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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월요일(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 독서, 복음서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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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9-26 ㅣ No.149996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은 1581년 프랑스 랑드 지방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1600년에 사제품을 받았고,1617년에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 이때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임을 깨닫고, 자선 단체인 사랑의 동지회, 사랑의 딸회를 창설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쳐 봉사하였다.

 

1660년에 선종한 빈첸시오 사제는 1737년에 시성되었다. 1885년에 레오 13세 교황은 그를 모든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이가 성인의 영성을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사랑의 딸회. 사랑의 씨튼 수년회,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와 평신도 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서로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다.

 

 

기념일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26 형제 여러분,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 역주 김 영 남)

부르심받던 때의 처지

18-25절에 하느님 지혜의 방식이 이 단락에서는 고린토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적용되고, 2,1-5에서는 바오로의 복음선포 활동에 적용된다.

26

직역은 육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라는 뜻이다.

 

29

은 사람.

 

30

여기서 있다동사의 강한 의미를 감안하여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있으나마나한여러분을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하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 눈에 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눈에 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것이 여러분의 지랑거리다.

 

30절에 나오는 ”,“성화”, “속량이라는 새 단어는 바오로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구원적인 결과를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들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6,11에서는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제)씻겨졌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었습니다!”6.11에서 바오로는 성화를 말하면서 분명히 세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의와 성화와 속량을 말하면서 세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디카이오위네란 성서 밖의 일반 그리스어에서는 본디 한 덕으로서 의로움. 올바름. 정의라는 뜻인데, 신약성서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바오로는 칠십인역 구약성서의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공되고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결합의 표현인 세례를 통해 참여하는 구원 선물로서의 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한다.

 

칠십인역에서 디카이오쉬네는 대부분 히브리어 채데카 또는 체덱의 번역이지만 때로는 은총또는 자비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헤세드의 번역일 때도 있을 만큼, 심판적 의미보다는 구원적 의미를 더 띠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체데카는 계약을 배경으로 하는 개념으로서 두 상대방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올바름을 뜻한다. 그래서 이 단어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에서 하느님께 적용될 때는, 하느님이 계약의 하느님으로서마땅히 하시는 일들을 의미한다.

 

이 때 계약의 하느님으로서마땅히 하시는 일들을 의미한다. 이 때 하느님의 체데카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구원적일 수도 있고 심판적일 수도 있지만 주로 구원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체데카라는 말이 적용될 때는 이스라엘이 계약의 백성으로서계약에 합당한 삶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느님 앞에서의 의로움은 구약성서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상태다.

 

바오로는 바로 이 의 은사적 성격을 매우 강조한다. 구약성서에서 인간이 추구하되 도달하기 어려운 그 를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베푸신다고 강조한다. “의 은사적 성격은 이미 고린토 전서에서 분명히 볼 수 있지만 후일 율법 논쟁의 배경하에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더욱 깊이 다루어진다.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복음의 요체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구약성서 배경으로 볼 때 는 하느님의 법정을 연상시키는 법적 용어인 대 비해,“성화는 성전 제사를 연상시키는 제의적 용어다. 성화역시 바오로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신앙인을 비신앙인과 구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이들또는 간단히 거룩한 이들이라고 칭한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친교를 가지기 위해 인간은 먼저 속적인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해져야 하는데,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룩하게 되었다.

 

속량이라고 번역된 아폴뤼트로시스는 속전을 받고 노예나 포로를 풀어주는 사회제도를 배경으로 하는데, 해방과 자유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표현한다. 신약성서의 이 용어 배경에는 하느님을 고엘(“구속자”; 친족의 일원이 자융인 지위를 잃었을 때 대가를 치르고 그를 풀어낼 의무가 있는 가까운 친척을 의미한)로 이해하는 구약성서 전통이 있다.

 

 

 

 

 

 

 

기념일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3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 양 모)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9,35-38은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하고 제자들의 협조 필요성을 강조하는 집약문이다. 8-9장을 마무리하고 10장의 제자 파견을 예고한다.

35절은 4.23과 마르 6.6(마르코 파견 설교 서두)을 옮겨쓰다시피 했다. 36절은 마르 6.34를 베낀 것이다. 37-38절은 어록의 파견설교 서두를 베낀 것으로 그 병행문이 루카 10.2에 있다.

 

36

측은히 여기시다불쌍히 여기시다보다 더 깊이, 고통받는 이에게 동정하는 것이다. “목자 없는 양들과 같다는 에제 34.5인용.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탓하는 말씀인데, 함축적으로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시겠다는 결의를 내포한다.

 

37

성서에서 추수는 흔히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현재의 상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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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내 백성을 해 뜨는 땅과 해 지는 땅에서 구해 내리라.>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8.1-8

1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온에 커다란 열정을, 격렬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3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가, 예루사렘 한가운데에 살리라. 예루살렘은, ’신실한 도성이라고, 만군의 주님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리리라.

4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많아,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든, 남녀 노인들이, 다시 예루살렘 광장마다 앉아 쉬리라.

5 도성의 광장마다, 뛰노는 , 소년 소녀들로 가득 차리라.

6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이것이 이 백성의 남은 자는 눈에, 신기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내 눈에까지 신기하게 보이겠느냐? 만군의 주님의 말이다.

7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내 백성을, 해 뜨는 땅과, 해 지는 땅에서 구해 내리라.

8 나는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살게 하리라. 그러면 진실과 정의 안에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즈카르야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해 뜨는 당과 해 지는 땅에서 구해 내시리라고 한다.

 

 

 

복음<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똧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ㅎ마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 역주 정 양 모)

누가 높은지 다투다

루카는 마르 9,33-37을 베끼면서 많이 손질했다.

 

46

46절은 마르 9,33-35를 요약한 것이다.

 

48

이 어린이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고쳐쓴 것이다. 마르 9.37의 처음 뜻은 제자들을 영접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셈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느님을 영접하는 셈이라는 뜻이다. 그 변체가 루카 10.16;마태 10.40;요한 13.20에도 있으니 널리 퍼진 유행어다.

 

48ㄷ절은 마르 9.35ㄴ의 변체인데 내용이 약간 상이하다. 마르코의 경우에는 첫째가 되려면 말째가 되라고 요구하는 데 비해서, 루카의 영우에는 제일 작은 사람이 실은 큰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지지하는 사람

루카는 마르 9,38-41을 베끼면서 39,41절을 삭제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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