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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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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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121233

 

손목이 아파서 병원엘 갔습니다. 저는 증상을 이야기하였고, 의사 선생님도 저의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혈액검사를 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병원을 찾았고, 혈액검사의 결과는 겉에 드러난 증상과는 달랐습니다. 혈액검사를 토대로 다시금 처방을 받았고, 증세는 곧 좋아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거울에 보이는 것이 실제와는 다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는 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도 다른 것을 봅니다.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기도 합니다. 대기업은 자본이 있고, 조직이 있어서 골목 상권을 장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정부는 소 상인들이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곤 합니다. 가끔 방송에 나오는 갑질도 있습니다. 직원들은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에 아무런 말을 못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힘을 가졌지만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재개발의 과정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세입자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생계를 꾸려가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높은 이주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재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재개발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갑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약한 사람의 것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지는 것은 분명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꽃이 지지 않는다면 이는 살아 있는 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자라지만 병이 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를 거부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건망증이 생긴다는 것은 좀 더 세상을 겸손하게 살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이제 가까이 있는 것을 좀 더 살피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허리가 아프고, 몸이 피곤한 것은 이제 주위에 있는 아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바라보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 매일 선행을 베푸는 것,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닙니다. 조금씩 실천을 하면,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시도해 보면 어느덧 신앙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양심을 팔아넘기고, 폭력을 행사하고, 사기를 치는 것은 별나라에 사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양심을 속이면, 세상의 것들에 물이 들면 그렇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원래 선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악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게 살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하게 살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법과 하느님의 법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물질, 명예, 권력을 추구합니다. 경쟁과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만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1등은 기억하지만 2등은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은 많은 능력과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행복은 성적순, 능력순, 명예순, 권력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법에는 낙오자가 생기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법은 양보, 겸손, 희생,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행복은 물질, 명예,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적자생존, 자연도태와 같은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서로 나누기만 한다면 우리가 모두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있듯이, 우리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사람들 모두는 하느님의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내 몸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의 법을, 신앙의 법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법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법을 따라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물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하 글로리아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할머니께서는 육식을 하지 않으셨지만 80이 넘은 연세에도 건강하셨습니다. 어느 해인가 비가 많이 와서 할머니와 이웃들의 주택이 침수된 적이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약간의 도움을 주었고, 구청에서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빈첸시오 회원들은 장판을 새로 깔아 드렸고, 벽지도 새로 발랐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글로리아 할머니께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손수건에 정성껏 담겨진 돈을 주셨습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으니 그분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도 어려우신데, 본인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시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은 촛불이 어두운 방을 밝히듯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배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방문 교리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본인도 어려운데 매달 감사헌금을 봉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을 위해서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꺼이 나누어 주는 분도 있습니다. 평생 어렵게 벌었던 재산을 사회를 위해서 기부하는 분도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는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참 많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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