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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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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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4-08-12 ㅣ No.69948

무엇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은 사랑이지 지성이 아니다.
2. 사랑은 풍요로우며 무엇보다 내적인 능력이다.
하느님께는 어떤 것보다 좋은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

지성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한 좋은 도구가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지성ㅇ르 초월해 계신 분이다.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제한된 자기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연을 날리며 그 연이 태양에 닿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세찬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연은 떨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가 지성으로만 하느님께 나아가려 한다면 이같은 한계에 부딛히고 말 것이다.
지성만으로는 단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이 아닌 것이 무엇이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하는 정도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에 관한 문제는 그 윤곽도 파악하지 못한 채 헤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어느정도 능력이 있다.
즉 지성보다 더 큰 능력이 있어 하느님을 응시하게 되면 지성을 뛰어넘어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갖가지 전략을 사용하면서 모든 견지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하느님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분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하느님의 신비를 지성으로 밝히려 했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 어떤 신학자나 철학자보다도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았다.
인간은 사랑으로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다.
시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 이시라는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은 사랑할 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그래서 부족한 인간의 지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인간을 들어높인다.
솔개연은 더이상 종이처럼 찢어지기 쉬운 장난감이 아니라 아주 강한 추진력을 지닌 우주선이 되어 하늘로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다.

사랑없는 지성은 보잘것 없고 한계가 있으며 이것으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 세계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 곧 지성과 의지와 사랑으로 존립하게 된다.

세 가지 선물

<그림 ; 생략>

모든 내적 행위는 이 세 가지(지성,의지, 사랑)의 영향을 받는다.

형제에게 너그럽게 대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지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 뒤에는 의지가 따르고 다시 사랑이 행동하게 한다.

작든 크든 우리의 모든 행위는 이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정하든지, 소풍을 가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정의 저변에는 지성이 활동했을 터이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지가 작용하며,
그것을 기쁘게 사랑으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며,
의지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중요한 능력이지만 작게 드러난다.

우리는 지성을 더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마치 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을 부러워하듯이 말이다.
만일 우리가 "나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라면 거만을 떨 것이다.
마치 잘생기고 부자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정도로는 자신에 대해 그러한 자부심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의지도 매우 존중된다.
"저 사람은 의지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면 칭찬으로 알아듣는다.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사의 말이니까.

그러나 사랑은 위의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은 아마도 지성이 뛰어나고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랑임을 뜻한다.
사랑이야 말로 우리 존재에 대한 드높은 잠재력이다.
인간에게 있어 최상의 행복은 사랑 안에 있다.

요즘에는 기도에 지나치게 지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기도하면서 이런저런 추론을 한다.
그러나 너무 머리를 쓰면서 기도하면 기도가 삶에 파고들 여지가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의지를 앞세우는 결함도 있다.
또한 지나친 열성으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갖가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사랑의 불을 지피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만일 사랑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
우리 기도는 삶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고 하였다.
옳은 말이다.
사랑하게 되면 다른 모든 기능은 유순하고 충실하게 바뀌게 된다.
사랑하면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음악과 독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그곳에 가 있다.
의지도 마찬가지여서 자유시간이 되면 즉시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기도 안에서 사랑을 최대한으로 분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지성을 예민하게 하고 의지를 강하게 하여 하느님께 유순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에 익숙해진 사람은 지성을 연마하고 의지를 강화한다.
이 기도에 습관을 들인 사람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도 문제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지성이 맑고 하느님께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며,
의지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둠에 싸여 있는 사람은 태양빛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처럼 피조물에(무절제한) 애정을 두는 사람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십자가의 성 요한."가르멜의 산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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