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0일 (목)
(녹)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자유게시판

문화일보 에만 연재되는 수녀들의 독서일기 입니다

스크랩 인쇄

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4-09-05 ㅣ No.70725

저하고는 관련이 없으며

많이 봐주십시오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가슴 밝은 한 남자를 만났다. 이원규라는 이름 뒤엔 ‘시인’이자 ‘생명평화운동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좋은 생각」에서 선물로 보내 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라는 책을 덮으며, 내 ‘마음의 닷 마지기 땅’을 빼앗기고 ‘한없이 휘어지고 싶은 마음’을 충동을 느꼈다. 그는 발바닥에 날개를 달고도 이 땅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서 있었으며 그가 말하는 가슴의 언어는 그 자체로 시(詩)가 되어 박혔다.

지리산으로 찾아든 지 7년째, 그는 걸으면서 술(酒)을 익히듯 산(山)의 언어와 돌(石)의 언어와 물(水)의 언어를 익혔다. 그렇게 익힌 몸의 언어를 글로 쏟아내고 있었다. 또 지리산에서의 새로운 삶을 지수화풍(地水火風)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고백한다. 어떻게 감동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명예와 부와 욕망을 내려놓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머무르다 갈 줄 아는 추축컨데 ‘40대 중반의 사내(?)’에게서 풀꽃 향기가 난다.

그는 느리게, 천천히, 여유 있게, 한가하게, 둘러보며 느림의 미학을 깨달았고, 걷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돌아보는 참회의 기도이자 세상 만물과 비로소 하나되는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새롭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 걷고 또 걸었단다. 강원도 황지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를 걸었고, 지리산 아랫도리를 850리 도보순례하고, 백두대간 종주 1,500리 길의 지원과 새만금 삼조일배 800리 길을 세상의 가장 느린 속도로 걸었다고 한다. 몸의 기억에 모든 생각을 맡기며 그렇게 체득한 언어를 풀어내고 있었다.

인간의 발걸음은 빨라야 하루 40킬로미터를 갈 수 있고, 바로 이 거리에 대한 오랜 경험들이 ‘백리 길’이라는 개념으로 자리잡았으리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는 작가, 그뿐만이 아니라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나 북상하는 꽃의 속도가 사람의 발걸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더불어 깨달았단다. 그의 말처럼 이는 누구나 사전 지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직접 해 보지 않고는 또 제대로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책이나 교육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직접 몸 속에 저장되는 지혜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가더라도 머리가 먼저 가면 교만이라는 지식의 올가미에 걸리기 쉽고, 또 가슴이 먼저 가면 격한 싸움 뒤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가더라도 먼저 발이 가고, 온 몸이 가고, 머리와 가슴이 뒤따라가야 한다’고 ‘매일 가는 길도 이렇게 처음 가는 길이라면 날마다 꽃길’이라고... 몸으로 일일이 국토를 둘러보고 생애의 모든 지식과 욕망을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중인 남자.

‘자발적 가난’이라는 친구 시인의 시를 읽으며 두 끼니를 굶어보는 그였다.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시인에게 다가가 먼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손내밀고 싶다. ‘손바닥에 새겨진 잎맥들’은 ‘한 그루 나무의 추억’이라며 ‘그대의 손금이며 지문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속으로 가고 또 가야 할 길’이 있다고 볼 줄 아는 사람. 그의 글에서 향기를 맡는다. 산(山)사람에서 나는 좋은 향기를... 무위자연으로 돌아간 해 맑은 영혼을... 세상에 찌든 내 영혼을 말끔히 헹궈준 그에게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까.


천향길 수녀<성바오로딸 수도회>http://www.pauline.or.kr


149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0727 유재범님 2004-09-05 양대동
70726 남자 나이 사십이 넘으면~~ 2004-09-05 양대동
70725 문화일보 에만 연재되는 수녀들의 독서일기 입니다 2004-09-05 양대동
70724 혹시 2004-09-05 양대동
70723 옥수복님 2004-09-05 양대동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