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11 연중 제1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스크랩 인쇄

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10 ㅣ No.152177

1독서<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9-20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엘리 사제는 한나의 진실한 마음을 보고 안심하고 돌아가라며 위로한다.

 

 

 

 

복음<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1

21절 마지막 낱말과 22절에서 마르코는 예수님이 가르치셨다고 할 뿐 그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문맥(14-15)을 살피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다. 사실 예수님은 신국을 설교 주제로 삼으셨다. 22절에서는 청중의 반응을 기록하여 그분은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에매우 놀랐다 한다. 사실 율사들은 언제나 구약성서와 조상전통을 근거로 율법을 가르친 데 반해, 예수님은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신국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 내용과 양상이 매우 새롭고 힘찼다.

 

그러나 마르코는 예수님이 권위있게 가르치신 까닭을 설명하여, 그분은 당신 말씀을 구마행동으로 뒷받침하셨기 때문이라 한다. 율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기원전 450년경 예루살렘에서 활약한 에즈라를 율사의 시조로 꼽는다. 예수시대 율사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다. 그들은 12,28-34를 제외하면 언제나 예수님의 적수로 등장한다. 예수시대 바리사이파 율사들 가운데 힐렐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양대 산맥을 이루어 맞섰으나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부터는 힐렐 학파가 우세하게 되었다. 율사들은 주로 규범과 사화를 익히고 전하기를 업으로 삼았다. , 율법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결의론을 전개하고 송사를 판결했다(힐리카),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학당이나 회당에서 가르쳤다(히가다).

 

24

그리스 구마사화를 보면 귀신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구마자의 신분을 폭로하는 방어사가 있다. 우리 구마사화의 이야기꾼은 그 영향을 받아 항변한 말을 참고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 내 죄를 일깨워 주고 아들을 죽게 하러 오셨습니까?”(1열왕 17.18).

 

방어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러운 영은 자신을 일컬어 우리라 하는데 귀신은 그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귀신들의 두목이 사탄이다. 여기서 귀신은 이렇게 항변한다. 예수는 거룩한 신계에, 자기네는 더러운 사탄계에 속하여 엄연히 소속이 다른데 모슨 상관이냐, 왜 자기네를 거세하려 하느냐, 당신 신분을 나는 파악하고 있다라고 그런데 예수님을 일컬어 하느님의 사람”(1열왕 17.18) 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매우 드문 존칭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한다.

 

그 까닭은 이렇다.: “나자렛 사람은 고행을 하기로 서원한 나지르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나지르를 의역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했다. 그래서 구마사화를 전한 이야기꾼은 나자렛 사람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풀이했던 것이다.

 

25

우리 복음서의 첫 함구령. 이것은 구마사화에 흔히 나오는 소재다. 그러나 마르코는 자신의 메시아 비밀사상에 따라 그 함구력을 재해석하여, 예수님은 평소에 당신 신분을 숨기려 하셨기 때문에 함구령을 내리셨다고 보았다. 귀신에게 내린 함구령이 1,34; 3.12에도 있다.

 

27

구마사화와 치유이적사화는 으레 목격자들의 반응으로 끝맺는 법인데 흔히 여기서처럼 경탄사를 발한다. 다만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마는 마르코가 덧붙인 것 같다. 그는 구마행위를 가르침으로 평가했다. 즉 구마행위는 하느님의 왕정이 마력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드러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뿐 아니라 구마행위로써 하느님 왕정의 위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처사를 일컬어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 한다.

 

이제 구마사화와 구마현상에 대해서 종합적 평가를 내릴 차례다. 우선 구마사화의 서술양식을 살펴보자.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구마 이야기를 할 때, 구마자와 부마자의 상봉, 부마자의 방어사, 구마자의 추방령, 귀신 추방,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우리 구마사화 역시 같은 서술양식을 따랐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실제로 귀신들을 추방하셨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구마사화 하나하나가 죄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고 증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예수께서 구마행위를 하신 것만은 틀림없다. 그 논거를 제 가지만 제시한다.

 

사료별로 보아 어록, 마르코, 마태오의 특수사료, 루카의 툭수사료 등 모든 사료에 구마에 대한 말이 나온다. 전승별로 보면, 그리스 구마사화 서술양식의 영향을 맏은 구마사화전승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오래되고 역사적 신빙성도 더한 단절어전승도 있다. 예로 어록에 수록된 단절어를 들 수 있는데 루카에 따라 인용해 보자,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유다교 분헌에서도 예수님의 구마행적을 시인한다. 예로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 43a항에는 예수가 마술을 부려 유혹하고 이스라엘을 오도했기 때문에처형을 받았다 한다,

 

끝으로 해석학적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귀신이 무수히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불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구마사화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병자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마행적은 정신력으로 환자를 고치는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할 수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귀신들의 아버지 아니 이렇게 부르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기에 "신들의 아버지가 바로 신부 님"이십니다.
신부(神父)님. 옛날에 귀신을 뗄때 로마로 보내졌는데 어떻게 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64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