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나라’이다 -하느님 꿈의 현실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스크랩 인쇄

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21-10-18 ㅣ No.150415



2021.10.18.성 루카 복음 사가 축일                                      2티모4,10-17ㄴ 루카10,1-9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나라’이다

-하느님 꿈의 현실화- 

 

“주님은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고,

이루신 일마다 자애로우시니이다.“(시편145,16)

 

오늘은 성 루카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그의 직업은 의사였으며 오늘 제1독서에서 보다시피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행에 함께 했던 분입니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이 그의 작품에 속합니다. 바오로 사도와 함께 하느님의 꿈을 실현시켜 하느님 나라를 살았던 분입니다.

 

꿈이, 희망이, 비전이 있어야 삽니다. 궁극의 꿈, 희망, 비전은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아 나섰던 옛 사막 수도승들의 궁극의 삶의 목표도 단 하나, ‘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살아도 헛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참 삶의 잣대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하느님의 나라가 궁극의 꿈이요, 우리 믿는 이들의 참 삶의 잣대입니다. 이런 꿈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이런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다 하나 실상 죽은 사람입니다.

 

며칠전 분도계간지 편집인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의 소중한 체험과 원숙한 지혜가 담긴 글을 게재하고자 이렇게 서신을 보냅니다. 부탁드리는 원고는 계간지 겨울호 ’바람(희망)’이라는 초점(특집)에 실립니다.’ 바람이 꿈입니다. 수도생활중 많은 자작시에 등장한 ‘꿈’이란 제목입니다.

 

“창문밖 가난한 언덕

보랏빛 은은했던 제비꽃 그 자리에

샛노란 민들레꽃 감동의 그 자리에

하얀눈 덮여 있다

흰눈 덮인 하얀땅

보랏빛, 샛노란 빛 ‘봄꿈’을 꾸고 있겠지”-1998.1.22.

 

“풀잎들 밤새 ‘별꿈’ 꾸며 뒤척이며

잠못 이루더니

아침 풀잎마다 맺힌

영롱한 별무리 이슬 방울들”-2001.10.1

 

“살아있는 것들만 꿈꾼다

죽어있는 것들은 꿈꾸지 않는다

연초록 새싹으로

화사한 꽃들로

피어나는 ‘봄꿈’의 나무들

살아있는 것들만 꿈꾼다”-2009.4

 

지금도 작시하던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 꿈중의 꿈이, 진짜 살아있음의 꿈이 하늘 꿈, 하느님 꿈, 하느님 나라 꿈입니다. ‘나 하늘의 무지개만 보면 가슴이 뛴다’ 노래했던 ‘무지개’의 워드워즈 시인, ‘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래했던 ‘서시’의 윤동주 시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노래한 귀천의 천상병 시인, 모두가 하늘을 꿈꾸며 하늘 나라를 살았던 하늘의 시인들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하늘 꿈을, 하늘 나라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지면서 그대로 하느님 나라 꿈을 실현하며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도, 하느님의 참 기쁨도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 나라 꿈을 실현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환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닌 사람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일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사람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 자체였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습니다. 옥중에서도 주님과 일치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를 사는 참 자유인입니다. 마지막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나라를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바오로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다른 일흔 두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파견하십니다. 흡사 제자 하나하나가 파견되는 하느님 나라같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바로 우리의 일은 이리 떼 세상 한 복판 ‘내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 청할뿐 아니라, 우선 나부터 하늘 나라의 일꾼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가능한 최소한의 소유로, 무소유의 정신, 무욕의 영성으로 환상이 걷힌 투명한 이탈의 본질적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지면서 하느님 나라의 꿈이 실현될 때 저절로 이탈의 삶에 이웃에게 평화와 치유를 선물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민폐를 최소화 하면서 신도들의 환대의 사랑에 의탁하며, 감사하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자리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며 살아야 할 곳입니다. 이웃의 환대에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 또한 환대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평화와 치유를 선물하며 살 때 비로소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나라 꿈을 실현하며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세상의 빛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 나라요. 하느님 꿈의 현실화입니다. 

 

“당신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시나이다.”(시편145,17). 아멘. 





900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