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8일 (월)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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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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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9-11 ㅣ No.149674

캠핑을 다니면서 좋은 점이 많습니다. 자연 속에선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닥불을 피우면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신부님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캠핑을 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핸드폰이 안 되는 지역이 있는 것입니다. 문자를 확인할 수도 없고, 메일을 보낼 수도 없고, 꼭 연락해야 할 사람과도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매일 강론 묵상을 올리는데 여의치 않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통신사마다 핸드폰이 가능한 지역이 다른 점입니다. 저의 핸드폰이 되는 지역에서는 신부님들의 핸드폰이 안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안 되는 지역에서는 다른 신부님들의 핸드폰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신부님들의 핸드폰을 노트북에 연결해서 강론 묵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성서는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비겁함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의 아들 카인은 동생에 대한 질투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은 꺼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하는 이유는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먼저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믿는 이들과의 소통입니다. 신앙에서 소통의 첫 번째 조건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언어와 하느님의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시를 통해서, 예언자를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시지만, 완고한 우리의 마음은 귀가 닫혀서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마음을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 직접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전에 궁궐에 있던 왕도 가끔씩 궁 밖으로 잠행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하들의 보고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백성들의 고충과 백성들의 아픔을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몸도 소통이 중요합니다. 기가 막히고, 혈관이 막히면 건강에 이상이 오기 마련입니다. 동양의학에서 침과 뜸은 막힌 기와 혈을 풀어주는 치료방법입니다.

 

신앙에서 소통의 두 번째 조건은 갈망입니다. 우리 속담에 우는 아이 젖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소통하려는 갈망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 주십니다. 이집트에서 하느님을 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함을 보시고 모세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민족의 공격으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판관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망이 있는 사람들을 칭찬하셨고, 그들의 소망을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했던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을 받아먹는 강아지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딸의 치유를 청했던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며 간절하게 외쳤던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하면 받고, 두드리면 열리고, 구하면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에서 소통의 세 번째 조건은 회개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시니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시니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죄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뉘우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가 복음 15장은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었지만 뉘우치고 회개한 아들을 품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시고, 잔치를 벌여 주셨습니다. 렘브란트는 돌아온 아들을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신앙에서 소통의 네 번째 조건은 행동입니다. 루가복음 19장은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집에 모신 자캐오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제가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받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목적지를 향해서 날아갑니다. 신앙은 믿음과 행동의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영원한 생명에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들은 대로 이야길 합니다. ‘엘리야라고도 하고,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예언자 중에 한분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다시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베드로는 아주 정확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 베드로는 또 이야기합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베드로를 야단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뜻을 따르려 하는구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제2 독서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행동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행동이 없는 신앙은 우리를 참된 진리로 이끌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엄하게 질책을 받은 이유는 그 믿음을 실천하는 행동에는 함께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참된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순교자 성월을 지내는 것은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낸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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