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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은 복음선포였다. 복음선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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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2-01-12 ㅣ No.152211

 

사람에겐 누구나 태어날 때 그 사람만의 사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어쩌다보니 우리의 생명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세상에서 만나 가정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자녀가 생기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난다는 것은 한 영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은 단순한 생명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보시기엔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게 한 영혼입니다. 영혼을 우리가 말할 때 우리는 정신적인 영역만 봅니다. 

 

물론 영혼이라는 의미만을 볼 때는 정신적인 면을 말할 수도 있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생명 그자체를 품고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은 한 생명이 품고 있는 모든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름없는 풀처럼 그저 세상에 있다가 시들어가는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흔히들 세상에 이름없는 돌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약 20년 전에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대사 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mbc 드라마였고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최수종과 김희애가 남매로 나오며 남아선호 사상을 담고 있었던 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 드라마에서 김희애가 한 말이었습니다. 길에 있는 돌도 다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남아선호 사상을 드러내는 그런 의미에서 김희애가 한 말이었다면 그럼 이 의미가 드라마 작가가 어떤 의미로 이야기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지금 그때 그 드라마의 내용을 속속들이 기억은 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선 제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오는 하나의 대사였지만 저에겐 아주 인상 깊은 대화로 기억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돌 하나도 그렇다면 사람의 존재는 어떻겠습니까? 두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바로 한 인간의 존재 가치는 그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그저 이름없는 풀처럼 태어났다가 아무도 모르게 지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인데 사람은 그 존재 가치를 세상에 하나의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관점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의 눈으로 보는 그런 가치로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도 그렇게 보신다면 우리의 영혼은 그야말로 처량한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가 말한 전체적인 것을 하나로 축약하면 이 세상에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 존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대사에 나오는 그냥 돌맹이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할 수 있는데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한 말로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로 우리가 그만큼 살아가면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냥 세상에 태어났다가 세상에서 살만큼 살다가 그저 누구나 그렇게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지 하며 자신을 치부하며 사는 게 보통의 경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 모든 사람의 생각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구원자이시고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당신 본인은 그 사명이 당신의 사명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명을 이 땅에서 끝내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명의 일환이 복음선포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복음선포하면 우리는 그저 하느님 나라가 왔고 그 나라에 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런 내용만 복음선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서 우리는 복음이라는 게 꼭 그런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걸 묵상해봅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또 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질병만이 아니라 마귀도 쫓아내십니다. 이건 육체적인 병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병도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 일상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언제 있었던 것입니까? 

 

바로 회당에서 나오신 후에 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당에서 하신 일은 우리가 아는 가장 전형적인 복음선포였지만 이런 일은 그에 수반된 부차적인 복음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복음선포가 하늘나라가 도래하였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그런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은 육체와 정신 모두가 건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이 없는 나라라는 걸 의미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을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보다는 저는 마귀를 쫓아내신 게 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묵상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는 육체를 입고 살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육체는 소멸하고 다시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영혼의 고향인 하늘나라로 가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이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귀를 쫓아내시는 게 더 중요한 복음선포의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그건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단순히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유효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옷과도 같기 때문에 옷 또한 깨끗해야 합니다. 옷이 깨끗하다는 것은 육신 또한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이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도 병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것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은 우리에게 단순히 하늘나라가 어떻다고 설명하시고 알려주시는 것만이 복음선포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복음선포 앞에 따르는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회개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선포가 당신의 사명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하라는 게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냥 태어나서 살다가 그냥 어느 정도 수명이 되면 죽게 되는 단순한 이런 삶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어떤 삶일지는 제가 결론을 내지 않겠습니다. 그건 제가 묵상한 내용을 검토해보시면 그게 무엇일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역할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에게 바톤을 넘기겠습니다. 오늘 저는 단순히 복음선포가 우리가 말하는 선교와 같은 그런 의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그 존재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보는 게 저의 오늘 복음묵상의 핵심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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