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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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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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2-01-10 ㅣ No.152178

1985년 신학생 때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과 천마산으로 답사를 갔습니다. 답사의 목적은 교사들의 단합을 위한 것이었고, 시설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조립식 건물이 있었고, 부족한 잠자리는 텐트를 치기로 했습니다. 체력 단련장, 화장실, 세면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답사 첫날이었습니다. 늦은 밤에 저녁을 먹고 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교사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비가 그칠 것 같으니 그냥 머물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짐을 옮기는 것이 귀찮기도 했습니다. 비가 더 올 것 같으니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에 모두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신학생이니 결정을 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가까이 있고, 머물기 좋지만 비가 더 내리면 위험할 수도 있는 지금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힘은 들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자리를 옮겨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산행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저에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제가 신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힘이 들지만 안전을 위해서 자리를 옮기자고 했고, 모두들 저의 의견을 따라 주었습니다.

 

1991년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제가 결정을 내려야 할 일들이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사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처럼 지혜가 충만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나온 한나처럼 기도를 열심히 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힘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목의 경험과 연륜이 쌓인 사제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젊은 열정만 있었습니다. 31년 사제생활을 하면서 큰 허물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때문입니다. 사제의 결정 때문에 갈등과 아픔이 생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어렵게 일구어 놓은 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당 공동체가 힘을 모아 마련한 작품을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옮겨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모조품을 갖다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제직이 권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직이 교만을 만나면, 사제직이 시기를 만나면, 사제직이 위선을 만나면 그 권위는 권위주의가 되고 맙니다. 그런 권위주의가 예수님을 재판에 넘겼고, 그런 권위주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전에 함께 지내던 주교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주교님 선택의 기준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제직의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따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의 권위는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제직이 순명을 만나면, 사제직이 십자가를 만나면, 사제직이 겸손을 만나면 주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권위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걸쳐서 봉사와 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기까지 순명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권위였습니다. 그 권위 위에서 부활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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