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 (화)
(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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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곳 -주님과 만남의 자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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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22-01-12 ㅣ No.152215

2022.1.12.연중 제1주간 수요일                                      1사무3,1-10.19-20 마르1,29-39

 

 

외딴곳

-주님과 만남의 자리-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치열했던 하루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 삶의 요약같은 하루입니다. 하루하루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하느님의 전사로서의 예수님 삶이었습니다. 그대로 우리 하루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같은 복음입니다. 하루 삶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 외딴곳이요 더불어 떠오른 최민순 신부님의 '두메꽃'이란 시입니다.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누구나의 마음 깊이에는 이런 갈망이 있습니다. 일상에 매몰되어 살면서도 때로는 고독과 침묵의 외딴곳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외딴곳이 있습니까? 하루 중 어느 때, 어떤 곳에서의 외딴곳인지요. 토마스 머튼은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설파했습니다. 나름대로 참으로 영적 삶을 위해 구체적 기도의 자리, 외딴곳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오래전 써놨던 제 '메꽃'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늘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

 하늘 사랑 꽃 피워내며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메꽃!”-1997.8.27

 

누구나의 내면에는 이런 메꽃처럼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내재해 있는 법입니다. 이런 갈망이야말로 영성생활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하루의 전 삶이 마치 한 곳으로 향하는 듯한 구절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분명 하늘 아버지와의 깊은 관상적 친교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앞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시자 그녀는 곧장 예수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라 있는 건강이요 몸임을 깨닫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신의 수도공동체를 ‘섬김의 배움터’라 정의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전삶도 섬김의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어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이 되고 해가지자 예수님이 계신 곳은 문전성시를 이룬 듯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로 가득했고 예수님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이런 번아웃 상태에서 새벽 캄캄할 때 곧장 외딴곳의 기도처를 찾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 바로 여기 위험이 있습니다. 군중의 인기에 현혹되어 떠나야 할 자리에서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외딴곳의 자리에서 영육을 새롭게 충전시키면서 분별력의 지혜를 새로이 했음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기도와 삶, 관상과 활동의 균형과 조화는 영성생활의 필수조건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섬김의 전사로서의 하루의 전 삶을 떠받쳐 준 외딴곳에서의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의 관상기도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대화보다는 깨어 침묵중에 마음의 귀를 활짝 열고 침묵을 통해 말씀하시는 아버지께 귀기울여 경청했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참으로 외딴곳에서의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깊고 넓고 긴 영적 시야를 확보한 주님이요, 사명을 새롭게 확인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어느 사람이나 장소에 집착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유로이 강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며 하늘 나라 복음을 선포하며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마귀들을 쫓아내 주신 하느님 사랑의 전사,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모두가 외딴곳에서의 기도의 힘이었음을 봅니다.

 

모든 수행이 훈련이지만 침묵의 경청 또한 훈련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경청의 훈련이요 일상화되고 습관화되어야 할 경청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외딴곳에서의 기도시 깨어 온전히 경청했음이 분명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무엘이 참으로 경청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스승 엘리의 부르심으로 착각한 사무엘은 잠자는 중에도 즉시 일어나 스승 엘리를 찾아 묻습니다.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얼마나 아름다운 제자와 스승의 장면인지요! 잠자는 중에도 영혼은 환히 깨어 있던 사무엘이었습니다. 세 번째 반복되자 엘리는 친절히 주님의 부르심임을 일깨워 주었고 마침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사무엘을 신뢰하고 사랑하셨는지 참 정답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주님과 사무엘의 관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필시 외딴곳에서 아버지와 예수님의 장면도 이와 흡사했을 것입니다.

 

“예수야, 예수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참된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늘 깨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은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합니다. 바로 사무엘이 한 말은 다 이루어 주셨다라는 참 은혜로운 말씀으로 경청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사무엘이나 예수님처럼 거룩한 침묵중에 들려 오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외딴곳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의 침묵의 시간과 장소가 마련되면 깨어 귀기울이는 습관을 지니시길 바랍니다. 미국의 시복된 하느님의 종 도로시 데이가 그랬습니다. 하느님 현존의 거룩한 침묵을 사랑한 언젠가 시성될 현대판 미국의 성녀 도로시 데이입니다. 어제 집무실에 써 붙여 놓은 영어 글귀입니다.

 

“거룩한 침묵(Holy Silence)!” 

 

어제 아침 하얀 순수의 눈덮인 산야였습니다.

마침 예전 눈덮인 산야를 보면서 ‘하얀 침묵(white silence)’이라 명명했던

테제의 마르코 수사의 기발한 언급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은 외딴곳 거룩한 침묵의 성전에서의 날마다 미사은총으로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살도록 우리 모두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다음같은 자세로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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