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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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나는 주님께 어떤 존재일까?- 반영억 라파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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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7-06-29 ㅣ No.112920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마태16-13-19)

 

 

      나는 주님께 어떤 존재일까?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베드로 , 바오로성인의 삶을 본받고 복음전파의 열정에 목말라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던 하느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 구세주(그리스어), 메시아(히브리어; 기름부음 받은 사람)라는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 혹은 다른 예언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고백했는데 그들과는 다른 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를 아느냐고 묻는 질문이 아니라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냐?를 묻는 것이기도 하고, 그에 따른 ‘나는 당신의 무엇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주님 손에 쥐인 작은 몽당연필’로 표현하였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환시를 통해 “너는 누구냐?” 는 한 소년의 질문을 받게 되는데 “예수의 데레사”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꼬마에게 묻습니다. “너는 구구냐?” 그에 대한 소년의 대답은 “데레사의 예수다.”였습니다. 우리의 고백은 어떤 고백일까요? 그리고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화답해 주실까요?

 

오늘 기억하는 베드로, 바오로 두 분은 달라도 너무 다른 분이었습니다. 출신부터가 베드로는 배움이 부족한 어부였고,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지닌 바리사이파 출신이고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인들을 위해, 바오로는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두 역할이 합하여져 모든 민족을 위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어 함께 협력하며 교회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성향을 충분히 존중하시며 당신 구원사업을 완성하십니다.

 

바오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헤치며 누구보다도 열성적이고 용감하게 복음을 전한 복음의 사도였으며 스승 가말리엘 밑에서 제대로 된 신앙수업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많은 서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그 핵심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진리를 체계화하신 분입니다. 사도 바오로 덕에 이방인에게까지 주님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흔들림 없는 신앙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이어받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안다는 것은 곧 내 정체성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무엇입니다.’라고 확실히 고백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베드로와 바오로는 주님을 등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모두 떨어져 나갈 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마르14,29).하고 말한 그 밤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씻어 주시는 주님의 물음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21,17).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21,17) 하셨습니다. 세 번 의 배반을 세 번의 사랑으로 감싸주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고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 함께했었습니다. 열렬한 유다교 신봉자였던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주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주님을 증거하며 마지막 삶을 봉헌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말합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4,6-8).

 

베드로, 바오로! 그들은 인간은 연약하지만 주님의 은총이 함께할 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는 아픈 과거 때문에 더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느님 안에서 노력했고 어려움 중에서도 희망을 찾은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히려 연약함 때문에 주님의 손길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주님을 체험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열정을 가진 신앙인이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에서 흔들림 없기를 기도하며 도대체 나에게 주님은 어떤 존재인가? 묻고, “당신은 저의 모두입니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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