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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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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하느님의 사제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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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9-01 ㅣ No.70564

 

                                                  내 아들이 하느님의 사제가 되면




1987년 나이 사십에 결혼을 하고 그 해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 마흔 세 살 먹던 해 아들을 얻었다.

딸아이는 올해 고2이고, 아들녀석은 중2이다. 두 녀석 모두 할머니와 부모의 신앙을 잘 본받으며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의 착한 심성이며 바른 생활 모습을 다시 보고 느낄 때마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거듭 깨닫곤 한다.

아들녀석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예비신학생'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매월 대전교구 서산지구(서산·당진·태안)의 예비신학생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태안 본당의 예비신학생은 지난해 두 명이었다가 올해 다섯 명으로 늘었는데, 모두 중학생들이다. 이 중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예비신학생으로 남아 있고, 마침내 신학교를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100명이 넘는 전체 중·고생 중에서 예비신학생이 다섯 명이라면 비율적으로 그렇게 적은 수는 아닐 것 같다.

아무튼 내 아들녀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비신학생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예비신학생이 무엇이며, 자신이 예비신학생이라는 사실 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자신부터 고등학교 진학은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로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논산 대건고는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로서 우리 본당 신학생들(현재 두 분)의 모교이기도 하다. 지난해 주교로 서품 되신 유흥식 나자로 주교님을 비롯하여 우리 대전교구의 많은 신부님들이 논산 대건고를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가을 교구장 경갑룡 요셉 주교님이 견진성사를 주시러 우리 본당에 오셨을 때 견진을 받은 내 아들녀석을 보시며 하신 말씀이 있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고 하시고는, 내가 "예비신학생입니다."라고 말씀드리니, "그래? 그럼, 고등학교는 논산 대건고등학교로 보내."라고 엄명하시듯 말씀하셨다.

주교님의 그 말씀을 아들녀석이 함께 들었다. 그 후로 아들녀석은 자신이 논산 대건고등학교로 고교 진학을 하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 녀석은 논산 대건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잘 헤아리고 있는 눈치다. 나도 주교님 말씀을 따를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의 마음이 변치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난해 여름 예비신학생 하계 모임에 참여하고 온 녀석이 자신의 장래 진로 문제를 놓고 나름대로 고민을 하는 눈치를 보였다. 아침식사 자리에서 "신부님이 되기도 어렵지만, 신부님이 되면 외로움과 어려움이 참 많을 것 같아요."라고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생각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물론 신부님들은 신부님들대로 평생 동안 인간적인 외로움과 어려움이 참 많겠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기에 능히 참고 이겨낼 수가 있는 거야. 우리 천주교회 신부님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아니? 신부님이 미사 때 제대 위에 밀떡과 포도주를 놓고 축성을 하면 그 순간부터 밀떡은 예수님의 살이 되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가 되는 거야.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성변화(聖變化)'라고 하는데, 그 성변화를 이룰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우리 천주교회의 신부님들이야. 그래서 우리 신부님들을 '하느님의 사제'라고 하는 거야."

어머니도 한마디 거들어주셨다.
"그래서 신부님들은 평생 동안 깨끗한 몸으로 혼자 사시는 겨. 또 그래서 우리 천주교회가 예수님의 거룩한 몸이 될 수 있는 거구…. 그러니께 너두 하느님의 사제가 되려면, 평생 혼자 사는 외로움 같은 것에 대해서는 걱정 따위를 아예 허들 말구, 지금부터 대범한 마음을 가져야 혀."

아들녀석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좀더 긴장한 눈빛이었다. 아빠와 할머니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미사 복사를 하고 있다. 키가 너무 커서 올해부터는 복사단에서 빠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본당의 복사단 사정이 그것을 쉽게 허락지 않는 것 같다.

녀석이 미사 복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좀 우습기도 하다. 176Cm인 아빠의 키를 예전에 추월해 버린 180Cm의 키는 신부님의 머리 위로 멀쑥하게 솟아 있다. 제대에서는 더욱 커 보이는 아이의 키 때문에 새삼스럽게 놀라거나 웃기도 하는 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주일과 평일의 아침미사 낮미사 저녁미사 가리지 않고 벌써 5년째 미사 복사를 하고 있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미사 오르간 반주도 하고 있다. 올해는 학원에 다니느라 평일미사 반주는 하지 않지만, 주일 아침미사와 저녁미사를 한 달씩 바꾸어가며 오르간 반주를 하고 있다.

이렇게 미사 복사도 하고 오르간 반주도 하다 보니, 어떤 주일에는 미사에 두 번 참례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제 누나의 그 시절과는 달리 녀석이 주일 아침에 쉽게 잘 일어나는 편은 아니다. 아빠와 할머니가 녀석을 깨우는 수고를 좀 한다. 그래도 그 수고에는 늘 보람이 있다. 겨울철이나 궂은날 아침에는 내가 차로 태워다주기도 하지만, 녀석이 주일 아침미사에 오르간 반주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선 할머니가 "어이구, 울애기, 오늘두 오르간 반주 잘허구 왔구먼."하며 특별 환대를 해주신다.

며칠 전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토요일 밤에 텔레비전 영화를 보느라 늦게 잔 탓에 주일 아침 어렵사리 일어나 성당에 간 녀석은 집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싫어. 훗날 내가 신부님이 되면, 아침미사를 전부 저녁미사로 바꾸어버릴 거야."

아이의 표정은 단호했다.
녀석의 그 말을 듣고 할머니와 아빠 엄마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입에 문 밥을 흘리며 웃었다.

"그려. 그렇게 헤 봐. 신부님이 된 후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마냥 어렵거들랑…."
그리고 나는 또 한번 쿡쿡 웃었다.

아들녀석 덕분에 한결 즐거운 아침식사였다. *


(040809)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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