 산악 지방에서는 갈릴래아의 케데스를,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서는 스켐을, 유다 산악 지방에서는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을 성별하였다.

= 죽어야할 죄인(살인자)이 대사제의 죽음으로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곳이 도피성, 그 도피성 갈릴레아에 대 사제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이민족들에게, 그리고 죄인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제자들을 동참시키려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자들을 뽑으셨다는 것은, 그 제자들이 자유를 받아야 할 죄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 이 세상이 구원자를 기다리는 갈릴레아인 것이다.

신앙의 시작은 이민족으로 죄인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아브라함도 이민족으로 우상을 팔아 살았던 그 죄인이었을 때, 부르심을 받았쟎은가~ 우리의 본래의 자리가 그 죄인들의 갈릴레아라는 것이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 삼년 반을 밤낮으로 함께했던 그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이 그분을 뵙고도 의심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기적의 肉을 입은 예수님을 따랐고,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것이다.(필리2,6-8참조)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 하늘의 용서, 자유의 권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법으로 가르쳐 행위의 신앙으로 지키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 사제의 죽음으로 받는 하늘의 용서, 자유 곧 십자가의 죽음, 그 예수님의 대속, 그 길을 진리로 가르쳐 하늘의 자유를 얻어 하늘의 생명을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 그것이 지키는 실행인 것이다.

 

(야고1,23-25) 23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 그러나 지금 이 세대에는 하느님의 뜻을 지키기가 너무 힘들다. 사람의 마음(뜻)을 현혹시키는, 감동시키는 그럴듯한 헛된 가르침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2티모4,2-4)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 참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죄)을 깨닫도록 꾸짖는 가르침이다.

그래야 다시 살릴 수 있으니까, 하늘의 참 자유를 줄 수 있으니까~ 예수님도 그런 가르침을 하셨쟎은가(루가12,51)

그러니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그 행위의 어리석은 신앙생활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는 참 신앙생활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에페5,16-17)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아멘.


 

(백) 삼위일체 대축일 - 6월 11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마태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ㄴ~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해당하는 '파사 엑수시아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 (pasa eksousia en ourano kai epi tes g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에서 '하늘과 땅의'로 번역된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en ourano kai tes ges)는 '하늘 안에 그리고 땅 위에'로 직역되는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권한'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ousia)는 신약에서 '권세', '권능', '권리', '힘', '자유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중보자(중재자)로서의 권한'이 강조된다.

 

또한 '나는 ~받았다'에 해당하는 '에도테 모이'(edothe moi; was given to me)에서 '에도테'(edothe)는 '주다'는 뜻을 지닌 '디도미'(didomi) 동사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동사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받은 권한이 단번에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화(강생) 이전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자연계와 영계를 제어하는 권한을 나타내보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권한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지니셨던 권한에 비하면 제한적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십자가상 구속(대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잠시 성부 하느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한을 다시 받아 회복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속 사업과 부활 이후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오직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하셨다(요한5,20~22.3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권한을 가지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에서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영역인 하느님의 나라는 선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장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너희는 가서'로 번역된 '포류텐테스'(poreuthentes; go)는 복수 2인칭 명령 분사이며, '너희'는 직접적으로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사도1,8참조).

그리고 제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다.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에트네'(ethne)는 '에트노스'(ethnos; nations)의 목적격 복수로서 제자를 삼는 대상이다.

 

또한 '제자로 삼아'에 해당하는 '마테튜사테'(matheteusate; make disciples; teach)는 '마테튜오'(matheteuo)의 복수 2인칭 명령형 동사이다. 이 동사는 '너희는 가서'에 해당하는 '포류텐테스'(poreuthentes),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가르쳐'에 해당하는 '디다스콘테스'(didaskontes)의 세 개의 분사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의 뜻은 '제자로 삼는 일'이 '가는 것'과 '세례를 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궁극적인 핵심을 보여 주는데, '제자로 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baptizing)는 현재 분사인데,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례가 바로 제자로 삼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밥티존테스'(baptizontes) 기본형인 '밥티조'(baptizo)는 본래 '담그다'는 뜻을 지닌 '밥토'(bap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동사가 '세례를 받다'(사도1,5)는 세례 의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 때에는 '담그다'와 '씻다'(루카11,38참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이 동사를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는 몸을 물에 담그는 의식을 나타내며, 영적으로 믿는 이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이 강조된다(루카12,50; 로마6,3).

또한 이 동사를 '씻다'는 뜻으로 보면, '세례'는 '죄의 씻음', '죄의 용서'라는 의미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사도2,38; 22,16).

 

실제로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뜻과 더불어 죄사함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하셨다.

 

 

 

2017, 6.11,삼위일체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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