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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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거긴가~♬(순례길 54처 성거산성지.공세리.남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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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1-10-08 ㅣ No.10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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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이 여기서~얼마나되나! ♪ 푸른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

아까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니 ~♬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지~~

하루종일 이 노래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기가~ 거긴가? 의 가사마디가....^^


"할배요~ 여기가 거기맞지요?..."

"으~~!! ~~? 아닌것 같은데... 기억에 없는데...~"

"잘 봐봐요... 이 계단이 사실은 많이 넓은데 이렇게 국화화분이

쪼르륵 길에 놓여있어서 좁아보이는 기라요.."

"그런가? 몰라~~"


그 유명하다는 공세리성당을 찾아 아름드리 나무가있고., 눈에익은

성당앞 계단에 서서 나누는 할배와의 대화이다.

젊은사람.. 가족들. 부부들.. 많은 사람들이 제법 몰려다니며 사진들

찍느라고 분주하다.


합덕성당 앞 계단을 바라보며 안사노 신부님이랑 엠마오길 다녀온곳이라고

우겨대던 할배가 여기가 거긴가? 거기가 여긴가? 아리까리한 표정으로

잘 몰르겠네 만 중얼거려 샀더니....돌아서 나오는 정문앞 까지 갸우뚱 거려댄다.


1890년 설립된 공세리성당은 합덕 성당과 더불어 충청도에서 첫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조선시대에 순교한 32위 순교자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한다.

또한 공세리란 지명은 내포 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보관하던

공세창에서 유래한 곳이라한다.


성지내에는 순교자들의 납골식 묘와 현양 탑이 있고 옛사제관을 개조하여 만든 박물관에는

순교자 박의서, 원서. 익서 세분의 유해와 박해시대 교우촌의 생활과 순교자들의 행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하는데 오늘은 문이 잠겨 있어 관람을 하지 못했지만서도

300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를 비롯한 자연경관이 오랜 역사와 함께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져 있어 신자가 아닌 관광객들도 꽤 붐비고 있나보다.


여나문 명의 아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왔는지 머리에는 철모자를 쓰고 각양의

선글라스들을 끼곤 성당앞에 늘어서서 포즈를 취하며 할배한테 사진좀 눌러달라 청한다.

"하나 ~ 둘! 아 ! 그런데 거... 선글라스들 벗고 찍는게 어때요?"

~~~~ 멍 ~~~

""아니요. 그냥 찍어주세요 . (나름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모습들인데... 웃기는 할배네.."

 

"반석아부지~ 아무나 한테 감나라 팥나라~ 하능교? 참 내~ 내한테만 성당에서는

선글라스 벗어라믄 되제.... 가~ 들이 신자도 아닌것 같더만..."


 

  

성당 뒤편 산길을 따라 십사처의 길을 돌며 오늘도 성모님 손잡고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찬란한 태양이 눈부시고, 하늘엔 흰구름 파랑색 물감위에 두둥실 떠다니고,

선선한 바람속에 하나씩 옷갈아입는 단풍들의 시간속에 머무를수 있는 지금이라는

현재를 주심에.....깊은 감사를 드리며 숙연하게 걸어가는 데...


여기 저기 크고작은 도토리알 들...


깊어가는 가을 속 성전뒷뜰 뒹구는 저 도토리들을 남겨두고 그냥 갈수는 없제.

사돈형님이고, 우리 꼬맹이들이고. 우리식구 모두는 이제 이 가을이 끝날때까지

땅만 보고 걸을수 밖에 없는 도토리 중독증 환자들이 돼 버렸으니....ㅋ ㅋ



웅장한 외관과는 달리 성전안 제대앞에 앉아 손모으니 주님의 작은 평화가

마음을 따뜻하게 가라앉혀 작고 아담한 구유앞에라도 온 기분이 든다.


당진의 합덕성당과 참으로 많이 닮아있는 성전건물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좀 헷갈리게도 하겠다고 생각하며 성당앞 좁은 길을 빠져나오는데...


"아! 여기가 거기가 맞아. 저기 카페? 저 간판을 보니 생각났어..~~"

할배의 끄터머리 기억의 자리에 매달려있던 ***의 찻집 간판아 니가 할배의

구겨진 체면을 세워주었구나.!


아산에 위치한 또 하나의 성지 남방제는 신창면 남성리에 자리해 있으며

박해시대의 교우촌이 있던 곳이며 조윤호 요셉 성인이 태어난 곳이고,


조화서 베드로 성인과 여러순교자들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할아버지 조안드레아, 아버지 조화서베드로,. 아들 조윤호 요셉의 3대가

박해시대 순교의 칼날아래 쓰러져 가면서도 천주님을 향한 믿음의 끈을

놓지않았던 임들은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활동에도 많은 봉사로 믿음생활을 했으며,


과로와 장티푸스에 걸려 쓰러지신 신부님이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하시도록

푸르티에 신부님께 온갖 방법으로 연락을 닿게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여기 십사처의 동상들은 참으로 특이하고 감탄스럽기 까지 하다.

십사처 기둥을 바치고 있는 동판위로 그시대 조선인들의 온갖

삶의 현장들이 참으로 세밀하게 하나하나 조각되어있는 모양에

할배의 입은 연신 벌어져있다.

그림과 조각예술에 한몫의 조예가 있는 할배라서 그런가보다.


아직 성지 조성이 덜 된 환경 탓인지 좀 좁은터에 초록색 팬스로

처져있는게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서도 하나하나 기념비와

조각상들은 최상의 정성으로 다듬어진 성지임을 느껴보며

초 가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걱정하며 천안 성거산 성지를

향해 또 달려간다.


  

                            

5시 10분에 도착한 천안 입장면의 성거산 성지는

180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들이 곳곳에 있던 곳이라 한다.


소학골과 서들골을 중심으로 여러 교우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산골 신앙공동체로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배문호 베드로와 최천여 베드로등

일곱명이 순교하였고, 1867년에는 배화첨 베드로등 여덟명이 또 순교하였다 한다.


또 성거산 출신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살다가 순교한 이들도 8위 이상이 된다한다


      

올렛길처럼 엮어있는 언덕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서있는 십사처의 길은 또

순례자의 걸음을 동동거리게 만드누만...!! 에고~

그래도 어찌하나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가는길에 성모님께 또 촛불봉헌하고 14처를 오르니 ,, 두번째 줄무덤이 끝나고

순교자 성당이 저만치 꼭대기에 외로이 앉아있다.


 

      

신축건물이라 그런지 아주 깨끗하고 깔끔하니 지어져있지만 역시 문은 잠겨있어

겉으로만 빙빙 돌다 마당절벽 끝에 달려계신 예수님께 인사만 드리고

돌아나오는데 길가 옆으로 순교하신 분들의 교우촌 둘레길이 나있지만서도

어둠이 내려앉는 산속길이 걱정이되어 그냥 갔던 길을 내려올수 밖에...


게다가... 우리 할배 똥마렵다고 화장실찾아 잽싸게 달아빼니

"반석아부지! 같이가요.... 혼자 가면 우짜노...!!

호랑이라도 나오믄 우짜요 ~"


귀가 멍멍할 정도로 고개고개 돌아오르는 이 골짜기에서 우찌들 살아냈을까?

다시한번 순교선조들의 믿음앞에 최상의 경의와 감사를 드려본다.

해가 좀 남아있었더면 길고긴 순교자의 둘렛길도 걸어보고 교우촌들의

삶의 흔적들도 묵상할수 있었을 텐데 .... 

 

다시한번 여유롭게 순례하고 싶다는 할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무도 없는 산길 주차장을 쏜살같이 빠져 나오는 산골 길은

떡팔러 갔다오는 엄마의 호랑이 고갯길 처럼 고요하고 어둡다.


"떡 하나주믄 안 잡아묵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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