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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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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루카 19,11ㄴ-28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공평하게 하나씩 맡긴 '미나'는 예수님 당시 쓰이던 그리스 화폐로 약 백 데나리온, 우리 돈으로 천 만원 가량 되는 가치를 지닙니다. '미나의 비유'에서는 주인으로부터 꽤 큰 돈을 위탁받았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세번째 종의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미나를 사용하지 않고 묵혀둔 이유는 한 마디로 '무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미나'라는 돈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소중한 것인지를 몰랐고, 주인이 자신에게 그런 큰 돈을 맡긴 마음과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맡긴 돈을 기반으로 삼아 '사업을 해보라'는 주인의 뜻을 오해하여, 그 돈으로 '반드시 수익을 내라'고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러자 크나큰 부담감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자신은 다른 종들처럼 대단한 능력을 갖추지도, 뛰어난 사업 수완을 지니지도 못했으니, 섣불리 그 돈을 잘못 굴렸다가는 큰 손해를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랬다가는 나중에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게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전빵'을 택합니다. 주인에게 손해만 끼치지 않으면 적어도 혼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에 돈을 묵혀두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긴 것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우려는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벌이를 하여라'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를 직역하면 '무역을 하다', '사업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늘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로 인해 큰 실패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많은 돈을 손해보기도 하지요. 그러나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 쓰라린 실패가 나중의 더 큰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늘 주인이 주는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모습으로 살아서는 발전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종들이 자기 사업의 '주인'으로써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과정을 통해 큰 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업자'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애초에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고자 맡긴 일이니 한 미나를 가지고 얼마를 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도는 주인이 첫째 종을 칭찬하는 말 속에서 드러납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주인이 첫째, 둘째 종을 칭찬한 것은 그들이 큰 결실을 거두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주인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성실한 자세로 임했기에 칭찬한 것입니다. 그런 주인의 모습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사랑의 소명을 맡기신 것은 '성공'하여 결과를 내라는 뜻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실적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종은 최대한 소극적인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우리를 닮았습니다. 하느님께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데, 원수까지 사랑하기는 싫고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손놓고 있자니 그러다 벌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손해만 끼치지 말자고, 적어도 그분 마음 아프게 만드는 '죄만은 짓지 말자고', 그러면 최소한 지옥엔 안갈거라고 자신을 속이고 세뇌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일년에 살인이라는 범죄로 희생되는 사람보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주님께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큰 죄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랑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