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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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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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9-27 ㅣ No.5884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6 주간 화요일 -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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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고해성사 주는데 한 젊은 자매님이 들어왔습니다. 고해를 하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전 신부님이 싫어요.”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자들에게 저를 싫어할만한 일을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어떤 신부님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이요.”라고 해서 그 당사자가 바로 나임을 알았습니다.

“왜 싫으신데요?”라고 물었더니 그 자매는 “그냥 싫어요. 신부님이 싫어서 성당 나오기 싫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성당은 나오셔야죠. 제가 싫으면 주임 신부님 미사에 나오시고 고해성사도 그분에게 보시면 될 거예요. 싫으면 안 보시면 되지 성당을 안 나와선 안 돼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누구인지도 사실은 제가 싫은 것이 아니라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압니다. 관심을 받고 싶은데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마지막 과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사실 이번에 올라가시면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도 아십니다.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을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쳐야 하는데 사마리아 마을에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진 다른 유다인들과는 달리 자신들을 인간 취급 해 주었던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도 하고 그 마을에서 머물기도 하셨으며 착한 사마리아 이야기도 그들을 매우 기분 좋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니 다른 유다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의 피가 섞여 있다고 여겨져서 같은 이스라엘에 있지만 피가 더러운 사람들로 여겨졌고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과월절을 지키러 올라가시니 결국 자신들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광분합니다. 예수님만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잘 해 준 사람이 없었는데 백팔십도 변해버린 사람들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태워버리고 싶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성질이 불같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보아네르게스 즉 ‘천둥의 아들들’이라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마르 3,17).

예수님은 이렇게 흥분하는 이 형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당신을 받아들일 다른 마을을 찾아가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한 일에 대해 보답을 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을 내버려둡니다.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말로 하면, “어쩌라구. 그냥 냅둬!”, 즉 영어로 하면 ‘Let it be! There's nothing to do.’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안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히 무언가 나에게 서운한 것이나 혹은 어떤 것을 바꿔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 때문에 당신의 계획이 좌지우지 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복이나 맞받아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아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반응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반응에 대해 맞대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다고 내가 바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면 화가 나고 흥분하게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가장 잘 살고 있는 사람이 그런 반응에 침착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욕하든 말든 우선 잘 살고 봅시다. 그러면 누구의 판단도 두렵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준비가 더 중요하다

저는 강론이 길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사실 짧게 하면 준비하는 사람도 편하지만, 그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체를 영하기 위한 준비를 잘 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다니다보니 어떤 신자들은 성찬 때만 들어와서 영성체만 하고 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신부님 말씀으로는 봉헌 금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유야 어쨌든 성체만 영하면 미사를 한 것이고 은총을 많이 받은 것이라는 생각은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에 야고보와 요한이 분개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그들을 꾸짖습니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보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들은 보복을 톡톡히 당한 것입니다. 사랑이고 행복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냥 체념하고 아픈 가슴을 안고 그저 스쳐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번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께 이런 아픔을 계속 드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많은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까지 들어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도 걸고 그들 곁에 머무시며 은총을 베푸신 것은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에게 벌레취급을 당하는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엔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성전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자신들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처음으로 은총을 받은 이후에 자신들을 꾸준히 준비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아 예수님의 본 모습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신자가 아무리 성체를 열심히 모셔도 삶의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미사는 나가되 예나 지금이나 성덕엔 변화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과 한 몸이 되기 위해 들어오시지만 그 사람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다시 빠져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매일미사가 의무가 아닙니다. 미사만큼 거룩한 것이 없지만 일 년에 단 한 번 미사를 하더라도 그 미사를 위한 준비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사는 죄가 아니더라도 매일 성무일도를 거르면 죄가 됩니다.

그리스도와 완전히 한 몸이 되셨던 분이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계약의 궤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감실입니다. 계약의 궤는 안팎으로 금칠이 되어있었습니다. 금은 성령님을 상징하고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잉태되시기 이전에 성령님이 먼저 오셔야 했던 것처럼, 금칠이 먼저 되어 있어야 그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준비가 되어야 그 분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매일 미사만 간신히 하고 다른 영적 준비를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일주일에 미사를 한 번만 하더라도 매일 미사 시간에 성체조배나 성경묵상 등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준비 된 만큼 받는 것이고, 그릇의 크기만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퍼붓기만 한다고 다 남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은총을 계속 흘려만 버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그리스도께도 잘못하는 일입니다. 미사의 준비는 이전 미사가 끝나면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 기뻐하라 내 영혼아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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