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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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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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8-18 ㅣ No.149128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이 우리 삶 속 깊이 들어와 있으면서 손으로 글 쓸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쉽게 문자를 보낼 수 있고, 기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일정표에 기록하는 정도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학생 때는 타자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글을 썼습니다. 논문도 원고지에 썼습니다. 3학년 때입니다. 신약성서를 가르치는 신부님께서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4복음서 중에 하나를 방학 중에 필사해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성서를 읽었지 쓰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방학 숙제로 마르코 복음을 썼습니다. 다른 숙제도 많았지만 성서필사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숙제로 성서 필사를 하였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은 신앙 때문에 성서를 필사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 쓰신 성서를 보았습니다. 아버님의 힘과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쓰신 성서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숙제로 성서를 쓰는 대신 신앙으로 성서를 썼다면 성서를 쓰는 시간이 더욱 풍요로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보에서 성서를 필사한 자매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서 필사로 몇 가지 생활의 변화가 생겼다. 우선 틈날 때마다 성서를 펼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럴수록 천주교 신자는 성서와는 먼 사람들이라던 말에 부끄럽게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사 때마다 듣던 성서 구절을 다시금 새겨 읽으면서 구약의 약속과 계명들이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시편의 내용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새김이 그대로 생활에 반영되진 못했지만 반성의 기회가 잦아졌고, 주변에 대한 애정의 시선도 늘었다. 글씨에 정성을 들이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좋은 변화다. 성서를 쓰는데 글씨를 함부로 휘갈길 수는 없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옮긴다는 생각 탓에 글씨를 반듯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반듯하게 썼다. 이런 정성은 생활 전반에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그릇을 닦는데도 조심스러워지고, 걸레질도 꼼꼼해졌다. 왁자하던 목소리는 줄이고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신경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성서를 쓰면서 가지게 된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활 전반으로 옮겨지는 것 같다.

 

발목 수술로 입원이 길어져 거의 일 년 동안 필사는 엄두도 못 냈다. 빨리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누워 지내면서도 성서를 펼쳤다. 읽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음에도 성서가 위안이 됨을 새삼 깨달았다. 스스로 정한 기한의 벽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꼭 정한 시간에 정한 양의 밥을 먹어야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새기고 행하느냐에 따라 영혼의 양식이 되느냐 마느냐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지도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하던 것 외에는 크게 흥미를 갖지 못하던 터였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두려웠다. 성서 필사는 이런 조바심을 조금씩 사라지게 했다. 두께만 봐도 위압적인 이 책의 필사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인 듯하다. 이제 절반쯤 필사를 진행하고 보니 꼭꼭 눌러쓰기만 해도 힘이 생긴다. 어떠한 일에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다. 나를 다시 일으켜주실 주님을 날마다 만나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와 예복을 이야기하십니다.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입니다. 예복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성서필사를 하는 자매님은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예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성서필사를 하면서 생각이 변하였고, 변화된 생각이 삶으로 드러났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 시간을 혼인잔치에 필요한 예복을 준비하면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성서필사도 좋은 예복입니다. 이웃의 아픔에 함께하는 봉사도 좋은 예복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도 좋은 예복입니다. 잘 들어주는 것도 좋은 예복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 주는 것도 좋은 예복입니다. 우리가 예복을 준비한다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복을 준비한다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 기쁨, 자유를 얻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현실의 삶에서 이미 천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 역시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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