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5일 (일)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신심 미사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자유게시판

나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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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22-09-20 ㅣ No.225929

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한국 103위 순교 성인 대축일(920)

 

“Qui perdiderit animam suam propter me, salvam faciet illam.” · “나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을 사람은 그걸 살리게 되리라.”(루카 9,24)

 

오늘 920, 보편교회(전 세계 가톨릭교회)한국 순교자들의 기념(Memoria Martyrum in Corea)’을 하는 날! 보편교회의 ‘Dies Ss. Andreæ Kim Tae-gõn, presbyteri, et Pauli Chõng Ha-sang, et sociorum, martyrum’이라 표기된 날! 한국어 미사 경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라고 표기된 날! 보편교회의 기념일(Memoria)을 한국 교회의 대축일(Solemnitas)이라고? 당연하다!

그런데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가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 성인과 바오로 정하상 성인과 그 동료 순교자들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 한국 순교 성인들의 이름을 기억(기념)한다는 건 실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김대건 성인과 정하상 성인의 실명을 기념일에 표기했다는 것이 뿌듯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 그다음에 동료 순교자들(sociorum martyrum)’이라고 뭉뚱그려서 표기한 101위의 이름이 생략된 것은 섭섭한 일이다. 그러자면 너무 많은 지면이 요구될 것이기에 이해가 되지만, 정작 오늘 대축일로 지내는 한국 교회 마저 101위 순교성인을 그리 취급하는 건 큰 잘못이다. 101위의 순교성인 이름을 교우들이 볼 수 있도록 전례 축일표에 넣어 인쇄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주교회의에서 매월 발행하는 책 매일미사920일에 인쇄비가 더 들더라도 그리하면 오죽 좋겠는가! 김대건 신부님과 정하상 성인만 확실히 기억하고 101위 성인을 소홀히 하다니,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유명한 이름으로만 순교 신앙을 말한다면 그 자체로 순교가 무엇인지 그 참뜻을 모르는 짓이다.

순교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나의 실존을 믿음 고백에 몽땅 던지는 행위다. 좀 설명하자면,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신앙으로 밝히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은 시골 노파가 신앙 하나에 자기 삶을 몽땅 걸었다는 걸 칼날 아래에 목을 내민 행위로 보여준 게 순교다. 그 행위는 유명한 순교자의 목숨 바침과 견주어 결코 1%도 뒤지지 않는다. 해서, 시복시성을 해드리지 못할 정도로 자료수집이 불가능하게 이름 없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은 더 위대한 차원의 순교를 한 분들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해미에서 숱한 무명의(이름 알려지지 않은) 목숨들이 생짜로 묻혔다는 사실은 더욱 하늘에 빛나는 역설적 보배이다.

그런데 그 이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묻힌 현장에 화장(火葬)한 유골함들을 돈 받고 안치할 이른바 평화의 전당을 지어야 국제성지의 면모를 갖출 것이라는 프로젝트는 누구의 이름을 빛내자는 것인가?

오늘 920일은 유명한(이름 있는·有名) 순교자들만의 대축일이 아니다. 이름 알려지지 않은(無名·unknown) 순교자들 또한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920일이다. 어지러운 지상의 현세 후손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소상히 알고 계시는 그 무명(unknown)의 순교자들은 우리 교회의 저변에 오늘도 묵묵히 보잘것없는 처지로 가장 굳건한 믿음의 삶을 사는 신자들의 모습으로 리바이벌(되살아나·還生?)되고 있다. 그러한 보잘것없는 신자들은 말한다. “저희 같은 보잘것없는 처지의 뼛가루가 어찌 감히 순교자들 유골과 함께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슈우?”

그런데 그런 처지로(보잘것없는 자들이기에) 생매장당한(산채로 묻힌) 그 신자들의 육신이 스러진(녹아든) 그 자리에 돈 내고 납골하겠다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이른바 국제성지하겠다고? 그래서 국제성지라는 이름 따낸 그 능력의 고위 성직자와 그 하수인의 세과시로 생매장 순교지에서 그 옛적 오로지 예수 마리아만 외쳐 부르며 묻혀갔던 저 여숫골의 생생한 신앙의 숨소리는 납골당(納骨堂)이 돼야 한단 말인가! 이제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오늘의 실력자들 권세하에, 옛적 보잘것없는 육신들이 묻혀서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지 끊어졌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그 자리에 한세상 살다가 숨끊어진 육신들의 뼛가루를 극진한 쇳덩이()로 포장하여 모시겠다? 그래야 국제성지? ‘Sanctuarium internationale’가 뭐야? 국제성지? 이거 무슨 상업 레벨 아냐? 아니다! ‘국제 순례지란 말이다! 이걸 상업적 레벨처럼 순교지·martyrium’에 덮어 씌어 붙이면 그 자체 본질을 똥칠하는 것이다. ‘국제 순례지란 널리 알려진 순례지·pilgrim area이다. 갈메못이나 홍주나 공주나 그런 다른 곳의 순례지 역시 미국, 일본, 유럽의 순례자들이 점차 찾아오면 그게 국제 순례지·sanctuarium internationale’로 자연스레 자리매김이 될 것이다. 납골당을 평화의 전당이라 억지 이름 붙인다 해서 이른바 국제성지되는 게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루르드를 국제성지라고 선포했기에 순례 물결을 맞이하게 됐나? ‘해미순교성지무명인들이 신앙고백으로 묻힌 곳이라는 특징을 본질로 하여 순례의 물결을 맞이하도록 기획 되어야 한다. 납골로 돈 처발라서 이른바 국제성지될 수는 없다!

오늘 우리 한국 순교자들의 대축일에 해미에서 들려오는 납골당 괴소문을 들어 말을 늘어놓은 게 참으로 부끄럽다. ‘순교란 무슨 뜻으로 일컬어지는 말인지 그 핵심적 개념을 가지고 해미순교성지와 관련하여 목숨 바친 순교자들과 오늘의 우리 모습(작태)을 견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하여튼 순교란 너무나 쉽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러한 너스레를 떨고 있는 나 자신은 이렇듯 말 많은 그 자체로 순교그것을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순교자는 말이 없다! 그저 목숨을 턱 내놓을 뿐이다.

그러면 도대체 순교자란 누구일까? 그 명칭을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본뜻이 뭐라는 등 유식한 척 강론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더욱 이 글의 앞에서 순교란, 나의 실존을 믿음 고백에 몽땅 던지는 행위다라고 유식하게 일갈한 나의 말은 그야말로 건방지고 주제넘은 망언이다. 이 망언을 하는 나에게 150년 전의 흥선대원군이 다가와서 너 천주학쟁이지?”하고 묻는다면 혼비백산 지레 먼저 숨이 끊어질 것이다. 오늘날의 유식한 내가 과거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잘난 척 노가리를 까는 것 자체가 순교자들이 어떤 분들이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놀리는 것이다. “네가 믿는다는 그게 정말 진리냐?”라고 흥선대원군이 나에게 묻는다면, 글쎄 솔직히 겁나서 말할 자신 없다. “그저 목숨만”,하고 벌벌 떨면서그다음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 부끄럽다. 순교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기적이다!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한 사람을 참 신앙인으로 변모시켜주신 은총이 순교. 그 은총을 모르면서 나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을 사람은 그걸 살리게 되리라.” 말씀하신 분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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