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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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연중 제2주일 ...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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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15 ㅣ No.152287

1독서<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이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히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두고, 민족들이 그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그의 영광을 보리라고 한다,

 

 

 

 

2독서<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은사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하나인 영과 다양한 은사

4-6절의 세 구절은 마지막 구절이 좀 길 뿐 평행법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그절마다 배분들같은 ()”이 대조를 이루어,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주님”,“하느님이 자례대로 언급되는데, 이 세 요소는 이미 3절에도 나왔다. 그런데 이 셋 중에서 7-절에서는 당분간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라는 12-14장의 본래 주제와 관련하여 에 관하여만 언급한다.

 

4

4-6절을 직역하면 은사들의 배분들은 ...”. “봉사들의 배분들은...”. “활동들의 배분들은 ...”. “배분이라고 번역된 디아이레시스는 신약성서에서 겨기만 나오는데, “차이, 다양성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11절 참조).

 

6

하느님을 (하게)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에 관해 11; 갈라2.8; 필립 2.13 참조.

 

7

4-6절에서 강조된 은사들의 다양성과 그 동일한 원천이 7-11절에서 해설된다. 7절은 다양성과 목적이 유익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11(“이 모든 것”)은 은사의 다양성과 동일원천성에 관한 앞의 말들을 정리한다.

 

영을 드러내는 은사가 베풀어진다라는 뜻, 여기서 영의 드러남은 바오로가 말하는 ()령의 선물이란 내적인 것이 아니라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갈라 5,22에서 영의 열매라고 언금되는 사랑.기쁨,평화등도 영의 드러남이겠지만 이 덕목들은 영에 의한 내적 변화의 표시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인 데 비해 여기서 영의 드러남은 사람에 따라 달리 주어지는 선물이다. 영의 내면적 작용에 관해 다음 구절들 참조. 로마 8.11; 로마5.5.; 로마 8.15와 갈라 4.6.

 

흔히 번역본에 공익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맥에서 바오로가 은사들의 교회적 유익성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원문은 유익을 위하여라고만 되어 있다. 사실 모든 은사가 공적 유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상한 언어는 분명히 한 은사이지만 말하는 사람 자신을 일으켜세운다”. 이에비해 예언의 은사는 교회를 세운다”, 은사를 앞세워 자기 자랑을 하거나 남들을 무시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바오로가 은사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은사에서 개인적 유익을 완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8

8-10절에는 은사(카리스마)의 목록”(아홉 가지 은사)이 나온다(로마 12,6-8참조).

지혜”나 인식이라고만 하지 않고 지혜의 말씀또는 인식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영의 내적 선물(지혜와 인식)이 아니라 외적 선물을 말하기 때문이다.

 

9

특별히 돈독한 믿음을 의미한다.

 

10

튀나미스는 직역하면 능력”(권능)인데 신약성서에서는 자주 복수 형태로 사용되면서 권능에 찬 일들”, 즉 기적(이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에서 일어난 기적에 관한 기록은 신약성서에 자주 나오는 편이다.

 

영들의 식별”; 성서에서 유일한 표현이다. 1요한 4,1에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하느님에게서 온 영들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1요한 4.1에서처럼 예언이 문제다. 그렇다면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란 참된 영감을 믿고 하는 예언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은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영들의 식별에 관해 14.29에 다시 언급된다.

 

갖가지 이상한 언어를 직역하면 혀들의 종류들”. 성서에서 유일한 표현이다. 14장에서는 언어들로 말하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언어들이란 사도 2,4,8,11에서처럼 배우지 않고도 말하게 되는 외국어들이라기보다 영의 드러남”(7)이 하나로서 그를 해석할 수 있는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스런 말을 의미한다. 14장을 보면 이 이상한 언어의 은사를 고린토인들이 특별히 대단하게 여겼음에 틀림없는데, 바오로는 이를 시정하려 한다.

 

11

6절에서는 모든 활동의 원천이 하느님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이라 한다. 하느님은 당신 영을 통해 공동체안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하신다.

 

 

 

 

 

복음<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하였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장방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카나 혼인잔치: 첫 번 표징

이 대목은 요한복음 일곱 표징사화 가운데 하나다. “표징은 예수의 기적을 가리키는 요한복음 특유 용어로서, “영광을 드러내는 예수와 그를 파견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야기됨을 뜻한다. 기적 자체보다는 기적을 행한 예수의 인격에 중점을 둔 그리스도론적 용어다. 11절에도 요약되어 있듯이, 이 대목은 문맥상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한다. 하나는 첫 제자들에게 약속한 더 큰 일이 실제로 이루어져 제자들이 예수를 메시아, 모세와 예언자들이 예언한 분, 이스라엘의 왕, 하느님의 아들로 더 확고히 믿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의 자기계시가 표징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처음으로 열어보이는 것이다(11).

 

1

문장 연결을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굳이 상징적 의미를 본다면 하느님의 도움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3은 완전이나 완성을 뜻하는 숫자로서 신적인 관련이 있고, 예수의 시간”(4)은 성부의 뜻을 표현하는 것으로서(17.1)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11).

 

혼인잔칫집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시사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마리아의 역할 때문에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의 어머니는 십자가상 죽음의 장면에서 또다시 언급된다.(19,25-27)

 

3

다만 어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알리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기적을 부탁한 말은 아니다.

 

4

어머니를 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셈족 계통의 표현방식으로 반문하는 것은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직역하면 무엇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있습니까?)인데, 두 사람사이 관점의 차이나 관계에서 거리가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예수의 시간과 결부된 내용이기 때문에, 시간의 의미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시간이 곧 성부께로 귀환하는 예수의 죽음과 직결된 를 전형적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시간은 예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우선 예수의 말 가운데 시사된다.

 

시간은 성부의 뜻이 반영되는 를 가리킨다. 성부의 뜻이 곧 아들 예수의 행위를 규정한다. 따라서 그 시간은 아들 예수의 영광과 함께 성부의 영광이 계시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성부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알리고자 했다고 하겠다. 즉 혈육 관계를 뛰어넘어 성부와의 관계속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말한 것이다.

 

5

마리아는 마치 예수의 말을 잘 알아차린 듯이 예수의 뜻에 따르도록 시중꾼들에게 말한다. 자기는 뒷전으로 물러나 아들을 신뢰하며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리아의 이 말은 파라오가 이집트인들에게 말한 내용(창세41.55)과 병행을 이룬다.

 

6

한 동이는 약 40리터.

 

9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 자체에 관한 언급은 없으나, 잔치 주관자에 의해 기적임이 확증되고 시중꾼들이 기적의 증인으로 소개된다.

 

10

포도주 맛이 뛰어남을 표현하는 이 말은 그 출처를 묻는 말과 함께 포도주 제공자의 품위도 시사한다.

 

11

카나 기적의 의미와 결과를 요약한다. , 이 기적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표징이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표징이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시만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보는 사람에 한해서라는 점이다. “표징은 예수의 자기계시 수단이요 그 의미는 믿는 자에게만 전달된다(20,30-31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셨던 기적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은 모두가 거룩한 것으로 변화시킨 일들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때 아무곳에서나 퍼온 물이 아니라 정결례(淨潔禮)에 쓰는 물독에에다 부었다가 퍼온 물입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죠.

 

물이 포도주로 변화했으니 우리들은 그저 세상의 즐거움만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결혼식을 하고 나눔잔치를 합니다. 결혼식을 올릴 때 평생을 거룩함으로 사랑으로 서로 한몸이 되어 살라는 주례사등을 하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엠이라는 제도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혼인은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인이 얼마나 거룩합니까? 그리고 또한 기쁘지 않습니까? 또한 술을 마시고 여러 가지등등 축제를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무려 일주일간이나 지내는 혼인잔치였답니다. 이러한 혼인잔치는 깨끗합니까?

 

우리는 즐거움을 세상것에서만 찾지 마시고 하느님 말씀과 전통들 그리고 구원사를 나누며 지내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직은 때가 아니되었어도 어머니의 말씀에 물을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베푸신 것을 새겨야 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포도주만을 일주일간 마신다면 물이 없으면 목말라서 죽을 정도입니다.  

양을 잡았는지 하여튼 고기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물이 그물이 아닙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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