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4일 (월)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사탄은 끝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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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독서,복음서 역주,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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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10-26 ㅣ No.150589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역주(8,26-30)

영의 중개기도

8

26 이와 비슷하게 영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타당하게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 자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개해 주십니다.

27 그러나 마음을 살펴보시는 분은 영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영이 하느님께 맞갖게 성도들을 위해 중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들의 영광

28 우리가 알기로, 모든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과 (하느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선을 위해 협력합니다.

29 그분은 미리 알아 두신 이들을 당신 아드님의 모상과 모습이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시도록 하기 위합입니다.

30 그분 (하느님)은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주해

영의 중개기도

영은 구원받지 못한 현세에서 탄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탄식하면서 그들을 도와 주러 온다. 그들은 죄와 죽음으 위협에 노출된 인간조건 때문에 연약하다. 또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영자 신분, 즉 그분과의 부자관계를 불완전하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께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영은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연약한 그들을 부축하고 그들의 희망사항을 표현하는 것을 도우며 그것을 하느님께 전해준다.

 

26

영의 탄식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하느님외에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으며(27) 방언이나 어떠한 인간적 탄식과도 무관하다.

 

27

1사무 16.7; 1열왕 8.39; 1역대 28.9; 시편 7.10; 17.3; 139.1 참조.

 

그리스도인들의 영광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세생활과 피조물의 탄식과 영광에 대한 희망과 영의 중개기도. 이 모든 요소들(18-27)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결정적 구원을 위해 이바지한다(29). 구원은 그들이 아드님의 부활생명에 점진적으로 깊이 참여함이다. 구원은 그들이 아드님의 부활생명에 점진적으로 깊이 참여함이다. 이 참여는 하느님의 구체적 구원계획에 따른다. 하느님이 이 그리스도인들을 미리 알고 예정하고 부르고 의롭게하며 영광스럽게 하신 행위로 표현된다.

 

29

같은 모습이 되도록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분을 닮게 된다(핖림 3.20-21; 로마 8.17 참조)

 

예정하셨습니다는 바오로는 하느님이 개개인을 구원이나 단죄로 예정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예정은 집단적 선택을 뜻하다. 하느님이 예정하신 이들은 복수로 서술되어 있다; “미리 알아두신 이들”(29)예정하신 이들”(30).

 

맏아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아들 신분을 그리스도인들과 나누어가지심을 강조한다.(콜로1.15.18; 히브 1.6;2.10; 묵시 1.5 참조).

 

30

의롭게 하셨으며1고린 6.11 참조.

 

 

 

 

 

 

루가 복음서

 

루가복음 역주(13,22-30)

구원과 멸망

13

22 예수께서는 도시들과 마을들을 지나가며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겠습니까?”하자 그분은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24 “여러분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시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불가능한 것입니다.

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린 다음에는 여러분이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주인님, 저희에게 열어 주십시오하여도, 주인은 대답하여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여러분에게 말할 것입니다.

26 그 때에 여러분은 말하기 시작하여 저희는 당신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희 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할 것입니다.

27 그러면 그는 여러분에게 대답하기를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나에게서 떠나가라할 것입니다.

28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하느님 나라 안에 있고 여러분은 쫓겨나 밖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는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29 사람들이 동쪽과 서쪽에서 그리고 북쪽과 남쪽에서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에서 식탁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30 두고 보시오, 첫째가 될 말째 사람들이 있고 말째가 될 첫째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서 주해

구원과 멸망

13,2-30가운데서 22-23절은 루가의 가필이며 그 나머지 24-29절은 어록에서 옮긴 것이고 마지막 30절은 마르 10.31을 약간 고친 것이다.

어록에서 옮겨쓴 24-29절이 마태오복음에는 7.13-14; 25.10-12; 7.22-23; 8.11-12에 흩어져 있다. 루카와 마태오 가운데 어느 쪽이 어록의 형태를 더 잘 보존했는지 속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록의 형태야 어쨌든 구전과정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상징어, 문을 닫아 버리는 집주인의 상징어, 불의를 일삼는 자들은 버림받는다는 단절어, 하느님 나라 잔치에 관한 단절어는 따로따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22

22절을 가필로 보는 까닭은 이렇다. 루카는 예수께서 상경중이라는 말을 자주 만들어 덧붙인다. “도시들과 마을들을직여하면 도시들과 마을들을 따라인데, 같은 표현이 8.1(“도시와 마을을 따라”),9.6(“마을들을 따라”)에도 나온다. “지나가시다는 통과하다는 뜻으로서, 신약성서 가운데 로마 15.24를 제외하면 루가 6.1;13.22; 18.36; 사도 16.4에만 나온다.

 

23

23절도 가필일 것이다. 루카는 가끔 예수님의 훈계 앞에 질문을 덧붙인다. 문체를 살펴봐도 그런데 ... 하자”, “... 향하여 말씀하셨다는 루카의 문체임에 틀림없다. 묵시문학계에서는 종말에 구원될 사람들의 수효에 관심이 많았다(묵시 7.1-8)

 

24

24절 상징어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지금 회개해야지 안 그러면 종말에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효에 관한 묵시문학적 질문을 일축하시고,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 해도 못 들어갈 것이니 거기에 들어갈 수 있게끔 지금부터 노력하라고 촉구하신다. 그러니까 루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신국 진입으로 이해했다.

병행문 마태 7.13-14는 마태오가 어록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25

24절과 25절은 이라는 연쇄어로 연결되었다. 25절의 상징어에서는 집주인이 한번 문을 닫아 버리면 밖에서 열어 달라고 두르려도 소용없다한다. 그 뜻인즉, 하느님이 단죄하는 심판을 내리고 나면 구원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25절과 매우 비슷한 말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 가운데 들어 있다(마태 25,10-12)

 

26

26-27절만 따로 보면, 여기 종말심판관은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이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을 반영한다. 사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종말심판관으로 신봉했다. 그러므로 26-27절은 예수님의 발설이기보다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럼 종말심판관이신 예수님은 심판의 기준을 어디에다 두실까? 평소에 당신과 함께 식사하고 당신 가르침을 받은 사실에 따라, 곧 친분관계에 따라 심판하시지 않고, 정의 실천 여부에 따라 심판하신다. 따라서 불의를 일삼는 자들은 단죄받을 것이다.

 

마태 7.22-23에 병행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약간 다르다. 초대교회의 성령 운동가들이 당신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당신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당신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지라고, 그들이 예수께서 새롭게 풀이해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단죄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한다.

 

27ㄴ절은 시편 6.9의 개작.

 

28

28-29절에보다 마태 8,11-12에 어록의 단절어가 더 충실히 수록되어 있는 까닭에 이를 간략하게 풀이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식탁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아들들은 바깥 어둠속으로 쫓겨날 것이니 거기서는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종말에 이방인들은 축복을 받고 유다인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인데, 이는 어록의 말씀 가운데서 이방인들에게는 가장 호의적으로 유다인들에게는 가장 자극적인 말씀이다. 이보다는 덜 강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 어록에 더러 있다.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신 이적사화, 코라진과 베싸이다와 가파르나움에 대한 불행선언,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에 관한 단절어(11.31-32= 마태 12.41-42).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관한 단절어를 예수님 친히 발설하셨든 어록의 전승자 또는 작가가 발설했든간에 그렇게 말한 이는 유다인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이방인 전도에 주력했을 것이다.

 

30

30절은 유행어. 루카는 마르 10.31을 조금 손질하여 옮겨실었을 것이다. 앞의 문맥에 따라 그 뜻을 풀이한다면, 이방인들 가운데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다인들 가운데도 거기서 쫓겨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저희 어머니께서 연세도 많으시고 대략 사십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데 매일 하시는 것이

빨래와 종이 오리기입니다.  오늘도 어머니께서 종이를 오리시길래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주님의 종이입니다"라고 했더니 웃으시길래 '어허 어떻게 알았지'하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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