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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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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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3-15 ㅣ No.170626

아침 산보 길에 뉴스와 강의를 듣는 것이 저의 일상입니다. 묵주기도를 마치고 늘 하던 대로 뉴스를 들으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습니다. 핸드폰을 꼈다 켜면 되곤 했기에 그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먹통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에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산보를 마무리 했습니다. 다행히 사제관에 설치된 와이파이덕분에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핸드폰에 문제가 있어서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핸드폰 문제인줄 알았습니다. 통신사 대리점엘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리점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핸드폰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통신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정부는 그것이 사이버테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핸드폰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통신사에 있었는데 애꿎은 핸드폰만 탓했습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새벽에 자고 있는데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일의 전후 사정을 잘 모르고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자신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열심히 살았는데 고난과 멸시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잘못 판단하셔서 악인들에게 힘을 주고, 악인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닌지 살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 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원합니다.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악인들의 죄악은 끝내시고, 의인들은 굳세게 하소서.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 하느님은 의로우시다. 주님, 제 의로움, 제 결백을 보시고,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이제 악인들의 죄악은 끝내시고, 의인들은 굳세게 하소서.” 한국에서라면 소비자들의 민원도 빗발치겠지만, 통신사도 오전 중에 문제를 해결하기 마련입니다. 미국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소비자들의 민원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신사도 아예 대리점 문을 닫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도 워낙 바쁘시기에 자신의 고난과 아픔을 미처 모르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 민원을 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사람을 또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권력으로, 재물로, 업적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거룩함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하십니다. 행복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합니다. 행복은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합니다. 행복은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경비병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습니다. 니코데모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요, 메시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영적인 눈이 멀었습니다. 예언자요, 메시아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만이 율법과 계명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듣지도 보지 못했던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권위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박해하려했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잘못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진리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일의 종류나 일의 가치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는 장소와 일을 하는 때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입니다. 아무리 누추한 곳이라 해도 그곳에 주님이 계시면 그곳은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보여도 그곳에 탐욕과 분노가 있다면 그곳은 악취가 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곧 이 오면 어두운 땅 속에서 파란 새싹이 나올 것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저 풀과 꽃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들은,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더욱 더 하느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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