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9일 (목)
(녹)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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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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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9-08 ㅣ No.175783

미국에서 자동차는 신발과 같습니다. 이번에 자동차를 새로 마련했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자동차는 오래되기도 했지만, 일정 속도에 이르면 소리가 났습니다. 뉴욕에서 사용하던 자동차에 익숙해 있었기에 비슷한 차종으로 바꾸었습니다. 제가 처음 운전을 시작한 것이 1991년이니 어느덧 33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중고차 르망을 사서 1년간 다녔습니다. 다음에는 현대 엑셀을 사서 7년간 다녔습니다. 경기도 적성 성당에 있을 때는 중고차 코란도를 사서 다녔습니다. 코란도는 비포장 길에도 잘 달렸고, 사륜구동이라서 눈길에서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로 연수 가면서 코란도는 동창 신부에게 주었습니다. 동창 신부는 제게 전자사전을 주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와서는 동창 신부의 권유로 소나타를 샀습니다. 그렇게 12년을 타던 소나타는 미국에 오면서 아는 분에게 드렸습니다. 뉴욕에서는 하이랜더를 탔었고, 댈러스에서는 제네시스를 마련했습니다.

 

33년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자동차의 기능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걸 보았습니다. 수동기어는 대부분 자동기어로 바뀌었습니다.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기능이 많아졌습니다. 블루투스 기능이 있어서 스마트폰과 차량이 연결됩니다. 스마트폰에 있는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전화를 걸 수 있고, 내비게이션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차량의 문을 열 수도 있고, 시동을 걸 수도 있습니다. 차량 점검을 스스로 해서 교체해야 할 부품을 미리 알려 줍니다. 최근에 발전하는 부분은 자율주행 기능입니다. 차선을 유지하는 기능도 있고, 차선 이탈 방지 기능도 있습니다. 속도 조절 기능이 있습니다. 일정 속도를 정해 놓으면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속도를 유지합니다. 앞의 차가 속도를 줄이면 같이 속도를 줄이기에 안전한 운행이 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탑재되면 자동차는 움직이는 사무실이 될 것입니다. 운전자가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자동차는 인공지능과 함께 목적에 도착할 것입니다. 운전자는 자동차에서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입니다. 본당 신부님이 제게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자동차는 신발과 같다. 너무 크면 움직이기 힘들고, 너무 작으면 발이 불편하다. 발에 딱 맞는 신발이라 생각하고,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가는 수가 있다.” 신발과 같은 자동차는 자기의 수준에 맞는 것이 좋습니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운전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기능이 좋은 차도,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으면 사고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교통법규의 기본은 교통신호와 규정 속도입니다. 교통신호는 서로의 약속이기에 교통신호를 무시하면 큰 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규정 속도를 넘어서면 돌발 상황에서 차를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운전자에게는 안전운전이 필요합니다. 장거리 운행을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2시간 정도 운전하면 잠시 쉬면 좋습니다. 화물차나, 과적 차량의 뒤는 가능하면 피하면 좋습니다. 앞의 차량과 뒤의 차량도 살펴보면 좋습니다.

 

결국 자동차는 운전자를 위한 도구입니다. 장미꽃을 포장한 종이에는 장미 향이 나기 마련입니다. 생선을 포장한 종이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기 마련입니다. 자동차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면, 자동차로 가족을 돌보면 자동차는 복음의 도구가 됩니다. 자동차로 도박장을 다닌다면, 자동차로 남을 다치게 한다면 자동차는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안식일도 그렇습니다. 율법과 계명도 그렇습니다. 율법과 계명으로 무고한 사람을 단죄하고, 죄인 취급한다면 그것은 율법과 계명의 정신을 망각하는 겁니다. 안식일이라서 선을 베푸는 행동을 단죄한다면 그것은 안식일의 의미를 망각하는 겁니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도 율법과 계명에 근거했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새 반죽은 제도와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새 반죽은 순결과 진실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했던 것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이 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는 영성이 더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영성은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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