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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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과 고집 속에서는 진정한 권위가 나올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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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2-01-10 ㅣ No.152182

 

권위라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긍적적인 뉘앙스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권위에 대해서 그 권위가 정당한 범위 내에서 발휘되는 권위는 위엄이 있는 권위이고 품격이 묻어나는 권위입니다. 하지만 그 권위가 그 권한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힘으로 누르는 압력과도 같은 것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은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이 훌륭하다는 그런 차원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율법학자들과 다른 권위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를 묵상해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 그 사람 속에 있는 더러운 영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나가라고 말을 하십니다. 명령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였고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더러운 영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본성이 자기와는 극과 극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영에 굴복하기는커녕 반항을 하게 되는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예수님의 명령에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반항을 하긴 하지만 나가는 걸로 봐서는 명령에 따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런 영도 나갈 수 있게 할 수 있었다는 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의 말에 힘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힘과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그 사람의 위엄을 느낄 수 없을 것인데도 그런 것은 그 사람만의 힘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성질과 전혀 다른 면에서 그런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신앙 안에서도 보면 말 하나라든지 인품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경건한 모습을 보이거나 온순한 태도에서 또는 일반적으로 겸손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에서도 어떤 사람의 품격이나 인품이 드러납니다. 그런 모습에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 사람의 기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도 이런 모습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러운 영에 걸린 사람 속에 있는 영도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압도되었을 겁니다. 이런 권위는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논리가 아닙니다. 마치 선으로 악을 이기는 힘과도 같은 그런 권위일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선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권위는 이런 모습이지 아닐까 하고 묵상을 해봅니다. 세상에서도 보면 세상의 권력과 같은 힘으로 누르는 데에서 나타나는 권위는 그 힘에 눌리기는 하지만 그런 힘에서는 절대 오늘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권위는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신앙 공동체 내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직위로 그 직위 때문에 또 그 직위가 주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자신의 뜻을 독단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정당하고 누가봐도 합당한 모습이라면 괜찮겠지만 어떨 땐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위신을 생각해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건 공동체 전체의 입장에서도 옳지 못한 모습입니다. 모든 기준은 하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이 일을 처리하신다면 어떻게 처리하실까 하는 그런 고민을 하게 되면 공동체의 어떤 직함을 맡고 있어도 자신의 입장을 겸허히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런 모습은 힘이 없어서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더 그런 사람에게서 한 인간의 인격에서 나오는 신앙의 기품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권위라는 게 권위가 있어서 권위를 느끼는 권위는 진정한 권위가 아니고 권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서도 역설적으로 권위를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게 어쩌면 진정한 권위이지 아닐까요? 나이, 성별 같은 것으로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걸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는 진정한 권위를 나타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자존심 때문에도 무모한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 내에서 말입니다. 

 

이것도 자신만의 문제라면 별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게 공동체에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걸 버려야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진정한 권위가 무엇일지 한번 묵상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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