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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글방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요한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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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7-26 ㅣ No.148571

 

 

(공동번역성서) 2021. 7. 26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도란도란글방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요한1,19-28)

19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이 때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20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다시 묻자 요한은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예언자요?' 그들이 다시 물었을 때 요한은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 22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줄 말이 있어야 하겠으니 당신이 누군지 좀 알려 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 이렇게 다그쳐 묻자 23 요한은 그제야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오' 하고 대답하였다. 24 그들은 바리사이파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은 또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26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다만 물로 세례를 베풀 따름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27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 베다니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멘

 

오늘은 요한복음에 첫째날을 설명하고 있는 19절부터 28절까지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9절부터 211절까지의 그 일곱 날은 거기 일곱날이 나오잖아요 창세기에 천지창조에 구조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죠 요한복음에 일곱날과 창세기에 그 일곱날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는 거에요 빛으로 시작해서 일곱째 날 하느님에 安息으로 끝나는 그 창세기에 천지창조와 빛이신 예수로 시작해서 일곱째날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시작되는 그 하늘에 안식을 상징하는 그 가나에 혼인잔치로 끝나는 그 두 일곱날 잘 기억해 두시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118절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그분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은혜로 하느님에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임을 천명한 후에 19절부터 211절까지 창세기에 일곱날과 똑같은 구조로 하느님 나라에 완성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시고 211절부터 2장 마지막 절까지에서 성전을 청소하는 장면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구원이라는 것은 율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다 라는 것을 재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3장에서 유대관원인 니고데모를 등장시켜서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쪽에 자격이나 조건을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4장에서는 구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 같은 사마리아 여인 그 여인을 등장시켜서 역시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쪽에 어떤 조건을 근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은혜로 주어진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거에요

그리고 5장에서 38년된 베찌다 못가의 병자를 등장시켜서 구원이라는 것은 이렇게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38년된 병자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뛰어 들어갈 수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38년된 병자는 꼼짝할수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 사람만 하늘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라는 것은 은혜라는 거에요 내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은혜로 우리에게 임해서 은혜로 완성이 되어져 버리는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리고 그 구원은 하늘에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살과 피 예수 그리스도에 공로에 의해서 주어지는 거야를 보여주는게 6장에 오병이어의 기적인 거에요 너무 쉽지 않아요 전체가 그 이야기에요 그리고 7가지 기적을 딱 등장시켜갖고 구원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거죠 7가지 기적 첫번째 기적이 뭐에요

가나 혼인잔치 마지막 기적이 죽은 나자로가 나오는 거 그런 무슨 말이냐하면 죽은 나자로가 살아난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자들이 살아나기 위해선 그 가나에 혼인잔치는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잔치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었죠 거기에 이 잔치가 잔치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보혈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라는 걸 보여주는게 바로 일곱가지 기적인 거에요 그래서 그 수많은 기적중에 딱 일곱개만 요한복음에 등장을 하는 거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이렇게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와 복음만 기록되어 있는 거에요 이렇게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은혜로 완성이 되는 거에요 구원에 현재시제인 성화도 은혜로 완성되는 거에요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에 순종을 반드시 설복시켜서 끌어내신다 그래서 거기에 우리에 행위가 등장하는 것이지 성화는 우리에 힘으로 이루어내는거 아니에요

 

오늘 본문에 내용을 보면 바리세인들이 보낸 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찾아와서 질문을 해요 그리고 요한이 거기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요한이 그들에 질문에 아주 성의없는 대답을 하죠 잘 보면은 느끼셨을 거에요 참 성의없는 대답을 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니가 그리스도냐라고 묻습니다

거기에 물론 그리스도냐라고 물어봤다는 말은 안나오지만 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대답한걸 보면 그리스도냐 라고 물었을 거라 말이죠 아니다라고 대답해요 예 맞습니다 당연한 대답이죠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에요 그런데 두번째 질문 니가 엘리야냐그런데 요한이 아니다라고 대답해요

그리고 세번째 질문 니가 예언자냐그런데 요한이 그냥 아니다 이렇게 대답해요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엘리야였고 그는 예언자였잖아요 그런데 왜 어떤 충분한 설명도 없이 그냥 아니다 라고 이렇게 대답을 했을까요?

 

(마태11,13-14) 13 그런데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14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오기로 된 엘리야가 바로 그 요한임을 알 것이다.

 

엘리야가 누구라구요 예수님이 요한이 엘리야다 그런다 말이에요 그런데 요한은 아니다 그랬단 말이에요 자기는요 그리고 요한은 분명 예언자에요

 

(루가16,16) 16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였다. 그 이후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데 누구나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은 와서 어떻게 했어요 직접 예수님을 보고 저이가 그이다하고 끝난 거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으로 구약에 예언자가 이제 끝난 거죠 이렇게 요한은 구약에 마지막 예언자였고 주님께서도 요한을 가리켜서 예언자중에 예언자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본인 자신도 자기가 예언자임을 알고 있었어요

 

오늘 본문 2223절을 보세요 22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줄 말이 있어야 하겠으니 당신이 누군지 좀 알려 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 이렇게 다그쳐 묻자 23 요한은 그제야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이 자신을 가리켜서 이사야서에 기록된 광야에서 외치는 자에 소리가 나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이 말씀은 이사야서 40장을 인용한 거죠 볼까요

 

(이사40,3-5) 3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4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5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바로 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세례자요한이라고 明記를 하고 있어요

 

(마태3,1-4)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유다 광야 에서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4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그 광야에 외치는 소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바로 그 예언자가 세례자 요한이다 라고 마태복음이 이야기하고 있고 세레자 요한 자신도 내가 바로 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그 예언자라는 것을 알았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요한은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고 난 아니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요한은 지금 그에 대답을 통해서 그러한 간결하고 엉뚱한 대답을 통해서 너희들이 살고 있는 그 어둠에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그 빛에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너희는 내가 설명을 해도 못 알아 듣는다라는 것을 이면에 담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요한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엘리야와 성경이 말하는 그 엘리야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예언자와 성경이 말하는 그 예언자가 다른 것임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엘리야와 그 예언자,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엘리야와 그 예언자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자구요 먼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엘리야는 어떤 엘리야인가

 

(말라3,22-24) 22 '너희는 내가 호렙산에서 나의 종 모세를 시켜 온 이스라엘에게 내린 법과 규정과 계명을 되새기도록 하여라. 23 이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24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

 

구약에 마지막 성경인 이 말라기에 엘리야에 관한 예언이 나와 있어요 이 말라기에 예언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思繹을 예언하는 거에요 여러분 엘리야가 와서 뭘 한다 그래요 여기에 어른의 마음을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어른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러죠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에요 유일하게 한 분 어른은 누굽니까 하느님이잖아요

자녀는 하느님에 백성 아버지에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수 있는 분 예수님이잖아요 예수님께서 그 자녀들의 죄를 몽땅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마음이 외면했던 그 자녀들에게 하느님에 마음이 돌아서게 된 거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말라기에서 예언된 이 엘리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사역을 이야기한 거에요 그런데 세례자 요한도 이 땅에 와갖고 예수 그리스도에 그 사역을 미리 예표하고 죽은 거잖아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건 뭐에요 너희들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이켜라라는 뜻이거든요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그 使役을 미리 예표한 거에요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킬 수도 없었고 자녀에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은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그 사역을 예표하고 갔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례 요한을 가리켜 그가 엘리야였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말라기에서 예언된 엘리야는 예수님이다 세례 요한이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과 사역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 엘리야에 사역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거에요

여러분도 바로 그 엘리야에 삶을 이 땅에서 사셔야 되는 거에요 세례자 요한이 이 땅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너희들 이렇게 살면 큰일나 아버지께로 돌이켜야 돼 라고 한 그 삶을 우리도 살아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리가에서 예언된 그 엘리야의 사역이 우리에게 지금 맡겨져 있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였다 이놈들아 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도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자녀들에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그렇게 외치다가 죽은 것처럼 나도 바로 그 고난에 길 그리고 그 죽음에 길을 가야 되는 거야라고 그 엘리야의 사역을 갖고 요한과 예수님을 이렇게 비교해서 설명해 주신다구요

그러니까 그 말리가기에 엘리야는 사역의 측면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게 맞는 거죠 그게 누구인가 보다는。。

 

마태17,10-13) 10 그 때에 제자들이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께서는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12 그런데 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 멋대로 다루었다. 사람의 아들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은 이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줄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말라기에 예언된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처럼 하느님에 마음과 자녀들에 마음을 돌이켜서 화목하게 하는 역할 그것을 지칭한 거란 말이죠 그 역할이 지금 우리에게 맡겨져 있는 거에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세례자요한처럼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하느님에 크고 두려운 날이 이제 임하는 거죠 그 역할이 뭐에요

나뿐만이 아니라 나 이외에 다른 존재들이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하느님께 돌아서서 하느님과 화목한 자로 되게끔 기여하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죠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엘리야였어요 유대인들도 그 말라기에 내용을 너무나 잘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눈만 뜨면 성경만 봤던 사람들이니까 너무나 잘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말라기에서 예연된 그 엘리야는 불말과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진짜 엘리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그 엘리야가 와서 회개를 외치면서 자녀들에 마음을 아버지 하느님에게 돌리려 할 것이고 바로 그 뒤를 이어서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가진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엉뚱하게 해석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너 엘리야냐 라고 물어본 거에요 실지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와 비슷한 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쳤단 말이에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세례를 받아라 그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저 사람이 진짜 엘리야인가 만약에 저게 엘리야면 이제 곧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립을 시켜줄거구나 이제 다윗 왕국을 회복을 시켜줄거구나 그러니 물어본거에요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그들이 무슨 어떠한 배경으로 물어보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니다 라고 대답한거에요

너희들은 이렇게 잘못 알고 있어 그런데 진짜 엘리아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였단다 나는 너희들이 물어보는 그런 엘리야는 아니고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엘리야는 맞어뭐 이렇게 설명을 해줬으면 될텐데 안 해 줘요

 

이 세상, 이 지구라는 한 공간 안에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어요 한 종류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 세상 속에서 사는 인간들과 한 종류는 하느님을 알고 빛을 보게 된 빛에 세상을 살고 있는 두 종류에 인간이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두 종류에 인간들은 삶에 방식이 다르고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달라져서 서로 이해가 안되요

그렇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지금 이 세상에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과 빛에 속한 사람들 이 두 부류가 있는데 그들은 서로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양식이 다르다라는 것을 암목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요한이 회계해라 세례 받아라 회개의 세례를 받아라 라고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자기 앞에 나왔더니 이 독사의 자식들아 그랬대니깐요 그러면 받으래는 거에요 말래는 거에요 도대체 그들은 요한이 말하는 그 세례의 의미도 모르고 자기들에 해석에 따라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세레를 받으로 나왔기 때문에 독사의 자식이라고 저주에 욕을 퍼부은 거에요

 

(마태3,4-8) 4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5 그 때에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각 지방과 요르단강 부근의 사람들이 다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 가서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 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8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이게 왠 말이냔 말이에요.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의 의미도 그냥 단지 정결의식에 하나로만 알고 있었던 거에요 정결예식이 뭐에요 율법이죠 정결예식은 내가 스스로 나에 노력으로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라는 율법이 정결예식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가나에 혼인잔치에 있었던 그 항아리도 정결예식에 쓰던 물을 담아 놨던 거였어요 그런데 그 항아리가 비어 있었죠

그러니까 이들이 정결예식을 행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만 그랬지 항아리가 비어 있었다라는 건 말만 그랬지 그것조차도 안했다라는 거죠 그런데 주님께서 거기다가 물을 붙고 그것을 포도주로 만드셨다라는 것은 그들에 정결예식으로 그들에 구원이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보혈로만 그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잔치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상징하는 거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에 세례는 죄인들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에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예표하는 거였는데 그들은 착각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렇게 이들이 세례를 정결예식에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 세례자요한 한테 나온거에요 죄 씻자 그거 뭐 나쁜거 아니니까

그러나 이 세례 요한이 이야기한 이 세례는 뭘 예표하던 겁니까 이 세례를 받으면 죄가 사해지나요 아니죠 예수님은 뭐에요 그러면 이 세례는 뭐에요 이 세례는 예수님에 사역을 그냥 예표하던 거였어요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이들이 물에 빠져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거에요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예수 안에 그들을 넣어서 예수를 죽이고 예수를 살려 그들을 구원해 내시겠다라는 것을 세례 요한이 그 세례에서 미리 예표한 거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냥 그게 어떤 하나에 정결예식으로 생각하고 나온 거에요 그러니 이 세례자 요한이 그들을 가리켜서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 지금 이 세례가 뭔지나 알고 나오는 거냐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요한을 보고도 그들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메시아에 앞길을 평탄케 하는 준비하는 그런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이 요한이 나는 엘리야도 아니고 니들이 말하는 예언자도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들이 기다렸던 신명기에 나오는 그 예언자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들은 구약성경에 아주 능통했었으니까요

 

(신명18,15-20) 15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이것은 호렙에서 대회가 열렸던 날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청을 드렸던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하느님 야훼의 소리를 다시는 직접 듣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무서운 불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17 야훼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 주셨다. 18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 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 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친히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시키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나와서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들에게 하느님에 가르침을 전달해 주어서 자신들에 힘으로 자기들이 그걸 지킴으로 해서 하느님과 화목을 이루고 구원을 얻으며 이 땅에서 찬란한 다윗 왕국을 다시 재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거에요 그리고 그 예언자에 말을 안들으면 벌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잘 들어야만 했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은.

그래서 만약에 세례 요한이 그 예언자는 말을 들어야 되거든요 왜냐면 이 땅에서 그들은 찬란한 다윗 왕국을 회복해야 되요 그러니 목적이 다른 거죠 그런 의미에서 니가 그 예언자야이렇게 물어본거란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아니다 그냥 한 마디로 대답한 거에요 나는 니들이 물어보는 그 예언자는 아니야 그러나 나는 성경이 말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바로 그 예언자야 그 대답속에 그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거에요

그런 연유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도 엘리야다 예언자다 이렇게 추측을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물어보시잖아요 저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랬더니 뭐라 그래요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언자라고도 하더이다 그러잖아요 그러죠

 

(마태16,13-17)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그죠? 이렇게 빛을 보고 빛 속에 들어온 사람과 아직 어두움 속에 놓여 있는 사람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거에요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두 세계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거에요

여러분 혹시 그런 경험 안해보셨어요 어떤 무리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니면 어떤 행동을 하는데 나만 이렇게 물위에 기름처럼 동동 뜨는 그런 경험 해보신적 없으세요 도대체 이야기의 주제도 안맞고 바라보는 목적지도 틀려서 그 대화에 도저히 나는 낄 수 없는 그런 상황 혹시 경험해 보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어떠한 사람이 여러분에 무리속에 이렇게 끼어 들려고 하는데 도저히 이 사람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도 못하고 오히려 참 이상하다 신기하다 이렇게 처다보는 그런 경험을 혹시 해보지 못하셨습니까 그 이야기하는 거에요

빛으로 들어온 사람은 세계관이 바꿔요 가치관이 따라서 바뀝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있는 사람들하고 이제는 대화가 안통해요 그리고 서로 서로에 행동양식을 이해도 못하게 된다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속에 있다나왔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빛으로 나온 사람들에 행동과 언어와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도저히 용납하지를 않아요 이해도 못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땅에서 그 경험을 반드시 필히 하셔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으신 거에요 그들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메시아는 예수님이 담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메시아였잖아요

그러니까 본인이 메시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메시아다라는 것을 밝히지 말아라라고 제자들에게 입단속을 시킨 거라 말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감춘것이 아니라 주님은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히브리어로 메시아잖아요 메시아가 헬라어로 그리스도고.

그러니 스승님은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에 아들입니다그랬을때 뭐라 그랬어요 칭찬해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빛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하늘에 언어를 이야기하신다 말입니다 그런데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이야기를 안해 버리는 거에요 못 알아 들으니까 지금 세례자 요한이 지금 이렇게 성의없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 그렇게 하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본문에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배울수 있는 두번째 메세지는 빛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라는 거에요 오늘 본문을 주의깊게 읽어 보신 분은 오늘 본문에 두 종류에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셨을 거에요 한 종류의 사람은 사람이 보낸 사람들 대사제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다른 한 종류에 사람은 누구에요 세례자 요한, 사람이 보낸자와 하느님이 보내신자.

이렇게 두 종류에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아주 뚜럿하게 구별이 되죠 그런데 사람이 보낸 자들은 사람과 세상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관심이 있고 그분만을 높이려고 한다 말입니다

 

(요한1,25-27) 25 그들은 또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26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다만 물로 세례를 베풀 따름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27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

 

보세요 온통 자기와 자기에 유익과 자기에 행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낸 자들과 비교해서 하느님이 보낸 이 세례자 요한은 어때요 자기를 자꾸 낮추는 거에요 그 하느님 앞에서 나는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 못할 자다 신발끈을 풀기 위해서는 몸을 숙여야 된다 말이에요 예수님 앞에선 납작 없드렸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인 거에요

 

(요한3,28-30)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너희는 그것을 직접들은 증인들이다. 29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예수님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되는게 성도에 삶이다라는 것을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서 성경이 보여주는 거에요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소개되어지는 예수는 뭡니까 여러분 나는 흥하여야 하고 그는 망하여야 하리라 그죠? 내가 흥해야되죠 예수님도 나의 흥함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분으로 우리는 잘못 착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절대 그러한 그리스도교는 없어요

 

(요한1,6-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8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보세요 여기 보면 빛을 증언하러 온 자 하느님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 이건 비단 요한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빛으로 보내심을 받은 성도들 전체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성도들은 어떻게 산다구요 나는 빛이 아닙니다를 고백하는 거에요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오늘 본문에서도 나는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세번이나 그냥 연달아 대답하는 거에요 나는 낫띵 하느님이 전부이십니다 내가 우주에 중심 아니고 하느님이 우주에 중심이십니다를 고백하는 것이지요 나는 아니지만 나는 빛이신 그 주님을 증거해야만 하는 자다라는 인식을 갖는 거죠

 

그리고 세번째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야 되냐면은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이 그 빛을 보고 빛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기여하는 그 삶을 나에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 6절에서 8절까지 기록된 말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인 거에요 그게 바로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 빛을 증거하는 삶이 뭐에요 단순히 우리가 전도하는 삶입니까 예수믿으세요 私營利 갖고 다니면서 전교폭발 훈련받고 뭐 이러면서 그냥 전철역에 나가서 전교하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서 전교하고 이게 빛을 증거하는 삶이에요 뭐가 빛을 증거하는 삶입니까? 그거를 알면 우리가 전도나 선교가 무엇인지를 알겠죠 뭐가 빛을 증거하는 삶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증거한다라는거 예수를 비추어 낸다라는 건 그 예수에 삶이 나에 삶 속에서 나온다라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에 삶이라는게 뭐였어요 십자가에 삶 아닙니까 나를 비우고 나를 낮추어서 하느님께 득이 되고 내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그 삶 그게 십자가에 삶이며 예수에 삶이잖아요 그게 내 삶속에서 나오게 하는 거 그것이 바로 빛을 증거하는 삶이에요 예수를 증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건 억지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16절에서 8절까지에 말씀이 나는 빛이 아니다 그리고 빛을 증거해야 된다 그리고 내가 빛을 증거함으로 인해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빛으로 돌아오게 끔 그것을 목적으로 하여 나는 삶을 살아야 된다라는 이야기가 바로 19절부터 이렇게 풀어서 설명이 되어져 있는 거에요

19절에서 28절까지에서 나는 빛이 아니다라고 요한이 외치잖아요 그리고 29절에서 34절까지에서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요한에 모습이 나와요 그리고 35절부터 결실이 맺히죠 어떻게 맺혀요 1장 마지막에 가면 세례 요한의 두제자가 드디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잖아요 그 이야기를 그대로 그렇게 풀어놓은 거에요

 

성도에 삶은첫째 자기가 빛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에요 내가 우주에 중심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면 안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거라 말입니다 그게 나는 빛이 아닙니다에요 두번째가 성도에 삶은 빛을 증거하는 삶이여야 된다라는 거에요 세번째 성도에 삶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믿게 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진 삶이여야 한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에 상황과 조건과 환경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되는거에요 절망하고 교만떨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왜 우리 성도에 삶에 라는 건 없는 거니까 이게 그리스도교에 핵심 교리인 거에요 내가 부인되는 삶을 사는거 그것이 성도에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환경과 조건을 내가 행복한데 필요한 부수적인 것들로 이해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 환경과 조건이 변함에 따라서 행복해 지기도하고 불행해 지기도 하는 거에요 그러나 내가 죽은 사람은 환경과 조건이 어떻게 변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영광이 돌려지만 그걸로 일희 일비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이혼하면 안되요 죽을때까지 이를 악물고 사셔야 됩니다 마찬가지에요 자식들 부모 마찬가지에요 왜 그게 부끄러워요 왜 챙피합니까 그런 상황과 환경과 조건은 하느님이 나에 거룩을 위해 나에 하느님에 자녀됨을 위해 하느님이 허락하신 거라는 거에요

아니 하늘에 날아다니는 참새 한마리도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떨어진다면서요 그럼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연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지금 확인이 되었다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지금 나에 그리스도인됨을 위해 하느님이 지금 마련해 놓은 셋트 아닙니까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 알았으면 피흘리기까지 가는 거에요 싸우는 거에요

 

(히브12,1-4)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 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 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 갑시다. 2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3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 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면서 아직까지 피를 흘린 일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당시에 헬라 문화속에서 아주 유행하던 마라톤 경기하고 검투사의 경기 두개를 예로 들어서 성도에 삶을 설명한 거에요 마라톤은 뭐에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춰서는 안되는 거에요 그게 성도에 삶인 것입니다 게을러지면 안된다라는 거에요 그리고 검투사의 경기 그거는 한눈팔면 죽는 거에요 피흘르기 까지 싸워라 그러잖아요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다 이런 구절 있잖아요 그게 우리의 신앙생활인 거에요 그러니까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하셔야 되는 거에요

 

(요한5,44) 44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 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가 있겠느냐?

 

보세요 죄인들에 본성은 자기들에 영광을 취하는 거에요 그러나 하느님에 자녀들은 하느님에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대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니가 엘리아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면 도대체 누구냐 라고 물었을때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그런거에요 소리를 내서 이 소리를 발하게 하신 그 존재를 보게 만드는게 소리 아닙니까 성도들은 바로 그 소리인 거에요.

나로 하여금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는 소리 그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에 소리인 거에요 그런데 그 소리는 세상을 향해서 어떤 소리를 내야 되는가 이사야서 40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다시 한번 볼까요 거기에 나와요 그 소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건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 건지

 

(이시40,3-8) 3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4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5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 6 한 소리 있어 명하신다. '외쳐라.' '무엇을 외칠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7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 가는 야훼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8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뭘 외치는 거에요 소리는 인생은 다 풀이야를 외치라는 거에요 그리고 너희들이 이 세상에 아름답다고 쌓아놓은 그것들은 전부 하루 아침에 날라갈 거야 다 시들어 버릴거야 그거 외치라는 거에요 그게 뭐에요 그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잖아요 나만을 위해 힘을 쌓는 그 삶을 포기하는 그 삶 아닙니까 여러분 성도에 삶인 거에요

그래서 신자들에 신앙생활은 자꾸 자기를 비워내고 자기를 포기하고 탐심을 털어내는 쪽으로 이렇게 흘러가게 되는 거에요 하느님이 그리로 인도하시는 거에요 그 사람이 너무 건강해갖고 그 건강한 몸을 갖고 하느님을 섬기고 증거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자기에 육신에 쾌락을위해서 살고 있다면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병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을 해보세요 수많은 사도들 예언자들 그리고 순교한 그 수많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 전부 저주받아 죽는 것입니까 아닌 거에요 그 상황속에서도 믿음을 발휘하고 정금같은 믿음을 발휘하고 간 하느님에 참 자녀들인 거에요 그게 여러분 이 땅에서 하느님이 성도들의 믿음을 어떡게 확인하겠어요

믿음이 뭡니까 보이지 않는데 본것처럼 사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하느님이 내것을 다 거둬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거기 개의치 않고 여전히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꼭 붇들고 있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걸 보기 위해선 이게 없어져 봐야 이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인줄 알거 아닙니까

뭐든지 다 잘되고 뭐든지 내 마음대로 다 되는 그 상황에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걸 믿음이라고 하나요? 왜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그래요? 눈에 보이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안들어 진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에 상황이나 처지 조건 이런 것 갖고 부끄러워하고 기죽고 그러지 말란 말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에 상황이나 조건 소유 이런거 갖고 자랑하고 교만떨지도 말고, 그건 단지 나에 하느님 자녀됨을 위해 하느님께서 방법이요 도구요 수단으로 잠시 허락하는 것들이니까 그 속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면 되는 거에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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