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女 유소사 세실리아는 한양에서 태어나 스무살 되었을 때 양근(楊根)지방,
마제에 사는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의 배필로 초기 교회를 기초 하셨던 남편의 모습에서
출가온지 3년만에 스스로 입교한 그의 열심함은 훗날 자녀들을 훌륭한 교회 일꾼으로
자랄수 있도록 뒷 바라지를 다한 그의 업적은마치 성모자상을 보는 듯한 모습입니다.
1800년 양근에서 남편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온 유 소사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주문모(야고보,중국)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이듬해 신유년(1801년) 한양에서 큰 박해(辛酉迫害)가 시작 일어 나는데,
이박해로 남편(정약종 아우구스티노)과 큰 아들 철상(哲祥)이 순교 합니다.
이때 유 소사도 잡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옥에 갇힙니다.
남편과 큰아들이 참수된 얼마 후 석방 되지만, 이미 가산이 다 몰수되어 마땅히
의지 할곳도 없게되자 유 소사는 큰딸과 일곱 살의
정하상 (夏祥,바오로), 다섯살의 정혜(情惠,엘리사벳),등과 함께 애써 생계를 꾸려 갑니다
외교인들은 한결같이 죽음이 두려워서 그들을 외면하자 유소사는 어린 아이들을
마제로 데리고 내려와 정약전(丁若銓) 정약용(丁若鏞)시숙 집에서 빌붙어 살지만
친척들은 차마 그들을 내 쫒지는 못하나 그들을 전혀 도우려 하지 않음으로 유 소사에게는
빈궁과 시련의 날이 시작됩니다 .얼마 안되어 12살의 큰딸을 잃게 되니, 유 소사는
오직 슬하의 남매를 키우는 것을 낙으로 위안 삼아 의지하며 지내 오던 중 아들 하상이
장성하여 쓰러진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한양에 가게 되자.
남은 모녀는 주님의 안배에 간절한 소망을 걸고 빈궁함을 참아 냈으니,
그 동안 모녀가 격은 고통을 어찌 다 말로 형언 할수 있을련지요.
어느 날 밤은 유 소사에게 꿈에 나타난 남편 정약종으로 부터...
"나는 천국에 방을 마련할 터이니 생활의 곤궁함을 잘 참아 받으시오.
그리고 꼭 우리를 만나러 오도록 하시오"
이 꿈은 후에 꼭 들어 맞아 유소사의 가슴에 깊은 신앙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의 아들 하상(바오로)은 선교사들을 조선에 영입 하려는 중대한 계흭에 전심하여
여러해 동안을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는데.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시련이었으니
아들이 북경으로 길을 떠날 때마다 이것이 그대로 마지막 이별이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로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격어야 했습니다
하상이 북경을 왕래 하던 중 한번은 북경주교가 그에게 집안 소식을 물으며 ,
노모와 누이동생을 외교지방에 홀로 버려둠을 안타까이 여기자 귀국 하는대로
곧바로 어머니와 누이를 한양으로 모셔와 같이 살게 됩니다.
유 소사는 아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을 천주께 감사드리며 더욱 열심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후에도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한 아들은 여러 번 북경 길을 떠나야 합니다
6~7개월 후에 아들을 다시 보려는 희망에서 모든 것을 주 성모께 의지하며 떠날 때부터
아들의 무사 귀환만을 기구하기를 다 합니다.
이러한 아들 (정하상 바오로)의 노력으로 신부(모방, 샤스탕)와 주교(엥베르)가
잇달아 들어오고 아들이 주교를 모시게 되니 소사는 주교와 같은 집에서 사는
영광스런 은총속에. 칠순의 고령이라 직접 주교님에게 시중을 들지는 못했으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닭이 울면 일어나 지극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미사에 참례 합니다 .
또한 성사와 대재를 지키며 애인(愛人)하는 마음이 유난하여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으레 자기 차지의 밥을 나누는 애긍시사는 참으로 놀라운 희생이라 할수 있을 것 입니다.
마침내 기해년(1839년) 2월 박해가 일어나자 하루는 조카가 와서 시골로 피신하기를 권했으나
유소사는 "나는 치명하기가 소원이었다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과 함께 치명하련다."
라고 하며 거절합니다. 그사이 아들(정하상)이 주교님을 피신 시켜 드린후
그들은 날마다 포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7월 19일 포졸들이 들이 닥쳐 유 소사와 하상 바오로, 정혜 엘리사벳 남매,
하인 김 데레사 등 5명을 체포하여 포장에게 대령시킵니다.
포장이 유소사를 향해 묻습니다.
"네가 천주학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냐?"
유 소사는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네 사실입니다"
이에 포장은 큰 소리로..
"배교 하고 일당을 대라,"
"비록 죽는 한이 있어도 배교는 할수 없습니다. 또한 저와 같이 나이가 많은 늙은이가
무슨 분별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알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아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그러자 포장은 세실리아를 옥에 가두게 하였다
아들이 외국인과 상종한 중죄인으로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국사범과 같이
오라에 묶인채 옥살이를 하면서 수 차례에 걸쳐 문초를 받았고 문초 때마다
혹독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한없이 태연하기만 합니다.
유 소사는 오직 희광이의 칼 아래 위주치명(爲主致命) 하기를 소원으로.
그는 감옥 안에서 함께 고통받는 교우들에게도 오 주 예수 수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그 무한한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을 굳게굳게 다짐하면서 순교 하기만을 기다립니다.
당시 조선의 국법이 미성년과 노인인 경우에는 목을 베는 것은 금지 되었습니다.
이에 유 소사는 옥에 갇혀 있는 5개월 동안 12차례의 문초와 동시에 무거운 형벌을 받음으로써 끝내 그의 기력이 쇠진하여 옥에서 선종하니 聖女 유소사(세실리아)의 나이 79세요
때는 1839년 11월 23일 입니다.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오 주 예수 마리아!"
부르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유 소사는 삼 남매의 훌륭한 순교자를 낳은
자랑스런 참 어머니의 모습으로 숨을 거둡니다,
끝..
다음편은 聖女 정정혜 (엘리사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