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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가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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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9-09 ㅣ No.70856

 

*이 글은 미국 LA에서 사는 내 바로 아래 누이동생으로부터 지난해 9월 9일 받은 편지입니다. 지난해 오늘의 편지를 일년 후 오늘 내 홈페이지 '가족공동체' 방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 동생 편지를 일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내용이 참 아름답고 가슴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모든 분께 올해도 좋은 한가위를 맞으시기를 빌며….



번호 # 116/117 크기 4K
보낸 날짜 2003/09/09 07:57:26 [GMT-07:00]
보낸이 bay serena
받는이 jiyoha@dreamwiz.com
제목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를!


†. 찬미 예수!


그리운 어머님과 가족 여러분께….

모두들 즐겁고 평안한 추석 되시길 바랍니다.

어머님 팔순은 주인공의 마음 편하시도록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외할머님께서 74세인가 76세 정도의 천수를 누리셨다고 기억되는데 그 따님인 우리 어머님은 80세를 넘겨 누리게 되셨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셔서 만석꾼이던 부친의 몰락과 남편의 징용(아버님이 다행히 부산에서 탈출을 하셨지만)과 한국동란, 곤궁한 결혼 생활과 7남매의 생육을 위한 모진 고생, 노년의 병고 등 온갖 풍상을 겪으신 어머님께서 꿋꿋한 정신력과 삶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시고 팔순을 맞이하시게 되었으니 그저 기쁠 뿐입니다.

가끔 칠십 넘어 꼿꼿하고 깨끗한 품위를 지니셨던, 내 유년기에 뵈었던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그 따님이신 어머님의 결곡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활고를 겪으시며 살기 위해 자주 비굴함을 감수하셔야 했고, 이악스러워져야 했고, 검게 그을리신 채 늘 화장기 없는 얼굴로 사셨던 어머님이지만, 주일에는 풀먹여 잘 손질된 옷을 차려 입고 성당에 앉아 계셨지요. 그때의 어머님의 품위는 제가 살아오는 길의 거울이 되어 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친정을 떠날 때 어머님은 천안 기차역까지 배웅을 해 주셨는데 그때의 일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발설하는 것인데 그때 저는 탈혼(脫魂) 상태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했었습니다. 어머니는 기차 옆 선로 의자 곁에 서서 출발하는 기차를 보고 계셨고, 저는 기차 칸의 뒤쪽에 있다가 그 앞을 지나는 순간 어머님의 모습을 일별했는데, 어머님의 몸이 텅 빈 하얀 대나무 속껍질이나 나방의 허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면서 약간 입을 벌리신 채 이미 혼백이 나가신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기차의 속도 때문이었을까, 광선 때문이었을까, 흐물흐물 반투명하게 보였던 기이한 그때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때 저는 어머님의 영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치는 인간의 마음이 눈으로 그렇게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순간적인 신비와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딸과의 이별을 그렇게 알맹이 빠져나간 하얀 허물 같은 모습으로 자신도 모르는 채 보여 주셨던 거지요.

돌아가시던 날 비몽사몽간에 저를 찾아 오셨던 아버님 현시와 함께 영의 세계가 존재함을 제게 절절하게 각인시켜 준 장면입니다. 그때 천안 발 기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지요.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홀로 눈물의 홍수 속을 떠다녔습니다.

자식들은 그렇게 부모의 진을 다 빼고 껍질만 남겨 놓는 존재인가 합니다.
특히 저는 공부 더 하느라고 다른 자식들보다 더 부모님을 힘들게 했고 아무 보람도 안겨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의 팔순을 맞이하니 온갖 일들이 회상됩니다. 뒤란의 나팔꽃에 내려 쪼이던 환하고 따끈따끈한 여름햇볕 같던 부모님 사랑이 지금도 피부에 느껴집니다. 가족이 둘러앉아 참외를 먹던 그 여름…나눠 배기를 잘 해야 한다면서 작고 단맛 나는 참외는 어린 동생들에게, 예쁜 참외는 딸들에게, 늘 크고 설익은 참외는 오빠에게 돌아갔었지요.

어머님의 평안과 모든 형제자매들의 건투를 늘 기도하며 오늘의 회상을 끝냅니다.

좋은 추석 되세요.


2003년 9월 9일 화요일 아침, 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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