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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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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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16 ㅣ No.152309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지방 코마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고, 많은 사람이 안토니오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다. 성인은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4세기 중엽 사막에서 선종하였다.

 

 

 

 

1독서<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사울의 행동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시리라고 예언한다.

 

 

 

 

 

복음<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찌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단식 논쟁- 새것과 헌 것

이 단원은 예수 생전에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다는 상황어. 예수 사후에 그들이 단식하게 되었다는 말, 새것과 헌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중단절어로 짜여 있다.

 

18

18ㄱ절은 마르코가 덧붙인 것이다. 본디 이 단원은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 ...”(18ㄴ절)로 시작했다. 유다교인들은 일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다. 그러나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모양이다. 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먹보요 술꾼으로통한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다.

 

율사의 제자는 있을지언정 바리사이의 제자란 없다. 단순히 바리사이 무리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19

구약에서는 혼인잔치 상징으로써 종말론적 구원을 서술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라 하신다. 상징어의 뜻인즉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본디 19ㄱ절로써 충분하다.

그렇다면 19-20절은 초대교회에서 만들어 덧붙였다하겠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예수시대에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는데 스승이 돌아가신 다음 교회시대에는 신도들이 단식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자 19-20절을 만들어 덧붙였을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단식 동기인즉 신랑이 떠나 혼인잔치가 끝났기 때문에, 곧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흥이 깨졌기 때문에 단식해야 하다는 것이다. 사실 1세기 교회에는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언제 단식했던가? 짐작에 불과하나 처음에는 예수께서 운명하신 금요일에 단식했을 것이다. 1세기 말엽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21

21-22절은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온 이중단절어다. 그 표현이 상징적이므로 이중상징어라 해도 좋다. 이 상징어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체험을 드러내기 때문에 생활의 지혜 혹은 인생 예지라 할 수 있다. 새것은 강하고 헌 것은 약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상징어는 무엇을 뜻할까?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혁신적이고 위력적이므로 그에 맞갖은 회개역시 새롭고 힘차야 한다는 것이리라(1.15 참조).

 

 

 

 

 

<위 독서,복음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제가 예수님께서 40일간을 단식과 기도를 행하셨다길래 저도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점점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고 나중에는 아무것이나 먹었으면 하더라구요.

물만 먹고 14일간을 회개하면서 참아 냈습니다.  그런데 40일까지는 엄두도 못낼 기간이여서 

더이상 단식을 할 수가 없어 포기를 했어요.

 

그리고 맨처음 먹은 것이 집근처에 있는 밭에서 생강을 수확하고 버린 생강대가 있었는데 마치 

마늘대 같아서 된장에 찍어서 먹었는데 아무런 맛도 없고 먹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이러한 단식은 도저히 할수 없는 고행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셨어요, 그것도 40일간을요.

14일간의 단식 후에는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배는 고픈데 아무런 것도 맛도 없고 먹을 수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참 옛날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두끼만 먹었데요.  그런데 점심을 안먹다가 먹게 되니 점찍듯이 먹는다하여 

점심이라고 불렀다고합니다.  요즘은 또다시 두끼만으로 하루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이런 밥 굶는 것이 단식의 본 뜻은 아니지만 사순절에 기회가 나거든 한 번 해보셔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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