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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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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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6-18 ㅣ No.173439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마태 5,43-4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인 ‘원수 사랑’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유래한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율법을 “원수를 사랑하라”는 더 큰 계명으로 ‘확장’시키십니다. 제가 ‘확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께서 말 그대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은 ‘이웃’의 개념을 같은 민족,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좁은 범위로 한정해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웃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게 당연한 이들, 즉 ‘원수’나 ‘죄인’ 같은 이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아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는 인습법이 되었지요. 즉 원수에 대한 증오를 합리화하는 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가려서 사랑하려 드는 그들의 좁은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전통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웃’은 ‘호불호’라는 내 좁은 울타리 안에 있는 ‘일부’의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만의 편협한 기준으로 이웃과 원수를 가르고 사랑에도 차별을 두는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으시고자, 그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극단적인 권고를 내리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라면,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자녀라면,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차별과 차등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그 원수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대단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그가 더 큰 사랑을 필요로 하는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족하고 약한 이들 중에 ‘사도’를 뽑으신 것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끝까지 찾으시는 것도,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먼저 부르시는 것도 다 사랑을 ‘필요’라는 기준으로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함에 있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회개’라는 자격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내 멋대로 ‘원수’라는 굴레를 씌운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는 처음부터 원수였던게 아닙니다. 그를 원수로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마음이 이해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편,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부족하고 약한 피조물일 뿐이니,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상처 받는게 당연합니다. 또한 나말고 다른 이들도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연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을 ‘완벽’이라는 잣대로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빈틈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버거운 완벽이라는 굴레를 다른 이들에게 씌우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약함을 내 사랑과 자비로 채워줌으로써 함께 ‘참된 완성’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남을 위해 심지어 나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바치는 그 간절한 기도가 우리를 온전히 살게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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