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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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솔로몬의 죽음 / 솔로몬의 통치[1] / 1열왕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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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08-25 ㅣ No.14928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 솔로몬의 죽음(1열왕 11,41-43)

 

솔로몬, 사실 그는 운명적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다윗과 어머니 밧 세바 사이에 두 번째로 태어난 것 같다. 분명히 다윗 임금과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밧 세바 사이에 불륜으로 태어난 첫 아이는 하느님의 저주(2사무 12,14-20 참조)로 죽었다. 문제는 불륜을 먼저 저지른 이가 누구냐이다. 아버지 임금 다윗, 아니면 어머니 밧 세바일까? 늦은 밤,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본 다윗일까? 아니면 다윗 눈에 보이도록 목욕한 밧 세바일까? 우리야의 아내인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문제는 다윗의 처신이었다. 그는 임금이란 자리를 이용하여, 부하 요압을 시켜 충직한 군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다. 그것도 밧 세바와의 불륜을 속이기 위해 여러 차례 은폐 시도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우리야를 적의 소굴로 내몰아 죽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당당하게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로 삼았다. 이런 비열한 짓을 한 다윗을, 하느님께서는 그냥 곱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윗은 주님의 노여움으로 밧 세바가 낳아 준 그 애는 죽었고, 다윗은 즉시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는 보속으로 이레나 단식을 했다.

 

이 이후 태어난 이가 솔로몬이었다. 다윗이 지어 준 이름이지만, 실제는 하느님이 손수 지어 준 것이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이다. “내 아들아, 나는 늘 주 하느님의 집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너는 피를 많이 흘리고 큰 전쟁들을 벌였으므로, 내 집을 짓지 못한다. 이제 너에게 한 아들이 태어날 터인데, 그는 평온한 이로, 내가 그의 모든 적으로부터 평온하게 하겠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솔로몬이다. 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겠다. 그가 바로 내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이다.’ 이제 내 아들아, 주님께서 너를 두고 말씀하신 대로 네가 집을 짓는 일에 성공하기를 바란다.”(1역대 22,7-11 참조)

 

다윗의 용서를 구한 회개와 보속으로 밧 세바는 다윗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당신 집을 지어 줄 그 애를 주님께서도 사랑하셨다. 그래서 예언자 나탄을 손수 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라 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드야라고 부르게 하셨다(2사무 12,25). 그렇지만 어인 일로 여디드야란 이름은 더 이상 불려 지지를 않았다. 여전히 솔로몬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디드야는 일종의 솔로몬의 직책일 따름이다. 아버지 다윗은 평생 전쟁으로 하느님의 일을 수행했지만, 아들 솔로몬은 지혜를 겸비한 평화의 사도로 하느님 이름의 집인 성전을 지을 이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집을 마련할 이로 솔로몬을 미리 점지해 주셨다. 솔로몬의 여러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에 관한 것은 솔로몬의 실록, 다시 말해 말씀(사건)들의 책에 쓰여 있다. 사실 이 문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임금들의 결정과 행적을 다 같이 기록해 놓은 두루마리였다(14,19.29; 15,23 등 참조). 불행히도 원래의 이 문서는 이미 없어졌고, 여러 역사 문서에 기록의 그 흔적만 다소 남아 있다. 이런 문서는 고대 근동의 모든 왕국에 존재하였다.

 

아무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기원전 970-933)이다. 그는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성에 묻히고, 그의 아들 르하브암이 그 뒤를 이어 순탄하게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솔로몬의 죽음은 매우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왕좌를 계승하기 위한 별도의 형제간의 큰 다툼의 근거는 아예 없는 것 같다. 그의 가장 훌륭한 유산이 성전 건축이라면, 가장 고약한 유산은 그의 뒤를 이은 아들 르하브암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만큼 솔로몬이 지혜로웠다면, 르하브암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아무튼 솔로몬은 왕위승계나 후계자문제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적인 일에는 무관심이었다.

 

그렇지만 솔로몬이 죽자 그의 적수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사십 년을 왕국을 통치한 그가 세상을 떠날 때만해도 왕국은 여전히 하나였다. 아무튼 그는 크게 죄를 범하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솔로몬의 명석한 지혜와 찬란한 영광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영광을 다윗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를 생각하면서도, 솔로몬의 불명예스런 치적에 대해서는 냉정히 정리를 해봐야 한다.

 

그는 임금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정을 저버렸다. ‘임금은 군사력으로 상징되는 군마를 늘리거나, 국가 간의 조약으로 정치력을 확보하려는 아내를 늘리거나, 권력의 원천이 되는 은이나 금을 많이 늘려서도 안 되는 것(신명 17,14-20)을 저버렸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그는 이 하느님의 뜻을 망각했다. 군마를 늘려가며 아내를 많이 부를 지나치게 축적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 말씀을 곁에 두고 날마다 읽으면서, 주 자기 하느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율법의 말씀과 규정을 명심하여 실천하는 데는 정녕 소홀하였다. 이렇게 다윗 왕국은 아들 솔로몬의 영화를 끝으로 분열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심지어는 유배의 길로 나서게 될 신세가 될 것이다.

 

솔로몬이 흔히 이야기하는 자식 농사는 관두고서라도, 그는 나름으로 영화를 누리고 죽었다. 그 후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스켐에 모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1. 북쪽 지파들이 반기[2, 통일 왕국의 분열]’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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