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일 (금)
(백)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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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독서,복음서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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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8-31 ㅣ No.149430

1독서<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다라,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시작입니다.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로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종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신교선)

콜로새 서문격인 이 인사의 축복은 바오로 서간의 인사말과 일치한다. 1,1-2의 본인의 주제 이해를 돕기 위한 머리말로서 앞으로 전개될 내용 전체를 이끈다고 볼 수도 있다. 바오로는 흔히 섬새한 이끎말로 서간을 시작하다. 갈라디아에서는 내용의 특수성 때문에 이런 섬세한 이끎말이 있다. 2코린 1.3;에페1.3에는 조금 달리 표현된다,”찬양받으소서...“

 

1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오로“. 1코린 1.1. 갈라 1.1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다만 1코린1.1에는 사도로 부름받은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하느님이 부르심은 그분의 뜻과 직결된다. 부활한 분과의 만남이 하느님 하느님 부르심의 근거다. 이로써 부름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바오로 이후 사도란 표현은 루카 복음서의 사도행전의 경우와는 다르다. 바오로 서간에서 아포스톨로스는 복음선교의 능력과 자격을 갖은 봉사자, 무엇보다도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복음을 선포할 책임을 진 이를 일컫는다. 아포스톨로스는 콜로새서에서 여기만 나온다.

 

형제 티모테오라는 표현이 1코린 1.1과 필레 1장에서도 발견된다. 콜로새서에서 디모테오는 여기만 나온다. 저자는 티모테오가 이미 수신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전제한 듯한다. 디모테오는 바오로를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동행했던 인물로 가장 중요한 협력자 가운데 하나다. 리스트라 출신으로 유다계 어머니와 헬라계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디도와는 달리 주변 상황과 맞물려 개종 때 바오로에게 할례를 받았고 이어 예루살렘에서 옥에 갇힐때까지 바오로의 협조자로 일했다. 그리고는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디모테오는 갈라디아서를 제외한 모든 바오로 친서에 나온다.

 

바오로와 함께 발신인으로서, 전달자로서, 또 다른 모습으로,“형제는 바오로 서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바오로의 협력자를가리킨다. 여기서 저나는 바오로와 함께 수신인들에게 잘 알려진 티모테오와 같은 인물으로 열거하는데 이로써 티모테오가 직접 바오로와 함께 편지를 썼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티모테오와 더불어 바오로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전하고자 할 뿐이다.

 

2

바오로 서간 곳곳에서 믿는 이들을 ”성

라고 부른다. ”거룩하다는 본디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 속한 선택된 자를 지칭하는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표현은 구약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성도라는 칭호는 세례를 받아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여기서 거룩하다란 윤리적 의미로 완전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이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곧 그리스도 신자를 특징짓는 표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수신인들의 처지가 왜 거룩한지, 수신인들이 어디에 발딛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표현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록한다. 그 거룩함의 근거는 그분의 부활사건에 있다. 구원론적 차원으로 볼 때 그들의 사상과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 사건에 실존적 체험은 그리스도 안에머묾으로써 구체화된다.

 

충실한 형제들에게: 세례받은 이들은 하느님 자녀로서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상에 기초한다. 또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특히 예수 부활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형제들은 그리스도 신자를 달리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하느님은 모든 축복의 원천이시다. 그분으로부터 오는 은총과 평화는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그분이 주관하시는 선물이다. 그러한 하느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이시다. 이는 바오로의 세례관을 반영한다. 이 구절에서 하느님은 수신인들인 여러분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발신인 모두를 포함한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은총”: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 그느르심을 뜻하는 구약성서 히브리 말에 근거한다. 그리스 말 기뻐하다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식 인사말로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 하느님 앞에 아무런 거리낌없는 그분과 이 긴밀한 관계를 말할 뿐 아니라 인간을 그분의 선물로 보는 히브리 알 샬롬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은총과 평화는 세례받은 이들에게 부여되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인의 선물이다. 그들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부여하는 영을 선사받았기 때문이다.

 

이 인사말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추가적 표현이 생략되어 있다. 이같은 모습은 콜로새서와 테살로니카 전서를 제외한 다른 모든 바오로 서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에페소서의 사목서간을 포함한 모든 바오로 서간에는 하느님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한다.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와 같은 표현은 그리스도교 밖의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나 바오로의 서간과 이냐시우스의 클레멘스 1서에도 있다. 축측건데 바오로 사도 등장 전에 이미 초대 그리스도교 안에 정착된 전례적 인사말인 듯하다. 유다교 축복문에 뿌리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3

감사의 표시는 기도로 열매맺게 마련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며 그분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도는 공동체를 이끌어갈 책임을 진 이가 그 공동체를 하느님 앞에 봉헌하면서 주고받는 대화다. 이 구절에서는 감사기도가 주류를 이루지만 9절에서는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하느님의 그느르심을 비는 청원기도가 주류를 이룬다.

 

언제나는 제한없음을 강조하는 표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바오로 친서는 물론 바오로 이후 서간의 기도 문맥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은 표현은 이미 바오로 전부터 전례문으로 고정되어 내려왔을 것이다. 2절에는 우리 아버지, 3절에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나온다. 이는 하느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공동체의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불가분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 감사의 대상이다. 신론적 진술이 결국 그리스도론적 진수를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며 우리 주님으로 표사한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며 그 배후에 아버지 하느님이 자리잡고 계시다.

 

감사드리다: 당시 흔히 하던 고마움의 표시다. 기 감사 표시는 수신인, 감사의 내용, 감사의 근거 제시로써 더욱 고조된다. 감사의 대상은 하느님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아버지의 관계까지도 서술된다. 감사의 내용은 2절에 언급된 대로 콜로새에 있는 공동체다. 여기서도 감사의 내용에는 제한이 없는데 이 서간의 수신인 모두가 감사의 내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실존하는 공동체 자체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세가 발신신이 표명하는 고마움의 동기다.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가 콜로새 공동체에 감사하고자 한다.

 

4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 결국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칭한다. “그리스도 안에믿음의 원천은 무엇인가 또는 믿음의 원동력은 어디에 비롯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된다. 어떤 학자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믿음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하느님을 믿는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 자신을 믿는 것이냐 등 극단적 해석은 모두 이 단락 이해에 올바로 접근하지 못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사건을 바탕을 하여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근거와 그 주변 상황 및 공동체의 믿음 형태와 믿음의 현장을 설명해 준다.

 

믿음.사랑.희망 삼단양식은 이미 바오로 친서에서 낯설지 않은 표현양식이다. 이런 예는 바오로 후기 문헌에도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도 보이며, 헬라 유다이즘 특히 지혜문학에 자주 나온다.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로써 다시금 공동체 전체에 관련짓는다. 성령의 능력으로 전개되는 공동체의 구체적 신앙생활에 대한 언급이다.

 

부사 우리는 들었습니다는 익명의 저자가 콜로새 공동체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정보들을 근거로 이야기함을 단정으로 말해준다. 저자가 공동체에 대해 가진 정보나 지식은 다른 이들한테 들은 소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써 공동체를 향한 서간 집필의 신학적 목적의식이 분명히 드러난다.

 

5

전치사 “...에 근거하여... 때문에는 여기서 희망에 뿌리를 둔 믿음과 사람의 근거를 설명한다. 직역하면 이 희망 때문에 ...”가 될 것이다.

 

희망은 그리스도교 삶의 근간이다. 콜로새 지방에 퍼져 있던 철학의 경우와는 아주 다른 긍정적이며 본질적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뿌리를 둔 희망이다. 저자는 믿음과 사랑을 그 밑바탕에 깔린 희망의 발전 형태로 바라본다. 이는 믿음.희망. 사랑 세 가지를 동일선상에서 보는 바오로의 경우와 사뭇 다른 관점이다. 5절에서 말하는 희망의 내용은 뒤따라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진리의 말씀복음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전체를 질적으로 묘사한다. 희망은 바로 이 복음에 뿌리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공동체에 다달하게 된다.

 

그리스도 사건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체적 삶에 적응시키려는 목적에서 나온 말이다. 이 구절은 구원론과 종말론 차원의 진술이며 세례의 의미를 심화하는 내용이다.

 

진리는 삶의 초석이 무엇인지를 해설하며 그 질적 성격을 규정한다. 즉 진리는 항구하고 적확하며 거짓이나 부정이 없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진리가 무엇인지는 공동체의 현 상황을 배경으로 새롭게 드러났다.

 

복음의 내용은 뒤따르는 6.7절에서 구체화한다.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이 동사는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이 한 군데서만 발견된다. 이미 어떤 사건이 이루어졌음을 전제하는 말이다. 이데 준하는 로마 1.2를 들 수 있다. 거기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미 약속하신 복음에 대해 말한다. 5절은 복음이 최근에 이르러 또는 지금 콜로새 공동체에 선포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벌써 그곳에 두루 퍼져 있음을 전재한다.

 

6

6-7ㄱ절에 연거푸 나오는 마치 ...와 같이는 이들 상호간에 비교점을 제시하고 한 경험에서 또 다른 사실을 이끌어내면서 시선을 본인의 체험에 집중시킨다. 복음의 능력을 두 측면에서 제시하는데, 이는 10절에서 각자의 신앙생활과 직결되어 다시금 부각된다.

 

7

이는복음을 가리킨다

에바프라는 4,12-13 인산말의 명단에도 들어 있다. 필레 23절에서 에바프라는 바오로와 함께 감옥에 갇힌 자로 나타난다. 그는 바오로와 협력자인 동시에 콜로새 공동체와 바오로를 연결시키는 중개자다. 저자는 에바프로라의 두 특징을 본다. “우리의 사랑하는 협력자”,“그리스도의 충실한 봉사자”(7ㄴ절).

 

여러분을 위한”:몇몇 고사본에는 우리를 위한”. 전자는 콜로새 공동체와 관련되며 24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후자는 바오로와 직결되며 4.7이 이를 뒷받침한다. 7ㄴ절 문맥상 결부짓는 편이 낫다. 이곳에서 필자 자신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따르는 8절이 바오로와 직결되어 있다.

 

8

성령으로 인해 싹트고 불타오른 콜로새 신도들의 사랑을 말한다.

여기서 독자는 바오로가 에바프라를 통해 콜로새 공동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을 알게 된다. “영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은 그곳 공동체의 삶을 단적으로 특징짓는다. 이는 1,4-5의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8절에서는 믿음이나 희망이란 낱말을 들어 있지 않지만 콜로새 공동체가 모범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데 대한 명확한 진술이 함축되어 있다.

 

7-8절은 지역을 분할하여 선교활동을 벌이는 공동체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촉진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오로가 에페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의 협조자들은 그 주변세계에서 그와 접촉을 벌이면서 선교활동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바오로 이후에 막 시작된 초대교회 선교상황을 뎟볼수 있다. 즉 이제는 선교상황의 무게 중심이 사도 개개인의 권위에서 다수의 협조자들에게로 옮아가고 있음이 뚜렷하다. 바오로의 책임의식과 그 표현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가지는 공동체와의 유대관계다

 

 

 

 

 

 

 

복음<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분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 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38

29절은 마르코가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를 엮으면서 앞의 문맥을 참고하여 많이 개작한 것 같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치유지적사화는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 시몬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

시몬 베드로는 본디 베싸이다 출신이다. 그러나 여기 보면 결혼하여 카파르나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시몬의 집은 시몬 자신의 집일 수도 있고 처갓집일 수도 있다. 여하튼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을 근거지로 하여 활약하시는 동안 시몬의 집에 거처를 정하셨다고 여겨진다.

 

41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는 병행문 마르 1.34에는 없는 루카의 가필

 

42

마르 1.35에서는 새벽 몹시 어두울 때에”.

마르 1.35에서는 기도하셨다는 낱말이 붙어 있다.

마르 1.36에서는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43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는 직역하면 하느님 나라를 복음 전해야 합니다

 

44

마르 1.39에 의하면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활약하셨는데, 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루카는 활동무대를 유다로 고쳤다. 예수시대의 유다지방은 이스라엘 남부지역에 불과했으나 루카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알아들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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