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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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느님 "희망하라, 기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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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4-12-19 ㅣ No.178595

2024.12.19. 12월19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느님

“희망하라, 기뻐하라, 사랑하라”

 

 

“오 옛세의 뿌리여 만민의 표징이 되셨나이다.

 주앞에 임금들이 잠잠하고 

 백성들은 간구하오리니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대림 제2부, 세 번째 12월19일 저녁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오후렴’이자 오늘 복음 환호송입니다. 12월17일부터 12월23일까지 계속될 ‘오후렴’에 반드시 들어있는 ‘오시어’ 라는 말마디입니다. 주님께서 어서 빨리 오시어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참 애절한 기도입니다.

 

새삼 대림시기뿐 아니라 우리의 평생이 오시는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림의 나날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사람을 찾는 하느님도 있습니다. 우리 사람을 찾아 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하느님!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아주 예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애송하는 '하늘'이란 시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요즘 어지러운 현실을 보며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생각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배척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완전히 심리적 내전상태입니다. 나라나 사회나 개인이나 악을 상징하는 바오밥나무들이 너무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일부 내용입니다.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는데...바로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 씨앗투성이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손을 너무 늦게 쓰면 영영 없앨 수가 없게 된다. 바오밥나무가 별을 온통 차지하고는 뿌리를 내리면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은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서 별이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흡사 바오밥나무들 천지같은 지구별 세상같습니다. 사람도 흡사 바오밥나무 같습니다. 나라도 사회도 가정도 내 마음도 바오밥나무들이 깊이 뿌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가라지보다 참 두렵고 무서운 것이 세상의, 내 안의 악의 바오밥나무들입니다. 

 

영적전쟁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부단히 평생 바오밥나무를 뽑아내거나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바로 영적전쟁의 핵심입니다. 바로 대림시기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치열한 우리 삶의 준비와 덕의 실천으로 내적 악의 바오밥나무를 제어해야 합니다. 바로 그 모범이 복음의 즈카리야 엘리사벳 부부요 판관기의 마노아 부부입니다.

 

첫째, “희망하라!”입니다.

희망의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절망이 대죄입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문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그대, 희망을 버려라” 글자가 쓰여져 있다합니다. 희망이 없는 절망의 거기가 지옥입니다. 절망이 바로 나를 파괴하는 바오밥나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악은 우리를 소외시키고, 우리의 꿈을 소멸시키고, 우리를 외롭게 하고, 우리를 좌절케 한다.” 바로 절망이 악의 실체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아이를 갖지 못한 노년의 즈카리야, 엘리사벳 부부나, 마노아 부부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찾고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갈망하고 열망하며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며, 기다리고 인내했음이 분명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때가 되니 하느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두 부부를 찾아 오셔서 아이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마노아 부부의 아들은 삼손이요, 자카리아 엘리사벳 부부의 아들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선물이요 각자 사명이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신의 한수'같이 각자 고유의 사명이 주어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기뻐하라!”입니다.

기쁨의 하느님입니다. 희망의 기쁨이요, 희망과 기쁨은 함께 갑니다. 희망의 주님에게서 샘솟는 기쁨이요,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쁨이요, 이 기쁨이야 말로 참영성의 표지입니다. 이 희망의 기쁨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거둬냅니다. 

 

참으로 희망과 기쁨보다 더 좋은 명약도 없습니다. 절망이란 악의 바오밥나무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희망의 기쁨입니다. 제 분명한 추측은 마노아 부부, 자카리아 부부, 아이는 없었지만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쁘게 살았을 것입니다.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우울하게 슬퍼하며 어둡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불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삼손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말에서 나온 이름이니 태양과 같은 아들을 두었으니 마노아 부부의 기쁨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자카리아의 아내 엘리사벳은 잉태후 다섯달 동안 숨어지내며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 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마노아 부부나 자카리아 부부, 모두가 절망스런 환경중에도 한결같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쁘게 감사하며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셋째, “사랑하라!”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수행입니다. 마노아 부부의 행적에 사랑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감지되는 믿음과 사랑의 삶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갈망했기에 주님의 천사도 친히 그 부부를 찾아 오셨습니다. 

 

참으로 간절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찾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없으면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시지도 않고, 주님이 찾아 오셔도 우리는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즈카르야 엘리사벳 부부가 얼마나 하느님 믿음과 사랑에 충실하고 한결같았는지는 다음 대목이 입증합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제 나름대로 다짐하며 실행하기로 한 내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고, 적게 쓰고”에 이어,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나누고”, 셋의 ‘적게’에 셋의 ‘많이’ 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희망하라!

 기뻐하라!

 사랑하라!”

 

대림시기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삶도 없고, 악의 바오밥나무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처방의 삶도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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