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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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 - 선교의 길, 낮아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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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2-03 ㅣ No.60414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 - 선교의 길, 낮아지는 길

 


 

유학을 오래 하고 있으니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빨리 끝내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물론 저도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락을 좀 더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락 할 것 다하면서 공부에 전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만나기 위해 멀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멀어지지 않으면 돌아가는 시간은 더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조금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때’가 찼기 때문에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그 때란 바로 아버지와 멀어지셔야 하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멀어지는 것이 싫어서 결국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피땀까지 흘리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실 수가 없기에 갈 데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지옥’까지 내려가셔서 부활을 기다리시다가 결국 주일 새벽에 부활하시고 또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가시기 위해 승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버지께로부터 멀어져 세상으로 내려오시고 지옥까지 내려가신 이유는 아버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유학 나가는 것이 싫어서 부모님이 저를 말렸더라면 저는 부모님을 미워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들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보다 하느님의 더 큰 뜻을 보시고 다만 빨리 끝내고 돌아오라는 말밖에는 하시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사랑의 본질을 깨면서까지 아드님을 붙잡아 두시지 않고 지옥 끝까지 내려가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라고 아드님을 붙잡지 않으십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함께 예수회의 공동 창시자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수도회에 남아계시지 않고 세계를 떠돌며 수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는 풍토병에 걸려 돌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옥까지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내려가시는 방법은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즉,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 곧 사랑이고 선교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순교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신이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사랑으로 심판받고 구원받는다면 선교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이 없는 것이고 구원에서도 제외되는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기에 프란치스코 성인은 세상 끝까지 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소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물론 이 말씀은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란 말은 ‘apostolus’, 즉 ‘파견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도들만이 파견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의 눈을 만들어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실로암’ 역시 ‘파견된 자’라는 뜻을 지닙니다. 세례 받은 사람 누구나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도록 파견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이유입니다. 사랑한다면 자신만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이 나눔이 바로 구체적으로 ‘선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처럼 발로 뛰며 선교할 수도 있지만, 같은 선교의 수호성인인 소화 데레사처럼 봉쇄 수도원 안에서 선교의 지향으로 작은 희생들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내려오시고 지옥까지 내려가신 것이 선교의 모범이라 한다면 그 방법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곧 자신을 죽이는 것이고, 이 자신의 생명을 상대방에게 전해주어 상대를 다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는 바로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줄 수 있으셨던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겸손하고 낮아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 앞에서 낮아질 수 없다면 아무리 멀리 복음 선포를 한다고 떠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선교가 순교라면 순교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내 발을 씻기신 예수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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