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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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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ibiblelife] 쪽지 캡슐

2024-12-16 ㅣ No.1862

 

 

 

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전기  [구입하기]

 

조선 신자들을 위해 목숨 바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과 사랑 

1835년 선종한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국인 프랑스에서 1938년 출간한 전기를 번역한 책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이 책의 번역 및 보급을 주관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기는 기존 출간 도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과 그의 여정 속 이야기를 통해, 주교의 신앙과 삶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그가 조선 선교를 어떻게 준비하고 헌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조선 복음화를 위해 온 삶을 바치신 주교님의 발자취를 깊이 새기게 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오랜 시간 제한적으로만 알려졌던 원전의 내용을 이제 신자들과 널리 나눌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추천사 중에서


1832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그동안 북경 대목구에 속해 있던 조선을 분리시켜 새롭게 조선 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시암 대목구의 보좌 주교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는 교서를 반포했다. 일찍부터 조선에 관심을 갖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선교사 브뤼기에르는 그가 있던 페낭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조선 땅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100여년의 시간을 두고 톺아보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와 신앙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의 프랑스어판 원서 『Monseigneur BARTHÉLEMY BRUGUIÈRE』가 출간된 것은 브뤼기에르 주교 사후(1835년) 100년여가 지난 1938년이었다. 저자 카미유 브루통클은 브뤼기에르 주교 후손으로서 당시 오드 교구 페장 본당 주임 사제였다. 그는 교회가 브뤼기에르 주교의 성덕을 인정하고 그의 공로를 선포할 날을 희망하며, 영웅적인 선교사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를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밝혔다. 전기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와 조선으로 향했던 그의 여정을 톺아 가며 보여 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을 제안한 이 책은 기존의 브뤼기에르 주교 관련 도서에서는 볼 수 없던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과 험난한 여정의 정한情恨이 담긴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한국어판의 발간을 축하하며 이 책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헌신과 신앙을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책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헌신과 신앙을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다지고 복음화의 길을 더욱 굳건히 걷는 데 큰 영감을 주기를 소망합니다.” 

 -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추천사

 

사제, 교수, 참사회의 요직을 둔 채 

선교 사제로 떠난 브뤼기에르 신부 

1789년부터 1799년까지 이어진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종교도 혁명의 불꽃을 피해갈 수 없었다. 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쫓겨났고 성당과 수도원이 문을 닫았다. 브뤼기에르가 신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기 시작한 1805년은 프랑스 곳곳에 아직 혁명의 잔열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난세亂世’에 ‘영웅英雄’이 난다고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황폐해진 교회라는 텃밭에서 훗날 큰 가지를 드리우게 될 겨자나무의 씨앗과도 같았다. 놀라운 신심과 의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브뤼기에르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재능과 헌신을 인정받아 철학과 신학 교수 그리고 참사회원이 되는 명예를 얻었다. 

 

그는 뛰어난 지력과 양식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지닌 성품을 타고났다. 믿기 힘든 에너지와 독립적인 성격을 지녔던 그를 두고 장상은 이렇게 말했다. “혹여 그가 주교가 된다면, 그의 표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말하든, 나는 전진할 것이다!’가 될 걸세.” 

- 「브뤼기에르 주교의 외모와 성품」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간 

선교 사제 브뤼기에르의 삶 

명예와 안정된 지위를 포기하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카르카손을 떠나야 했던 브뤼기에르에게 가족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열한 명의 자녀들 중 막내였던 그는 상심하실 부모님을 걱정하면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는 파리외방선교회에 들어가기 위해 카르카손을 떠날 때에도 부모님께 “이생에서 잠시 헤어지겠지만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도록 해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말을 적은 편지만을 남겼다. 

브뤼기에르는 프랑스를 떠나 자신에게 맡겨진 선교지로 향하면서 가족들과 작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잠시 고향에 들러 작별 인사를 하라는 부모의 당부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편지를 보내 자신이 이렇게 서둘러 떠나야 하는 이유를 알렸다. 브뤼기에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정情이 아닌,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시어 주신 명령임이 분명하다면 잠자코 순명해야 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사랑하는 부모님, 안녕히 계십시오. 주님께 거듭 이 마지막 희생을 드리십시오. 부모님이 저의 편지를 받으실 즈음 저는 프랑스 해안을 멀리 벗어나 있을 것입니다.” 

 - 「아시아 선교지로 떠나다」

 

유럽인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 아시아인의 삶 

브뤼기에르 주교의 지적 능력은 의심할 바 없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제로 서품받은 후 불과 4년 동안 신학교의 신학과 철학 교수가 되었고 참사회원의 명예까지 얻었다. 그가 자신에게 맡겨진 선교지로 가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편지와 여행기, 파리외방전교회가 출간하는 『전교회지』 등에 그의 여정을 소개하는 글을 남겼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모세와도 같은 브뤼기에르의 삶 

구약 성경의 「탈출기」에는 이집트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히브리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끈 모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죽어 그곳으로 가지 못했다(신명 34,3 참조). 브뤼기에르 주교도 하느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거치고 또 거쳤다. 선교가 금지된 중국 대륙을 종단하면서 조선의 신자들에게 다가갔던 목숨을 건 그의 여정은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마가자(馬架子, Ma-kia-tse)에서 멈췄다. 

모세의 역할은 여호수아에게 이어져 히브리인들은 약속의 땅에 정착할 수 있었듯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놀라운 여정은 그의 뒤를 이은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에게로 이어져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선종 96년 후인 1931년, 그가 그토록 닿고자 했던 조선에 그의 유해가 이장되었고, 선종 200년을 앞둔 지금 한국 천주교회는 그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이 책이 필요한 까닭을 알려 준다. 

 

“그가 섬기며 명예롭게 했던 교회가 그의 공로를 선포하고 그의 성덕을 인정할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희망할 수 있을까? 이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카르카손 교구에는 새로운 영광이 될 것이고, 그의 동포들에게는 마땅한 자랑이 될 것이다.”

  - 「고향 레삭도드에서 거행된 추모 미사」


 

 

 

추천사 4 

발간사 7 

 

1부 출생에서 파리외방전교회로 떠나기까지 

브뤼기에르 주교의 외모와 성품 14

갑사의 주교, 브뤼기에르 주교의 문장 소개 16

브뤼기에르 주교의 출생 - 날짜와 장소와 본당 17

중등 교육 과정 25

카르카손 대신학교 입학 26

카르카손 소신학교 교사 29

사제, 대신학교 교수 그리고 참사회원이 되다 31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다 34

 

2부 보르도에서 마카오까지의 여정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48

아시아 선교지로 떠나다 51

마카오에 도착하다 70

 

3부 시암 선교사

페낭에서의 활동 82

방콕을 향하여, 육로를 통한 선교 여행 90

마침내 방콕 100

 

4부 시암 대목구의 보좌 주교

시암 대목구의 보좌 주교가 되다 120

주교 서품식 125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 여행 136

싱가포르에 도착하다 139

페낭에서의 사목 활동 141

인근 교우촌 사목 방문 151

 

5부 조선을 향한 여정 - 브뤼기에르 주교의 중국 여정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되다 156

마닐라 체류 160

마카오를 지나 복안으로 163

강서에서 172

강남에서 176

절강에서 강소로 186

산동 지방 189

산서에서 200

 

6부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

달단으로 떠나다 210

서만자에서 214

조선을 향한 마지막 여정 223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 229

사후 96년 만의 조선 입국 232

고향 레삭도드에서 거행된 추모 미사 239

 

역주譯註 244

 

글쓴이 카미유 뷰르동클J.-Camille BOURDONCLE

이 책을 쓴 카미유 부르동클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후손으로 이 책의 출간 당시(1938년) 오드Aude 교구 페장Pezens 본당의 주임 사제였다. 

그는 교회가 브뤼기에르 주교의 성덕을 인정하고 그의 공로를 선포할 날을 희망하며, 영웅적인 선교사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를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밝혔다. 

 

옮긴이 연숙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19세기 불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필사본 서한을 판독 및 번역해 왔으며,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일하고 있다. 

『감춰진 하느님 나라』(분도출판사), 『요한 코스트 신부의 서한집』(한국교회사연구소) 등 다수의 번역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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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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