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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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지므리와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 통일 왕국의 분열[2] / 1열왕기[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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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09-08 ㅣ No.14960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2. 지므리와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1열왕 16,15-28)

 

유다 임금 아사 제이십칠년에 지므리가 임금이 되어, 티르차에서 단지 이레 동안(기원전 886) 다스렸다. 그 무렵에 이스라엘 군대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속한 기브톤을 치려고 진을 치고 있었다.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지므리가 모반하여 임금을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그날로 진지에서 군대의 장수인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내세웠다. 오므리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기브톤에서 올라와 티르차를 포위하였다. 그때에 지므리는 성읍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서야 왕궁 성채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 속에서 타 죽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왕국은 혼란이 커갔고 불안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예로보암의 길을 걸었으며, 예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 죄를 따라 걸었기 때문이다. 지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의 모반에 관해서는,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었다. 백성의 절반은 기낫의 아들 티브니를 임금으로 세워 그를 따랐고, 다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다. 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티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우세하였다. 마침내 티브니는 죽고 오므리가 임금이 되었다. 이처럼 그가 임금이 될 때에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던지, 여기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사료를 더 얻을 수가 없다.

 

아무튼 열왕기 저자는 오므리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아서 그의 통치에 관하여 길게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하느님께 충성하지 않은 임금에 대해서는 신명기계 저자의 평가로는 결코 위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대단히 위대한 임금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가 이스라엘을 통치한, 짧지만 강력하였던 오모리 왕조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기원전 886-841). 이리하여 유다 임금 아사 제삼십일년에 티브니보다 우세했던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열두 해 동안(기원전 886-875) 다스렸는데, 여섯 해는 티르차에서 다스렸다.

 

그는 사마리아 산을 세메르에게서 은 두 탈렌트로 산 뒤, 그 산을 요새로 만들고는, 그 성읍의 이름을 산의 본래 소유자인 세메르를 따서 사마리아라 하였다. 그가 전에는 황무지였던 언덕에 성읍을 매우 굳건하게 세우고 그곳을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수도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므리가 강력한 임금이었다는 하나의 표지이다. 사마리아의 정리 작업은 오므리의 아들 야합과(16,29) 예로보암 2세가(2열왕 14,23) 계속 추진했다. 그러나 이 성읍의 화려함이 예언자들의 눈을 현혹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마리아의 교만과 우상숭배를 배척하였다. 사마리아는 이웃 나라 성읍 다마스쿠스와 경쟁하여 다투다가(2열왕 6-7 참조), 긴 포위 끝에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인들에게 함락된다(2열왕 17,5-6). 아시리아인들은 거기를 그 지방의 중심 도시로 정했는데, 이는 페르시아인들의 지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에즈 4,10; 느혜 3,34 참조).

 

사마리아는 헬레니즘 시대에, 그리고 특히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찬란한 부흥기를 맞는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와 세바스티예라는 작은 마을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므리 역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는데, 그 이전의 어떤 임금보다 더 악한 짓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예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 죄를 따라 걸어 그들의 우상들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분노를 돋우었다. 오므리 임금이 한 나머지 행적과 그가 보여 준 무용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여러 실록에 쓰여 있다. 오므리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합이 뒤를 이어서 임금이 되었다.

 

유다 임금 아사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위를 계승받아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사마리아에서 스물두 해 동안(기원전 875-853) 다스렸다.[계속]

 

[참조] : 이어서 ‘13. 아합의 이스라엘 통치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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