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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rbm95443] 쪽지 캡슐

2004-08-02 ㅣ No.69505

한중일-달라도 너무 다른... 5/10



[중국 문화와 게르만 문화는 실리-명분 문화]

게르만 문화와 중국 문화에서 가장 닮은 점은 '실리' 위주의 문화이다. 겉으로는 거창하게 '인권'이니 '사해동포'니 내세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그걸 내세워 철저히 '실속'을 차리는 게 그들의 문화이다. (이를 실리-명분 문화라고 하겠다.) 반면에 일본은 다짜고짜 '실리'를 취하는 문화다.(이를 실리 문화라 하겠다.)...다짜고짜에는 어패가 있지만....


[한국 문화는 명분 문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철저한 '명분' 문화다. 이미 사태가 기울어 '손해'날 것이 뻔한데도, 자기 목숨을 잃게 되고 자기 가족을 다 죽이게 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거창하게 내세운 '명분'은 절대 취소하지 못하는 게 우리 나라 문화이다. 가장 비극적인 희극이 저 유명한 병자호란이다. '대명사대(大明事大)를 내세우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군자(?)로서 의(義)를 중시했고 일본과 중국과 서양인은 소인(?)이어서 이(利)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박정희가 산업화를 민주화보다 앞세웠으니 군자(?)인 지식인에게 그가 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어도 용서 못할 악인(惡人)이었던 것이다.
대신에 농토를 갖고 있었던 대부분의 지식인과 달리  눈앞의 이익, 곧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했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우리 문화가 얼마나 '독특'했는지, 임진왜란을 겪은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정묘호란을 겪은 지 겨우 9년만에 배달 민족으로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청나라나 명나라나 다 중국 '되놈' 나라라는
'실리'적인 사고를 그 당시 우리 조상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성리학이 아닌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공부한 극소수의 유학자뿐이었다.

그래도 후세 사가(史家)들은 공정하여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린 그를 일러 바보 왕이라고 했다. 영국에는 John, the Fool(바보왕 존)이라고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어진', '마음씨 좋은'이란 인조(仁祖)라는 말을 썼다. 고려의 인종(仁宗)도 그냥 그런 시호를 받은 게 아니다.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기묘한 관계의 이자겸에게 휘둘려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묘청이란 자까지 나타나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허둥지둥했던 인간이었다.
물론 이 '仁'자는 '바보'란 뜻이다. 맹자가 예를 든 송양지인(宋襄之仁)의 '仁'자가 바로 '바보' 인자다. 우리 조상이 역시 문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학문 수준 자체는 아주 높아서 무식하게 '바보 왕(愚祖)'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걸 보면 요사이 우리 네티즌들은 이제 한국 문화보다 서양 문화에 더 친숙해진 듯하다. 어찌나 입들이 험하신지.


[왜 독일과 중국은 통일 전에도 교류하는데 우리는   못할까]

'명분' 문화와 '실리-명분' 문화가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는 게 남북한 관계와 중국-자유중국의 관계이다. 우리는 명분에 얽매여 (이 현상은 의식 구조가 거의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는 북한이 훨씬 심하다)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한다.

서로가 민족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는 데 한 치의 양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김영삼 정권 이래로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해결의 기미가 많이 보이지 않느냐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도대체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는가. 우리가 퍼 주고 욕 얻어 먹은 것밖에 없다. 많은 희망들을 갖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이건 명분 문화를 이해 못하면 죽어도 풀 수 없는 고등 수학이다.  
명분 문화에서는 어느 한 쪽이 항복을 해야 문제가 풀리게 되어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약자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다. 병자호란을 다시 생각해 보라.


[명분 문화의 특징]

명분 문화에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면까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한 한 쪽이 손을 내밀면 그 때는 화해를 할 수 있다. 어디를 봐도 허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반칙왕에서 멍청한 송강호에게 그랬듯이 목조르기(head lock)를 걸어 꼼짝 못하게 해 놓은 후 슬슬 달래야 한다. 까불면 즉시 다시 헤드 락에 들어가야 한다.

단, 말을 듣기 시작하더라도 절대 인격적 모독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조금만 숨을 돌리면 즉시 죽기 살기로 덤빈다. 인격적 모독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많이 줘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자존심 상하고 받느니 차라리 칵 죽어 버리는 게 우리 나라의 명분 문화다.
--대추 먹고 이빨 쑤신다.

우리 나라 사람은 실같이 가느다란 허점이 보여도 죽어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덤비는 정말 집요한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북한이 경제는 남한한테 상대가 안 되지만, 군사는 한국과 주한 미군을 합해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자폭할 힘만 있어도 우리가 내민 손을 절대 잡지 않는다.
명분 문화에서 그것은 곧 항복이기 때문이다. 명분을 희생하고 실리만 취하는 짓은 죽으면 죽었지 한국인은 못한다. 절대 못한다. 낯간지러워 못한다.


[명분 문화를 이해해야 남북 문제가 풀린다]

경수로 건설, 금강산 관광, 식량 지원, 비료 지원 등을 보고 작은 물꼬를 텄다고 좋아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북한으로 봐서는 적을 항복시키고  챙긴 전리품일 뿐이다.
잠수정 침투시키고 대포 쏘고 원자탄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하니까, 남조선 괴뢰 도당뿐만 아니라 미제국주의자도 벌벌 떨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바리바리 갖다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안 받을까 봐 안달을 해서 성의가 하도 '괘씸해서' 마지못해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남조선과 미제국주의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화국'에 갖다 바친다는 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로 되어 있다.

잘 지켜 보라. 김정일 정권은 민간인과의 교류는 철저히 차단한다. 민간인끼리의 교류가 없는 한, 햇볕 정책은 바보같이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죽을 꾀'에 지나지 않는다. 조조가 제갈공명한테 소나기같이 쏜 화살이 사람은 하나도 다치지 못하고 돛에 다 꽂혀서 그대로 다시 자기한테 날아간 것과 같은 '죽을 꾀'인 것이다.
김정일의 정권 다지기에 이용될 뿐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민간인끼리의 자유로운 교류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내민 손을 잡는 행위 곧 '화해의 물꼬'인 것이다.


[민간 교류가 없으면 화해가 아니다]

우리가 도와 준 것이 물꼬가 되려면 그 반대급부를 반드시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 그 반대급부란 게 우리로 봐서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양보이다. 이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이 바로 화해의 물꼬다. 이산 가족 면회소나 편지 주고받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 한꺼번에 될 리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3국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편지 주고받기도 절대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판문점에 우체통을 설치해서 이산 가족 중 힘이 없는 노인들부터 이용하게 하는 게 좋다.


[중국과 자유중국의 민간 교류]

중국인들은 어떤가? 우리와 전혀 딴판이다. 아직까지 3불(不) 정책이라 하여 명분상으로는 교류, 접촉, 통신을 할 수 없지만, 등소평의 개방 개혁 정책으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자, '실리'가 있다고 생각 들자 자유 중국 사람들은 마음대로 중국에 드나들면서 중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한다. 미국, 일본보다 투자를 많이 한다. 연 2백만 명 자유왕래에 연 2억통의 전화통화, 30만명의 대만인 중국거주, 총400억불의 투자(1999년 기준) 등이 현주소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분상으로는 절대 자유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성(省)일 따름이다. 국가간의 교류 즉 외교는 허영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명분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민간 교류는 얼마든지 허용한다. 실리-명분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한국, 자유 중국, 홍콩, 싱가포르를 아시아 신흥공업국이라 하는데,  전에는 닉스(NICS)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니스(NIES)라고 한다. New Industrializing Countries가 New Industrializing Economies로 바뀌었다. 중국의 입김 때문이다. 홍콩과 자유 중국이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Economies라고 한다. 이것은 '경제권'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중국은 아주 명분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이익이 있으면 이 명분을 그대로 둔 채로 제까닥 실리를 챙긴다. 서양과 똑같다. 미국을 보라.
인권을 엄청나게 내세우면서도 어디까지나 국가 이익과 관계될 때만 이것을 무기로 휘두른다. 쿠르드족에게 언제 관심이라도 두던가? 티벳의 인권에 대해 공식적으로 왈가왈부하던가? 김일성의 인권 탄압에는 한 마디도 않고 박정희의 인권 탄압에는 왜 그리 미국이 길길이 뛰었던가?  수백만이 죽이고 죽은 나이지리아 내전에 간섭하던가? 동티모르에 왜 호주가 제일 관심이 많을까?

이런 걸 이해 못하면 미국이 박정희를 그렇게 성토하다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지지한 이유를 영원히 이해 못한다. 그러면 죽어서도 미국에 대해 이를 북북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또 그러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을 도무지 이해 못한다. 미국에게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고 남의 나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리를 위한 명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명분을 내세우다 실리를 잃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그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 미국이 나쁜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중국이나 서양에게 명분은 실리를 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인에게는 명분이 정의를 실현하는 목적 그 자체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카터의 인권과 김영삼·김대중의 인권은 그 개념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대륙에 간 자유중국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모택동'이 어떻고 '등소평'이 어떻고 '문화혁명'이 어떻고 '천안문 사태'가 어떻고, 하며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명분'의 서슬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분'의 틀에는 손도 안 대고 '실리'만 쏙 빼간다.  
                 --계속--

시스템클럽에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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