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0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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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장례식에서 기뻐하는 사람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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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한 [johnpark] 쪽지 캡슐

2004-08-17 ㅣ No.70122

이글을 쓰며 한편으로는 TV의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는데 남자 단체 제조에서 일본 선수들이

미국과 로마니아를 제치고 1위를 하는군요. 한국은 4위 인듯 싶네요. 중국이 확실하진 않지만

5위이고. 이래 저래 열불 내지는 신경질 나네요.  

 

좋은 글 게속 읽읍시다^^. 가톨릭에 생소한 가족들이 레지오 연도와 연령회의 정성어린

장례준비에 점차 전교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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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장례식에서 기뻐하는 사람들 …(2) 두 번째 이야기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기도의 힘은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불가능 할 것이라던 아버지가 쉽게 예수님을 받아 들이신 것은 어머니의 간절하신 기도 때문이고,  조카들이 ’할아버지는 너무 귀여우셔’라고 할 만큼 아버지는 엄살이 좀 심하신 편이었는데, 그 혹독한 위암 말기 고통을 어떻게 버티실까 우리들은 못내 걱정 했지만, 다행이 본격적인 고통이 오기 전에,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시게 된 것 또한, 아마도 3년 내내 바쳤던 나의 묵주의 기도 덕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좋으신 예수님!

 

나, 무엇하나 그분을 위해 해 드린 것 없어도 언제나 우리들의 기도를 귀담아 들어 주시니 지나가듯 하는 작은 기도 하나에도 정성을 들여 경건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예수쟁이들이라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싫어 하시던 아버지와 방에 단 둘이 앉아서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게 된 나는, 사실 가슴이 무척 아팠다.  평소 아버지는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 하셨던가?  아직도 마음 한 켠 에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실 터 인데......., 아무도 아버지 당신에게 당신의 병명을 이야기 해 드리지 못했지만 본인은 이미 당신 자신의 병을 아시는 듯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버지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쉽게 죽음을 받아 들이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당신에게 사후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아버지 자신의 마음은 어떠 하셨을까?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혼자서 외로운 길을 떠나야 한다는 그 사실이 분하고 억울하고 또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죽음 이후의 두려움을 아주 쉽게 표현하려고 애썼고 다행히 아버지는 잘 이해 하셨다.  

 

죽음은 당신 혼자서 가야만 하는 두렵고 낯선 곳이라는 것과, 처음 가보는 그 낯설고 외로운 곳을 누군가가 함께 해 준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위안이 되겠느냐는 나의 설명에 아버지는 순순히 ’대세’ 받으심에 응하셨고,  아무도 기도 해 주지 않는 비참한 인생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기도해 주는 그런 인생은 참으로 기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성당 분들이 오셔서 당신을 위해서 기도 하심을 허락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의 죽음은 참으로 많은 축복을 받으신 것 같다.  평생 받으신 온갖 복락을 다 합한 만큼 모든 조건들이 훌륭하게 형성된 그런 복된 죽음을 맞으셨다.  어머니의 깊은 신앙을 아시는 신부님께서 아버지가 성당 영안실에 안치 될 수 있도록 허락 하셨고,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넣은 생 미사가 시작되는 오전 8시 바로 그 시간에 아버지는 목동 성당 영안실로 들어 가셨고 자신의 미사가 진행되는 그 시간 내내 아버지는 차가운 시신으로나마 같은 성당 건물에 함께 하셨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많은 교우들이 쉴새 없이 아버지를 위한 연도를 드려 주는 사이 친척들이 모이고 작은 아버지도 올라 오셨다.  우리 집안은 종교를 가진 집이 별로 없다.  아버지 형제인 막내 삼촌 가족과 우리 가족만이 성당에 다닐 뿐이지 거의 모두가 무교인 집안이다.  그래서, 친척 모두에겐 성당에서 치루는 이 초상이 낯설고,  어색 할 뿐만 아니라, 불만이었다.  더구나, 아버지를 성당 묘지로 모신다는데야........  

 

많은 친척들에게는 모두가 하나 같이 신기한 일 들이었다.  성당이라는 곳을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들에게는, 모르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와 경을 외듯 뭐라고 노래를

한참 하고 가는가 싶더니,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 또 노래를 하고, 초상집에 웬 노래야 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금씩 부러워 하는 눈치 였다.  도대체 저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 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모두들 와서 연도인지 뭔지를 계속 해 대는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으리라......

 

음식은 또 얼마나 깔끔하고 맛있게 나오는지 모두들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였고, 오빠 직장 신우회 팀들과 성당의 많은 분들이 내 일 같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도와 주시는 모습들에 모두들 감동을 하였다.   

 

아버지 염하는 모습이며, 수의까지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 어르신네들은 연령회 회원들의 손놀림 하나하나에도 꼼꼼이 살피고 유심히 보고.......,

 

’모두들 참, 잘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능숙하고 정성스럽게 잘하는지...........’

 

장례의 한 단계 한 단계 지나 갈 때마다 그들은 평가하고 또 칭찬하면서도, 이 낯선 장례식이 영 못 미더운 모양인지

 

’두고 봐 야제~ 마지막 까중 잘 봐야 하는기라.........’ 하였다.

 

엄숙한 장례미사가 끝나고 주임 신부님이 온화하고 따스한 손으로 일일이 우리 가족들을 위로 해 주셨으며,  많은 분들이 장지까지 함께 해 주었다.

 

장지인 파주 성당 묘지에 아버지 관이 내려가고 흙이 덮히자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 하였다.  저렇게 가는 것이 죽음 이구나......  따스한 온기는 차가운 땅속에 묻히고, 한 인간의 인생은 저렇게 흙 삽에 덮어져 가려지고, 이제 부녀간의 인연도 땅 아래와 땅 위의 인연으로 나뉘어 지는 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막내 삼촌은 아버지의 무덤위 흙을 꼭 꼭 밟으시며,

 

’형님, 잘 가시오, 형님.... 이게 정말 마지막잉교? .... 형님하고 나하고 이제....이게 정말 마지막잉교?  아이고, 형님~ 보고 싶어서 우짤꼬...우리 형님 보고 싶어서 우짤꼬...’

 

그렇게 너무나, 너무나 서럽게 우시더니,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산 아래로 내려와서는  기억 상실증 증상을 보이셔서 급하게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난리를 또 한번 치루어야 했다.  사랑하는 큰 형님이 병으로 돌아 가신 그 부분만을 도려낸 듯 전혀 기억을 못하셨는데,  마치 거짓말을 하는 듯 희한하게도 아버지가 편찮으 신 부분 부터 돌아 가신 부분 까지를 정말 전혀 기억을 못하셨다.  다행히 병원에서 처방한 수면제를 드시고 푹 주무신 다음 기억이 단편으로 조금씩 되 살아나긴 했지만, 자식인 우리보다 삼촌이 아버지를 더 사랑하셨는가 싶어 자식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같이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정도 더 깊어 지는가 생각 되었다.   

 

둘째 작은 아버지는 장례식 내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이러쿵 저러쿵 아무런 잔소리도 하시지 않으신 채 당신이 완전히 배제된 이 초상이 마치 작은 아버지와는 전혀 별개의 세계에서 행해지고 끝이 난 듯 타인처럼 그렇게 멀리서 말없이 모든 것들을 그저 보고만 계시는 모습이 내 가슴을 몹시 아프게 하였다.  마지막 가는 형님에게 수의도 직접 입혀드리고 장례도 손수 치루어 드리고 싶으셨을 것이고 제문도 멋지게 지어 읽어 드리고 싶으셨으리라.  그러한 당신의 간절한 바람은 어느날 종교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형님은 당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멀리서 그저 아른 아른 깊은 정만 남긴 채, 낯설고 서먹서먹한 형식에 의해서 떠나시고 묻히 셨으니,  그 아쉬운 마음이야 오죽 하셨을까.....

 

아버지를 홀로 땅속에 묻어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서 우리는 우리의 집안 방식으로 엄숙하게 제사를 지냈고, 작은 아버지는 제문을 읽으시면서 흐느끼시느라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셔야만 했다.  제사가 끝나고 거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장례식에 대하여 칭찬 하였으며, 집안 전체가 성당이라는 곳에 많은 호기심을 나타내었다.  

 

장례 미사 중에 이미 성령의 은총을 받아 눈물을 비 오 듯 쏟아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당에 나가겠다는 사람들도 여럿 생겨났다.  많은 집안 어른들은 성당에서 치루는 장례에 대하여 처음에는 우려를 하였으나 어디 하나 흠 잡을 곳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잘하였다고 칭찬 하였고,  아버지는 ’죽을 복’을 타고난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대통령이라도 이보다 더 훌륭한 장례를 치룰 수 없을 것이라고도 하였고,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곡히 연도를 해 주는데, 분명히 좋은 곳에 갔음에 틀림없다며 부러워 하였다.  

 

그토록 완강히 반대 하시던 작은 아버지조차도 내 생전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치루는 장례식은 처음 본다고 하셨다.  특히 장지에서 관이 들어 갈 때 인부들의 세심하고 정성어린 손길에 탄복하였다고 하시며,  작은 아버지 자신도 그렇게 까지 정성스럽게는 못하였을 것이라며, 그것은 특별한 사랑이 없으면 그런 정성스러운 행동은 않는 법이라면서, 돈 주고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랑이라며 칭찬하셨다.  

 

그리고, 그 인부들마저 그러니, 다른 부분이야 볼 필요 조차 없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내심 작은 아버지에게 신경 쓰던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기쁨으로 주님을 찬미 하였다.  작은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가 이 기회에 같이 성당에 나갔으면 하셨지만, 작은 아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리셨다.  

 

그리고 또다시 아버지 방에 혼자 앉으셔서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계셨다.  교수인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년을 종교에 귀의 하시도록 하겠다면서 용감하게 방으로 들어 갔지만, 이내 ’치와 뿌라!~’ (그만 두거라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하시는 작은 아버지의 고함과 함께 밖으로 쫓겨나오고 말았다.  아마도, 작은 아버지는 차라리 이 장례식이 엉성하고 약간은 엉망이 되어 당신의 고집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는지도 몰랐다.  모든 것은 너무나 완벽하고 훌륭하게 끝이 났으며, 그 곳에서 형님의 사랑하는 동생 자신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견딜수 없이 섭섭하셨는지도 몰랐다.

 

나는 작은 아버지 옆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작은 아버지는 아직도 나에 대하여 화가 안 풀리셨는지, 내가 방안에 들어가자 고개를 창가 쪽으로 획! 돌려 버리셨다.  

한때는 커다란 사업체도 거느렸었고 형님대신 집안의 기둥 역할을 대신 하셨던 당신이 이제 늙고 병들어 힘이 없어지니 못된 어린 질녀마저 업신여기는가 오해나 하시지 않으셨을까….

나는 작은 아버지에게 여러 가지 잘 못한 점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아버지 장례식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씀 드렸다.  아버지가 돌아 가심에 대한 슬픔과 함께 장례식 내내 느꼈던 그 기쁨과 환희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아비가 죽었는데 기쁨이라니?………

 

아버지는 참으로 복 받으신 분이다.  위암이시면서 별다른 고통을 느끼시지 않고 일찍 돌아 가셨고, 자신의 생 미사가 거행되는 시간에 영안실에 계셨고, 약 1,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와서 연도를 드리거나,  방문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 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초상집이 아닌 잔칫집처럼 모두가 행복하고 평온해 보이는 이상한 복 받은 장례식이라며 부러워 하고 들  돌아갔으며, 장지는 아름답고, 묘지는 양지 바른 참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계절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하늘이 맑고 들판엔 풍성한 수확이 가득한 복된 계절인 가을에 돌아 가셨고, 모두들 아버지의 ’죽을 복’을 부러워 하였으며, 무엇보다 돌아가시기 전에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김으로 얻는 마지막 평화와 함께 요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다른 새 세상을 향해 떠나셨으니 이보다 더 기쁠 일 이 또 어디 있겠는가?

 

죽을 때 축복 받는 다는 것은 살면서 받는 축복보다 몇 갑절 더 귀한 축복이리라………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 오시자 작은 아버지는 혼자 말 처럼

 

’형님은 참 복 받은 분이여…….  살아서 아플 때는 형수님이 다 보살펴 주고 장례식도 그 어느 누구 못 지 않게 훌륭하게 잘 치루었으니……….’  하셨다.

 

’와요?  마누라 있겠다.  잘 난 교수 아들에다 딸에다,  뭐가 부족항교?……… 그렇게 형님이 부럽거든 성당 나가소’

어머니의 말씀에 작은 아버지는 피식 웃으시면서 또 담배를 물으셨다.   

 

나는 그 순간 참으로 맹랑한 부탁을 예수님께 드렸다.  작은 아버지를 예수님과 만나게 해 주 십사하는………

 

잠에서 깨어난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작은 아버지는 쓸쓸히 말씀하셨다.  

 

’이제, 너도 성당묘지 갈 거고, 선산은 내 혼자 지켜야 되겠구나......’

 

’형님, 혼자 외로우시면, 제가 같이 가 드릴께요.’

 

’아니다.... 니는 성당 다니는 사람이니까 네 처와 함께 성당묘지에 가야지....나 하나면 ......되었다.....’

 

 작은 아버지의 내뿜은 담배 연기는 길게 날아가 이내 흩어졌다.

 

나는 꿋꿋하게 작은 아버지 바로 옆에 앉아서 울적한 마음을 풀어 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작은 아버지는 여전히 고개를 외로 돌리신 채로 앉아 계셨다.  나는 가슴에서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작은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작은 아버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잘 해 드리고 싶다고 했으며, 지난 3년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바쳤던 기도 이야기와 함께, 1년 전부터는 작은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 기도는 3년이 되어서야 효험을 보았기 때문에 작은 아버지도 앞으로 2년은 더 사 셔야 기도 효험이 있을 테니 그때까지, 꼭 건강하게 사셔야 한다고 하였다.

 

’고얀 녀석…… 날더러 2년만 더 살라고?   나는 더 오래 살끼다……. ’

 

농담처럼, 핀잔처럼 툭! 내 뱉는 그 말에 새삼 70 넘은 생을 살아 오신 작은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도 짧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누구나 평생을 통해 살아 오면서 자신에게 일어 났고 또 느꼈던 그 수 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은 그 사람이 죽으면서 같이 소멸되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 할 것을……….

작은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계시지 않으셨다.  

 

’작은 아버지,  제가 작은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계속 해 드릴까요?’

 

’……………….’

 

"예? 그렇게 할까요?’

 

작은 아버지는 아주 작게 보일 듯 말 듯 빙긋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니……, 안 바뿌나?  시간 나면…… 기도 해 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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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버지 김 요한의 장례미사를 훌륭하게 치루어 주신 목동 성당의 염수정 안드레아 주임신부님과 연령회 여러분들과 연도를 해 주신 많은 교우 여러분들께 늦었지만, 참으로 깊은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축복과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델리아 (=네잎 클로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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