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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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연중 제2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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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17 ㅣ No.152331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1독서<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6,1-13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이사이에게 보내시어 그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

 

 

 

 

복음<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자 바리사이들이 나타나 안식일법을 어겼다고 항의한다. 그에 대한 답변이 세가지나 된다. 굶주렸을 때에는 법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있다. 안식일법은 인간 위주로 이해해야 한다(27). 예수는 인자로서 하느님이 제정한 안식일법조차 고칠 수 있는 전권을 받으셨다(28). 세 가지 답변 가운데 둘째 것만이 예수님의 답변일 것이다.

 

첫째 답볍은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해설이고 셋째 답변은 이방계 그리스도교의 해설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단원의 양식은 2,15-17,18-29처럼 짤막한 상황묘사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간결한 답변(27)으로 끝맺기 때문에 전형적인 상황어라 하겠다.

 

23

5-6월경 밀이 익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왜 밀이삭을 잘랐을까? 배가 고파서 그랬든지 아니면 그냥 입이 심심해서 껌처럼 씹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24

안식일에는 서른아홉 가지 노동을 금지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추수작업이다. 그런데 밀이삭을 자르는 것도 추수작업에 해당된다고 보는 법해석이 있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이 항의한다.

 

25

25-26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다 몹시 굶주린 나머지 아히멜렉 제관에게 가서 하느님께 올린 빵을 얻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제관들은 안식일마다 새빵을 하느님께 드리고 묵은 빵은 오직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아히멜렉 제관은 다윗이 굶주린 것을 보자 법규를 무시하고 그 빵을 주었다. 예수시대 율사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안식일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계 그리스도교계에서는 한걸은 더 나아가 사람이 굶주린 때에도 안식일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다윗의 사례를 내세웠던 것이다.

 

한결같이 예외 규정을 논하는 결의론이다. 그리고 아히멜렉 제관 대신 에비야달 대제관”(26)이라 한 것은 성경 사본이 무척 귀한 때인지라 해당 대목을 찾아보지 못하고 어렴풋이 기억해서 전하다가 생긴 착오다.

 

27

바리사이들의 추궁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 것 같다. 하느님이 먼저 사람을 창조한 다음에 안식일을 정하셨다는 천지창조 신화를 상기하고 그렇게 답변하셨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하튼 27절의 말씀은 제자들이 어느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일 뿐 아니라 안식일의 뜻 자체를 밝히는 원칙적인 답변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안식일법을 상대화하고 사람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적 법이념을 내세우셨다. 요즘 말로 법률만능 사상을 물리치고 인권을 부르짖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주 안식일법 준수보다 인간애를 앞세우셨다.

 

28

27절에서 인본주의 법이론을 전개했다면 28절에서는 그리스도론적 근거로 내세워 안식일 자체를 문제삼는다. 본디 하느님이 안식일의 주님이신데 이승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전권을 받은 인자로서 안식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이 그리스도론적 근거는 이방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덧붙인 것 같다. 사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축일로 지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저도 어렸을 때 밀밭을 지날때면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렇게 입에 넣고 씹으면 껌처럼 됩니다. 거기다가 소금을 넣어서 같이 씹으면 맛이 좋습니다. 그당시에는 이 밀이삭을 씹는 것이 맛이 있기도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며 지나가면서 이삭을 뜯었다는 말을 들어보니 밀들이 아주 수북히 자라서 길조차 없게 했는가봐요. 그리고 밀 추수가 다된 것 같으니 다른 먹을 거리도 있었을 거에요. 그러니 제자들이 배는 고프지는 않은 것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추수라고 볼수 있을까요?

 

2천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오늘날에도 이런 행위를 추수라고 보기에는 아주 무리가 있는 판단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법해석 차이를 보게 됩니다. 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까요? 몇십년 전만해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또한 밭을 다 해칠정도라도 주인이 뭐라고만 나무랐지 이런 경우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라면 저는 오히려 길을 왜 막았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법이란 도덕의 최소한이니까요.

 

밀이삭을 뜯은 것을 추수를 하는 행위라고 하는데서 문제가 된 것이잖아요. 밀을 왜 뜯어먹었느니 하는 것이 아니고 밀이삭을 뜯은 행위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추수하는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법해석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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