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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사탄의 도구...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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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구 [hmk12] 쪽지 캡슐

2004-08-06 ㅣ No.69641

TV를 끄고 삶을 켜자!

 

가톨릭다이제스트」는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하게 하고자
“TV 끄고 삶을 켜자” 캠페인을 시작하며, 그 첫 순서로
좌담회를 열었고 이어 TV에 관한 기획글들을 연재합니다.


「가톨릭다이제스트」가 최근 좌담회와 지면을 통해 용기있게 “TV 끄고 삶을 켜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일은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여파로 경향 각지에서 자진해서 TV를 추방하거나 시청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열심한 기도와 성사생활로 돌아오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너, 그 동안 좋은 자리 차지했었지?” 하면서 사제관 거실 중앙에 놓여있던 TV 수상기를 치우면서 꿀밤을 먹였다는 신부님 얘기도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내가 내 집에서 TV를 추방한 건 불과 1년 전이다. 우리 교구 어느 사제가 본당 소식란에 TV의 위험성을 알리는 글을 게재하고 사재를 털어 금연 스티커처럼 생긴 ‘NO TV’라는 스티커를 제작해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동참하게 되었다.

건전한 신앙인이라면 “몸의 무게중심은 세상이되 마음의 무게중심은 반드시 천상이어야 하고, 마음은 하느님의 것이니 전적으로 그분께 애정을 집중시켜야 하는데도” 어리석게도 나는 TV에 매일같이 구애를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럴수록 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를 차츰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TV를 보면서도 즐거운 마음 상태가 되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고, 짜증스럽고 퉁명스런 말을 하게 되고, 마음이 들떠있고, 덜렁거리고, 안정이 없고, 가족간의 대화가 끊기고, 금방 긴장되고, 어느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산만해졌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일간지 기자도 지적했듯이, 요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TV는 이제 ‘바보상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 생존본능까지 착취해가는 ‘흡혈상자’라는 별명이 붙고 있는 모양이다.

좌담회를 통해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TV에 빠질수록 차츰 어휘력과 추상적 사고력을 잃어갔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명쾌한 분석력과 추리력을 지닐 수 없었다. 위험하고도 사악한 생각과 행위들(불경함, 불순함, 선정성, 폭력)이 삽입된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도덕적 가치마저 흔들리기 시작했고, TV의 편견적 속성―선택되지 못한 것에 대한 편견, 희미한 영상으로 인한 섬세함에 대한 편견, 냄새, 맛, 촉감을 가진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감각에 대한 편견―으로 해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점점 편협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TV를 끄고 나면 이완됐던 긴장이나 편안함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감히 치우지 못하고 처음엔 플러그만 돌돌 말아 두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벤트성 프로그램이나 사극이 방영된다 하면 ‘못본 나만 주변으로 밀리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재빨리 켜곤 했다. 관심있는 프로그램만 보고 얼른 끄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리모콘을 이용해 채널마다 돌아다니는 무질서한 집착을 보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기도가 차츰 뒤로 밀려나 하루의 맨 끝 시간에 할애되니 정작 그때는 졸려서 아예 못바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고 소비를 부추기는 별의별 상품광고까지 접하고는 그것들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해서 어느 날 TV와 VTR을 냉큼 고물상에 넘겨버렸다.

TV가 없어진 공간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TV를 통해 넓은 세상이 안방에 펼쳐지곤 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TV를 추방한 뒤 얼마간 마음에 커다란 공백이 느껴졌다. 그 공백은 삭막한 사막 같았고, 그 위로 내 마음이 하는 소리들이 바람소리처럼 윙윙거렸다. ‘TV를 돌려달라!’ ‘이제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너, 뉴스 안보고 살거야?’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래?’…

나는 내 마음이 들려주는 아우성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의식적으로 독서에 몰두했다. 곧바로 영적서적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가벼운 단행본부터 시작할까 하다가 다시 TV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까봐 일부러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장길산’을 택해 읽었다. 처음엔 페이지를 넘기는 데 상당히 애먹었다. 내 의식이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미지가 자꾸 끊기고, 등장인물들과 대사들을 쉽게 잊곤 했다. 그러나 진도는 개의치 않고 내 자신에게 불쑥 화를 내지 않고 더욱 인내심을 갖고 정독해 나갔다. 그랬더니 속도가 붙고 문맥이 잘 파악되고 통찰력이 생겼다. 이젠 웬만한 책은 한 두 시간 만에 읽고 그 줄거리를 간추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성교회의 보물인 영적서적을 꺼내 다시 읽고 있다. 얼마 전 소화데레사 성녀의 자서전과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의 영문 전기를 읽고 내 마음과 영혼의 시선이 천상을 향해 서서히 열리고 있음을 보았다.

TV를 없애고 난 뒤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고, 가족간 대화를 자주 하게 되고, 지난날 무심코 넘겼던 작은 것들의 실제적인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기도와 성사생활에 더욱 충실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예수님께 참 죄송함을 느낀다.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온갖 소리와 영상들이 이 세상을 새로운 ‘바벨탑’으로 만들고 있는 이 시대에 TV를 보는 데 쏟았던 관심과 정력과 시간을 성체조배를 하면서 보냈더라면 감실 주변에 감도는 너무나도 큰 공허, 무관심, 푸대접에 일조하지 않았을 텐데!…

‘일상 하는 일의 성화’를 영적 벤치마킹이라 여기는 박 찬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틈틈이 소리 너머 소리를 듣고, 글도 쓰고, 지난 날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새록새록 새기면서 현재를 살려고 애쓰고 있다. 저서로 「날개가 상한 새도 다시 날 수 있다」,「한 신부님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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