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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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분열을 부르는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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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0-07 ㅣ No.59065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7 주간 금요일 - 분열을 부르는 교만


 

산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서로 멀어집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서로 가까워지고 그 밑에는 맑은 계곡물도 흐르고 물고기도 삽니다.

서로 높아지려한다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고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치하는 모습은 바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겸손의 모습임을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서로 교만하게 만들어 갈라지게 하는 것이 그의 평생 직무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또 서로서로의 일치도 깨어놓았습니다.

 

한 번은 늦은 저녁 시간에 청년들의 회합실로 들어갔습니다. 여름 캠프를 위해 열심히 회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들어가 앉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어떤 단체장이 청년회장과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회장은 그 청년 단체장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습니다. 그러니 청년 회장은 그 단체장에게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것에서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가 임종 직전에 꼭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가 맡고 있는 단체가 분열되어 갈라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갈라져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서로 갈라짐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심지어는 마귀들까지도 서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마귀가 일치하는 것은 자신들의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바로 인간을 죄짓게 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놓으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이 잃은 하늘나라의 행복을 얻는 것을 못견뎌하고 그래서 인간을 죄짓게 하여 자신들의 원수인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많은 단체장을 나무랐습니다. 그 단체장은 저에게 실망을 하였을 테지만 저는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질서 때문에 공동체가 하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막내라 집에서 항상 부모님께 “그래도 형은 형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야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 회장 대신 그 부속된 단체장의 말을 더 들어준다면 청년회가 엉망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공동체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가장 큰 공동체로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공동체 안에 질서가 잘 잡혀져있고 그 질서를 존중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베드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사도들, 또 72제자 등으로 질서 잡힌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단 둘이 있어도 둘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지 서로 자신이 높다고 주장하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치의 모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큰 분이실까요? 만약 아버지가 더 크신 분이라고 대답했다면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한 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같아지려고 또 높아지려고 한다면 둘은 한 몸이 될 수 없고 하느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자꾸 낮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당신과 똑같이 높여주셔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낮아짐’입니다. 높이 있는 물일수록 서로 갈라집니다. 즉, 계곡물은 많은 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금 낮아져 시냇물이 되면 벌써 많이 하나가 되고 또 더 낮아져 강이 되면 더더욱 하나가 됩니다. 물론 가장 낮은 바다로 들어가면 모두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예를 보면 알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탑을 높이 쌓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어놓아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낮아질 수 있는 것이 힘입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교만한 이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작은 것에서 화를 내고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갈라집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겸손한 사람은 한없이 낮아지려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해야만 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더라도 같은 믿음을 지닌 이들과는 절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한없이 겸손한 분이셨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실 줄 아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들어 높이는 것이 더 쉽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 더 쉽습니까? 자신을 높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교만을 심어주어 우리들이 속해있는 단체를 분열시키려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 마귀가 원하는 분열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마귀를 이기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고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길, 바로 나부터 시작되는 겸손입니다.

 

마귀들도 질서를 좋아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몬데인이란 지역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경을 지키던 1200여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성탄절 특별휴가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가 수많은 희생자를 낸 장소입니다.

그곳은 급경사와 급커브가 많은데 군인들은 휴가 기쁨에 들뜬 나머지 기차가 좀 더 빨리 달리기를 원했습니다. 위험한 곳이라 조심조심 운전하던 기관사는 사람도 너무 많이 탔고 지역도 위험하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 장교가 총을 꺼내들며 나라를 지키는 자신들을 무시하느냐고 하며 빨리 달리지 않으면 몸에 구멍을 내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기관사는 어쩔 수 없이 속력을 내야만했고,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급경사가 나타나서 커브를 틀지 못하고 기차가 전복되어 구르고 만 것입니다.

기관사는 기차에 대해서는 운전자보다 더 잘 아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실을 말하는데도 군인들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몇 명 군인들의 교만함으로 수많은 인명이 죽고 다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은 윤리나 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악입니다. 정돈되어 있는 것들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고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자행됩니다. 전쟁은 그래서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극도의 교만으로 군인들을 몰아넣습니다. 그것이 자유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질서이고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 군인들은 총이 모든 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인 줄 알았지만,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결국 자신들과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만이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가 인간을 파멸로 이끕니다.

 

가정을 방문하다보면 아주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집이 있는가하면 아주 너저분한 집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주 말끔한 집이라고 하여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말끔함이 병적으로 지나칠 때는 오히려 불편하고 숨이 막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잘 정돈하여놓고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의처증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병입니다. 질서는 외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나친 질서는 무질서보다 더 숨 막힐 수 있습니다.

물론 발 디딜 틈도 없이 정리를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병입니다. 사실 하느님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질서가 있고 그 순서는 절대 바뀔 수 없습니다. 질서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이지 서로 자기가 첫째라고 하면 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온 세상을 질서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의 질서는 그래서 하느님의 법입니다. 여름엔 더워야하고 겨울엔 추워야하며, 물은 위에서 아래로, 봄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녀야 정상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연의 질서대로만 산다면 세상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마귀를 쫓아내면 그 사람은 질서가 잡힙니다. 그러면 쫓겨났던 마귀가 다시 와서 자신의 옛 집이 질서 잡힌 것을 보고는 더 악독한 마귀들을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마귀들은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이지만, 사실 그들도 질서 잡힌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질서가 잡혀있어야 그것을 파괴하는 재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혼란 속에서 무질서하게 산다면 마귀까지도 흥미를 잃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위의 예에서처럼 무질서한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평상시 질서 잡힌 사고와 행동을 하고 살았다면 그런 큰 사고는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질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사랑의 질서를 잘 잡아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을 반드시 사랑하고, 보다 적게 사랑해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고, 어느 한 편을 더 많이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야 할 경우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루가 질서 잡힌 삶이 되기 위해서 아침에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질서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삶은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힘이 있어야 정리정돈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서는 힘이고 그 힘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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