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이사7,10~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아하즈가 구하기를 거부한 표징을 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실 것이 선포된다.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아하즈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하느님은 유다 백성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무상의 선물인 은총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은총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여기서 '젊은 여인'(처녀; virgine)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알르마'(haalmah)이다.
원형 '알르마'(almah)는 구약에서 7회 사용되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 즉 결혼 적령기에 있지만 성(性)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창세24,43; 탈출2,8; 잠언30,19).
더욱이 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칠십인역(LXX)은 본문의 이 단어를 숫처녀를 의미하는 희랍어 '파르테노스'(pharthenos)로 번역하였다.
이 '파르테노스'는 숫처녀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 '뻬툴라'(bethula)(창세24,16)의 번역어이기도 하며, 마태오 복음 사가가 마리아를 가리켜 '처녀'(동정녀)라고 한 희랍어 '파르테노스'와 동일한 단어이기도 하다(마태1,23).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가리키는 예언이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난점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징조가 당시 아하즈 왕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700년 후에 일어날 징조가 당시 아하즈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그러하다면, 그 징조가 아하즈에게 어떻게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징조가 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난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난제를 이렇게 해석하면 물의가 없다.
사실 700년 후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그 사건을 예언하면서 그것이 자기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고, 또 아하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전혀 부자연스런 일이 아니고 그 예언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그 광대한 진리를 하느님께서 계시로 주신대로 왜곡이나 변조없이 그대로 증거한 것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주장을 취하게 되면, 여전히 7장 16절이 난해한 구절로 남는다.
"그 아이가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7,16)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700년 후에 태어날 임마누엘의 예표로서 이사야 시대에 한 아들을 주셨을 것이며, 이사야서 7장 16절은 아마도 그 아들에 대한 예언일 것이다.
그 아들은 이사야서 8장 3절, 4절과 관련하여 이사야가 그 아내를 통해 낳은 아들이 분명하며 그 이름은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이다.
이사야서 7장 16절의 아들이 임마누엘을 예표하는 것은 구약 시대의 이사악이나 요셉, 여호수아 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는 사실과 관련지을 때 조금도 부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창세기의 요셉이 동정녀를 통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또한 이사악이 비록 제단에서 문자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십자가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그 여자가 낳게 될 아들 역시 믿는 자에게 구원이 되고 불신자에게 심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임마누엘'은 '~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임'(im)에 1인칭 복수 접미어가 결합하여 '하느님'이란 뜻의 명사 '엘'(el)이 함께 쓰여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달리 이 아이를 낳은 어미인 그 처녀가 지어줄 것이다.
즉 '이라 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웨카라트'(weqarath)는 '칭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라'(qara)의 여성 3인칭 단수형이다.
사실 700년 이후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을 낳아 천사의 지시대로 그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마태1,21).
그런 점에서 '임마누엘'은 그 아들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 아들의 인격속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동정녀를 통하여 이 땅에 보내실 분은 하느님 당신 자신이 육화(肉化)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명칭이 바로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것이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logos)이신 성자 하느님께서(요한1,1~3) 이 땅에 강생(육화)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직접 그의 백성 바로 곁으로 오신 것이다(요한1,14).
곧 임마누엘은 제2위 하느님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에 대한 예언이며 그의 백성이 하느님을 볼 것에 대한 축복의 예언인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