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막내였던 내가, 면회 온 아버지를 본지 엊그제 같은데, 군대 간 아들을 본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아버지는 가셨고, 그 아들은 무심한 세월을 보고 있다. 그러나 무심한 것이 어디 세월뿐이겠는가. 속절없는 것이 어디 주름진 얼굴뿐이겠는가.
아, 그때 내 아버지도 이렇게 세월을 보고 계셨겠구나. 막 군대 간 아이, 면회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 그때 내 아버지의 마음도 이랬었겠구나. 위병소 옆 면회실 담에는 다 가져가지 못한 그런 상념들이 줄레줄레 걸려 있었다. 나도 어제 그 보따리 하나를 그곳에 걸어두고 왔다.
아들놈이 치킨이 먹고 싶다 하길래 늦은 밤 배달시켜 둔 족발과 함께 치킨세트 3개를, 그리고 밤늦도록 끓여둔 새우 해물탕과 새벽에 뜸들인 밥을 밥통 채로 싸들고 어둑한 새벽 다섯 시 반에 출발했다. 포천 지나 일동, 이동을 거쳐 산정호수 옆 부대까지 물어물어 갔더니 시간은 일곱시 반이 조금 넘었다. 병사들의 아침 청소하는 모습이 위병소 철망 너머로 보였다. 저들 중에 혹 우리아이가 있지 않을까… 목을 빼고 들여다 보았다. 다들 고만고만한 것이 모두 내 아들 같기만 하다. 군복입은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 이쁠까….
면회가 허락되는 아홉 시까지는 너무 멀었다. 한참을 차 안에서 기다리는데 위병소 저쪽으로 일직주번하사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아들 녀석이 보였다. 요즘 이등병에게는 면회시간도 당겨놓는 위세(?)가 있었던 것일까. 두 달 남짓에, 녀석은 오만 촉광에 빛나는 이등병이 되어 있었다.
입대 후로 `팥쥐엄마"라고 별명을 붙여준 아내 (남들은 울고불고 한다는 아들 입대 날에도 전혀 맨숭멀쩡한 얼굴이었던)와 딸아이와 함께 간 사촌누이와의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위병소 옆 면회실 뜰에 자리를 잡고 가져간 가스쿠커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녀석은 그렇게 좋아하던 족발도, 해물탕도 썩 맛있게 먹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읍내로 나와 눈에 띄는 갈비집에 들어가 갈비탕을 넉넉히 시켜서 그릇째로 가져가 푹푹 끓여 먹였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자식이 먹는 국물에 아비, 어미의 속이 풀어지니… 그것이 부모인가 보다. 25년 전 부모님이 면회 오실 때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가져온 떡이며 고기며를 대충 먹는 시늉만 내고서는 혼자 밖으로 나가 짜장면 곱빼기를 볼이 미어지도록 몰아 넣었다.
귀대 시간은 다섯 시라지만 네 시가 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대 안으로 멀어지는 녀석의 뒷모습이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팥쥐엄마"도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와서 고백하기를 입대할 때보다 더 속이 안좋다고 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면회하고 돌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엇으로 그 애잔한 마음을 덜었을꼬? 우리는 두 시간 만에 아들한테 달려갔지만 우리 부모님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달려왔을텐데….
〈아침글밭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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